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 주총 앞두고 사외이사 후보 확정교체율 25%···법조인, 친정부 인사 등 눈길 CEO 임기 만료, 신사업 확보 등 현안 반영
특히 그룹마다 신사업 진출과 같은 핵심 현안에 발맞춰 전문 인력을 확충하거나, 정치권 동향을 살피려는 듯 법조인과 친정부 인사를 영입한 것도 눈길을 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는 임기를 마친 사외이사 28명 중 21명을 연임시키고 7명을 신규 후보로 추천했다. 교체율은 25%, 사외이사 4명 중 한 명을 새 인물로 대체한 셈이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임기 만료 앞두고 사외이사 절반 '물갈이'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난 곳은 KB금융지주다. 사외이사 7명 가운데 최대 임기(5년)를 채운 선우석호·최명희·정구환 이사가 물러남에 따라 새로운 인물에게 그 자리를 채우도록 했다. 타 그룹과 달리 KB금융은 정관에 사외이사가 5년을 초과해 재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성용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 ▲여정성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 ▲조화준 메리세데스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상근감사가 사외이사 후보로 낙점됐다.
그 중 김성용 교수와 여정성 교수는 각각 법조인과 소비자보호 전문가로서 여러 정부에 걸쳐 목소리를 내며 정책 수립에 기여한 인물이다.
김 교수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에서 자체규제심사위원회 민간위원, 자본시장조사심의원회 위원, 법률자문위원,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을 맡아봤다. 여 교수 역시 이명박 정부 첫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으로 위촉된 경력을 보유하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소비자정책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서 문재인 정부와도 호흡을 맞췄다.
이처럼 KB금융에 정부와 연결고리를 지닌 인사가 합류한 것은 윤종규 회장의 거취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임기 만료(11월)를 앞두고 '경영승계' 여부를 고민 중인 윤 회장이 일단 정치권발(發) 외풍을 차단하고자 이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분석이다.
'2년차'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도 사외이사 2명 교체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임기 2년차를 맞아 사외이사 8명 중 2명을 교체함으로써 이사회에 소폭 변화를 줬다.
이는 백태승 이사회 의장과 권숙교 사외이사가 연임하지 않고 그룹을 떠나는 데 따른 조치다. 하나금융에선 사외이사의 임기를 최장 6년까지 보장한다. 다만 백태승 의장의 경우 이사 재임 연령을 만 70세까지로 정한 지배구조 내부규범에 따라 물러나게 됐다.
하나금융은 이들을 대신해 원숙연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와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하나금융의 두 사외이사 후보는 검찰과 기재부, 금융당국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온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원 교수는 대검찰청 양성평등정책위원회 위원, 기획재정부 재정운용전략위원회 민간위원, 한국거래소 비상임이사, 금감원·금융위 지역재투자평가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이 교수는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과 공적자금관리 자금지원소위원회 위원 출신이다. 하나금융 측도 이러한 배경을 감안해 이들을 사외이사에 발탁한 것으로 분석된다.
취임 앞둔 임종룡, 우리금융에 '벤처투자·증권 전문가' 수혈
취임을 앞둔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내정자도 이사회에 벤처투자 전문가와 '증권맨'을 영입했다. 지성배 IMM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윤수영 전 키움증권 부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우리금융은 노성태·박상용·장동우 이사가 사의를 표명하자 과점주주가 택한 지성배·윤수영 후보에게 그 역할을 맡기기로 했다.
지성배 후보는 벤처캐피탈 투자 전문가다. 삼일회계법인 공인회계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CKD창업투자로 자리를 옮기면서 벤처캐피탈 업계에 발을 들였고 2000년부터 IMM인베스트먼트 대표로 활동해왔다.
윤수영 후보는 키움증권 창업 멤버로 잘 알려져 있다. 쌍용투자증권과 프라임투자자문, CL투자자문 등을 거쳐 2000년 키움증권에 합류했고 경영기획실장과 영업지원본부 전무, 리테일총괄본부장 겸 전략기획본부장 부사장으로 재직했다.
이처럼 우리금융이 분야별 전문가를 이사회로 불러들인 배경은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충 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금융은 지난달 '1세대 벤처캐피탈' 다올인베스트먼트의 자회사 편입을 확정지은 데 이어 증권사 인수 기회도 모색하고 있다. 비은행 사업을 보완해 '종합금융그룹'의 골격을 갖추기 위함이다. 관련 부문에 해박한 두 후보가 고비마다 적절한 해법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회사의 인수합병(M&A) 작업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일교포·사모펀드 주주 균형 맞춘 진옥동
4대 금융그룹 중 신규 사외이사 후보가 없는 곳은 신한금융이 유일하다. 이 회사는 임기를 마친 이사 10명 중 2명을 제외한 모두를 재선임하기로 했다.
그 대신 이사진은 기존 12명에서 9명으로 줄었다. 신한금융은 연초 자진 사퇴한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 임기 6년을 채운 박안순 이사(2017년 선임),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고사한 허용학 이사의 후임자를 뽑지 않기로 했다. 이에 ▲성재호 ▲이윤재 ▲윤재원 ▲진현덕 ▲곽수근 ▲배훈 ▲이용국 ▲최재붕 ▲김조설 이사를 중심으로 이사회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진옥동 회장 내정자로서는 이사회에 특별히 변화를 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각 사외이사와 친분이 두터울 뿐 아니라, 자신이 그룹 회장에 오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게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또 진 내정자는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이사회와 손을 잡음으로써 단기간에 조직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진 내정자가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사회 내 '힘의 균형'을 맞췄다는 점이다. 그룹 핵심 축인 재일교포와 사모펀드 계열의 이사수를 동등하게 3명으로 조율하면서다. 재일교포의 경우 신한금융 지분 15%(추정치)를, IMM PE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 베어링PEA 등 사모펀드 3사는 총 11.58%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다만 그간엔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재일교포 측 목소리가 더 컸는데, 이번에 의석수가 같아짐에 따라 향후 두 진영 간 견제가 이뤄질 전망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사외이사 수를 줄인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면서도 "이번 변화를 계기로 이사회의 독립성이 강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모펀드·채용비리 사태 눈감은 사외이사···연임자격 있나"
다만 일각에선 국내 금융그룹 사외이사의 연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채용비리 등과 같은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만큼 유임 자격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는 최근 4대 금융지주 주총 안건 관련 보고서에서 신한·하나·우리금융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할 것을 권고했다.
먼저 ISS는 신한금융에 대해선 조용병 현 회장의 채용비리 국면에서 이사회가 제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 회장이 채용비리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고는 하나, 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고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또 하나금융과 관련해선 함영주 회장의 DLF 사태 관련 법률 리스크를 조명했다. 그 우려에도 이사회가 함 회장을 지지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ISS의 평가다.
이밖에 ISS는 우리금융을 놓고도 하나금융과 같은 이유로 정찬형 후보의 연임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ISS는 "정 후보는 손 회장의 법적 우려를 알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시간이 있었지만, 이사회 구성원으로 있는 동안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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