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생존 어려운 아시아나···화물 매각 이슈로 합병 지연EU 승인해도 美·日 남아···내년 통합 계획 차질 불가피추가 슬롯·운수권 반납해도 경쟁력 약화 우려 제한적
3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화물사업 매각을 논의했지만 결론 내지 못한 채 정회했다. 당초 무난하게 화물 매각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지만 일부 사외이사들이 배임 가능성과 노동조합 반발을 이유로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화물 매각을 결정하는 대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시정조치안을 제출할 예정이었다.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에는 유럽 4개 노선(프랑크푸르트‧파리‧로마‧바르셀로나) 경쟁환경 복원과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분할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 매각결정을 늦추면서 대한항공은 당혹감을 내비치고 있다. 대한항공은 EU 경쟁 당국에 양해를 구하고 시정조치안 제출 일정을 재검토한다는 계획이다.
EU의 기업결합 심사 일정은 당초 예정보다 늦은 올해 12월 또는 내년 1분기로 미뤄진 상태다. 대한항공은 시정조치안 제출 이후 심사에 속도를 낼 방침이었지만 화물사업 매각 이슈로 기업결합 승인은 더욱 늦어지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매각은 EU의 기업결합 승인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 EU 경쟁 당국은 한국∼유럽 4개 여객 노선과 한국∼유럽 전체 화물 노선의 독점을 문제 삼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을 정리하지 않는다면 합병이 무산된다는 얘기다.
업계 안팎에선 기업결합 심사 일정이 늦어질수록 국내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독자생존이 사실상 어려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난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서다. 중복노선을 개편해 비용을 줄이는 등 대한항공의 경쟁력 강화가 늦어진다는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아시아나 수혈 시급···대한항공도 '글로벌 톱10' 기회
대한항공은 지난 2년여 동안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을 위해 총력전을 펼쳐왔다. 두 회사의 합병이 국내 항공업계의 유일한 생존방안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아시아나항공의 자본 총계(연결 기준)는 6233억원, 자본금은 3721억원이다. 1조1550억원 규모의 미상환 영구전환사채를 제외하면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다. 대한항공과의 합병을 통한 외부 수혈이 없다면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불가능한 셈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할 경우 우리 항공산업은 국제수송인원수 기준 글로벌 톱10의 메가 항공사를 보유하게 된다. 대한항공의 국제여객 유상여객킬로미터(RPK·항공 편당 유상승객수에 비행거리를 곱한 것)도 기존 18위에서 11위로 치솟게 된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을 포기하더라도 대한항공의 국제화물수송량은 이미 글로벌 5위권이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대한항공에 기업결합은 포기할 수 없는 선택지"라며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노선과 스케줄을 활용해 더욱 다양한 노선 구성과 환승 전략 추구가 가능해져 글로벌 항공사와의 여객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물 인수 후보 '안갯속'···최종 통합 승인 내년 말 이후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화물사업 매각을 결정하더라도 기업결합 성사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항공화물 운임이 저점을 찍고 환율과 유가가 고공행진 중인 상황에서 인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서다. CJ, SK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잠재적인 인수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인수 의향을 나타낸 사업자는 아직 없다.
또한 대한항공은 유럽 4개 여객 노선의 운수권을 티웨이항공에 넘기기로 했지만 직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대한항공은 티웨이항공에 A330 여객기와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조종사와 승무원을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는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조종사를 파견한다는 것인지 소속 회사가 바뀌는 것인지에 대해 전혀 알 수 없어서 해당기종의 조종사들은 타의에 의해 소속 회사가 변경될 가능성에 우려하고 있다"며 "글로벌 톱10 항공사가 되는 것이 아닌 사실상 공중분해 되는 과정 속에서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중"이라고 호소했다.
EU가 기업결합을 승인해도 미국과 일본의 심사가 남아있다. 미국에는 우군인 델타항공이 있지만, 다른 항공사들이 경쟁 제한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실제로 지난 5월에는 미국 법무부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대한항공이 미국에서도 슬롯과 운수권을 더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전심사 단계에 있는 일본 경쟁 당국은 EU의 심사 결과를 지켜본 뒤 본격적인 심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 제출이 늦어지면서 EU의 심사는 물론 일본 경쟁 당국의 심사도 더욱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내년 중 아시아나항공과 합칠 계획이었지만 최종 통합 승인은 연말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양승윤 연구원은 "대한항공의 슬롯‧운수권 양도에 따른 경쟁력 약화 우려는 제한적"이라며 "얼라이언스 멤버(델타항공)와의 협력을 통한 수익성 악화를 최소화할 수 있고, 합병은 항공 네트워크 강화와 환승 여객 유치를 통한 글로벌 항공사로 거듭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처음 결정했던 3년 전과 환경이 크게 달라진 만큼 통합 시너지 전략에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면서도 "아시아나항공을 합병해도 부채비율은 300%를 미만이며, 화물 부문을 매각하면 재무 부담은 오히려 줄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EU와 미국이 예상보다 독과점을 더 우려하는 건 한편으로 대한항공의 글로벌 위상이 팬데믹 전후로 달라졌기 때문"이라며 "해외 경쟁 당국의 고민은 슬롯을 양보해도 단기간 내에 대한항공의 지위나 통합 시너지를 위협할 항공사가 제한적임을 반증한다"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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