손태승 회장 중징계 이후 정부 '인사개입' 본격화이복현 금감원장 "합리적 판단 기대" 압박하기도기업은행과 신한·농협금융 인사에도 입김 닿을 듯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그룹 CEO 인사 시기가 임박한 가운데 곳곳에서 정부의 움직임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 감지되던 정부의 '인사개입'이 전반으로 확산되며 우려를 키우는 모양새다.
정치권의 입김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은 BNK금융이었다. 이 회사는 정부와 여당의 공세에 백기를 들고 후임 회장 인선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국정감사 중 여당이 제기한 '한양증권 밀어주기 의혹'에 김지완 전 회장이 물러나면서다. 이로 인해 경영승계의 향방도 불투명해졌다. 당초 안감찬 부산은행장, 이두호 BNK캐피탈 대표 등 내부 인사가 유력 후보로 거론됐으나, 정부의 지지를 받는 외부 인사가 가세하면서 경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최근 새 CEO를 확정한 Sh수협은행도 한동안 '외풍'에 시달렸다. 행장 추천 과정에서 정부가 외부 인사를 밀어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수협중앙회와 충돌한 탓이다. 수협은행 행장후보추천위원회는 5명의 내·외부인사를 대상으로 면접을 치르고도 결론을 내지 못했고 2차 공모로 두 명의 후보를 추가한 이후에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강신숙 중앙회 부대표를 차기 행장으로 확정하며 수협 측이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매끄럽지 않은 진행에 씁쓸함을 남겼다.
정부의 개입은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중징계를 계기로 본격화한 양상이다. '문책경고'(3년간 재취업 금지)에 승복해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취지의 발언이 당국 차원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 최측근 이복현 금감원장은 손 회장을 향해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재차 언급하기도 했다.
인사 시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정부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질 전망이다.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은 12월말,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내년 1월,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3월 각각 임기를 마치는데, 정부가 이들 금융사에도 개입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는 그만큼 챙길 사람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대선 국면에서 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힘을 실어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 회장,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 등이 대표적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자 지지 선언에 동참한 인물이 금융기관 CEO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
그 중 농협금융은 상대적으로 CEO 교체 가능성이 큰 곳으로 지목된다. 전통적으로 외풍을 막아줄 관료 출신 인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2012년 출범 후 내부 출신 CEO는 신충식 초대 회장과 손병환 회장뿐이며, 신동규·임종룡·김용환·김광수 등 역대 회장은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를 거친 관료 출신 인사였다.
기업은행의 경우 윤종원 행장의 임기 만료를 2개월 앞두고 여러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최현숙 IBK캐피탈 대표와 김성태 기업은행 전무이사(수석부행장),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 등 내외부 인사가 물망에 올랐는데, 정부가 지지하는 쪽은 정은보 전 원장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다만 금융업계의 반감은 상당하다. 정부와 여당이 특정 인사를 위해 길을 열어주고자 민간 기업 인사에 개입하는 것처럼 비춰져서다. 문제를 개선토록 할 수는 있어도 자율성을 침해해선 안된다는 인식이 짙다.
금융노조는 성명을 통해 "지금은 각 회사 내부의 승계프로그램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된다는 안정감을 국내외 시장에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며 "권력자의 측근이나 현장경험 없는 모피아 출신을 금융권 낙하산으로 보내려 한다면 저지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노조는 이복현 원장을 향해서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됐다는 전직 관료의 실명까지 언급하고 있는 가운데 감독당국 수장의 가벼운 발걸음과 입까지 더해지자 시장은 이를 기정사실로 보는 분위기"라면서 "무슨 권한으로 이렇게 가벼이 입을 놀리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사모펀드 사태처럼 감독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급격한 시장 변동'에나 집중하길 바란다"며 "외압을 행사하는 자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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