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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버짓 브랜드에서 '없어서 못 파는 차'로 신분 상승

산업 자동차 기아 美진출 30년

버짓 브랜드에서 '없어서 못 파는 차'로 신분 상승

등록 2024.01.08 08:11

수정 2024.01.08 08:16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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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 앞세워 미국시장 도전장···저품질을 가성비로 만회EV6, 일본차보다 비싸도 인기···브랜드 가치 제고 성공적인센티브 업계 최저···텔루라이드 이어 EV9 연타석 홈런 예고

기아의 미국 주요 판매차종과 조지아주 공장 전경. 사진=기아 제공기아의 미국 주요 판매차종과 조지아주 공장 전경. 사진=기아 제공

2024년은 기아의 창립 80주년이자 광명공장에서 생산한 첫 승용차 '브리사'의 출시 50주년이다. 특히 올해는 기아는 미국 시장에 진출한지 30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는 평가다. 기아는 미국에서 싼 맛에 타는 버짓 브랜드에 머물러왔지만, 2020년대 들어 '없어서 못 파는 차'로 신분상승에 성공했다.

8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기아 미국법인은 지난해 전년 동기 대비 12.8% 증가한 78만2451대를 판매했다. 이는 2년 전 세웠던 연간 판매 기록보다 12%나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기아는 10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를 추월하는 등 역대급 호실적을 거뒀다. 2023년 기아의 미국 판매 순위는 GM, 토요타, 포드, 스텔란티스, 혼다, 닛산, 현대차에 이은 8위다.

기아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13개 차종 가운데 6개 차종은 지난해 사상 최대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카니발(4만3687대)은 전년 대비 93%나 성장했고, 니로(3만6300대)와 셀토스(6만53대)도 각각 26%, 17%에 달하는 성장 폭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1% 증가한 텔루라이드는 11만765대를 기록하며 1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전용 전기차인 EV6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도 1만8879대 판매되며 선전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시장에 출시된 대형 전기 SUV EV9도 한 달 만에 1113대를 기록하며 흥행을 예고했다.

특히 텔루라이드와 EV9은 미국 시장에서 높은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두 차종은 카앤드라이버의 2024년 10대 트럭 및 SUV에 선정됐고, 텔루라이드는 5년째 같은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또한 두 차종은 2024 켈리 블루 북 베스트 바이 어워드 목록에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텔루라이드는 제이디파워 2024 미국 중고차 잔존가치 어워드에서도 '3열 중형 SUV' 부문을 3년 연속 수상했다.

버짓 브랜드에서 '없어서 못 파는 차'로 신분 상승 기사의 사진

낮은 품질·브랜드 인지도 약점···싼 가격과 워런티로 승부수
1992년 말 미국법인을 세운 기아는 1994년 독자기술로 자체 개발한 준중형 세단 '세피아'를 앞세워 미국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세피아는 당시 경쟁자였던 현대차 엘란트라보다 주행성능 면에 우위에 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낮은 품질과 브랜드 인지도 탓에 흥행하진 못했다.

실제로 미국의 자동차 전문매체 오토라인네트워크는 지난 2018년 테슬라의 조악한 조립품질을 지적하며 "1990년대 기아차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30년 전 미국에서 기아의 브랜드 가치가 업계 최저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평가다.

기아는 미국 진출 5년 만인 1999년(13만4594대) 10만대를 돌파했지만 여전히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에게 위협이 되진 못했다. 2001년 20만대를 돌파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였지만 당시 40만대를 기록한 현대차보다 16만대나 뒤처졌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기아는 미국시장에서 저렴한 가격과 긴 보증기간만 내세운 전형적인 '버짓 브랜드'였다. 19997년 기준 세피아의 미국 판매가격은 9495달러로, 경쟁차종인 토요타 코롤라 4도어(1만2728달러) 대비 3233달러나 저렴했다.

기아는 현대차에 이어 10년/10만km라는 파격적인 워런티를 내세우고도 품질 이슈에 수차례 발목이 잡혔다. 기아 미국법인은 2000년대 초반 세피아의 브레이크 결함 문제로 대규모 집단소송에 휘말리며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미국에 판매되고 있는 기아 EV6 GT. 사진=기아 제공미국에 판매되고 있는 기아 EV6 GT. 사진=기아 제공

토요타 bZ4X보다 10% 비싸도 세 배 잘 팔린 EV6
하지만 2010년 미국 조지아주에 현지 생산공장을 건설한 이후부터 기아는 브랜드 인지도와 판매량을 빠른 속도로 넓혀나가게 된다. 2012년 50만대, 2015년 60만대를 돌파한 기아는 2021년 70만대 판매를 넘어서며 현대차(73만8081대‧제네시스 제외)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이 같은 판매호조를 바탕으로 기아의 선진시장(한국‧미국‧유럽) 판매비중은 지난 2015년 55.1%에서 2022년 66.1%로 급격히 확대됐다. 선진시장은 신흥시장 대비 비싼 차가 많이 팔린다는 점을 고려할 때 브랜드 가치가 그만큼 높아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시장에서 급성장세를 이어온 기아의 시장 점유율은 2012년 3.8%에서 2023년 5.1%까지 올라왔다. 같은 기간 토요타(14.4%)가 제자리걸음하고 스텔란티스는 11.4%에서 9.8%로 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가 깊다. 한 지붕인 현대차(4.9%→5.6%) 역시 기아의 성장세에는 못 미쳤다.

기아는 엠블럼 변경 등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단행한 2021년부터 '버짓브랜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미국 전략모델인 텔루라이드의 흥행에 이어 성공적인 전동화 전환까지 이어지면서 현지 브랜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다.

기아와 현대차, 제네시스는 지난해 미국 제이디파워가 조사한 소비자 기술경험 조사에서 최상위권에 자리했다. 인포테인먼트와 커넥티비티, ADAS(첨단운전보조장치), 편의, 에너지 효율성 등을 평가하는 해당 조사에서 기아는 2021년부터 2년 연속으로 현대차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반면 현대차‧기아의 경쟁사인 토요타, 혼다, 폭스바겐의 만족도는 평균보다 낮게 나타났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기아 EV6의 판매가격(4만8795달러)은 경쟁차종인 토요타 bZ4X 대비 10%나 비싸지만 판매량은 3배나 높았다. 일본차 대비 10% 가량 저렴하게 판매하며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던 과거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일본차보다 우위에 있는 전기차 성능과 중고차 잔존가치 향상으로 가격 포지셔닝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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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센티브는 낮고 중고차 가치는 높고···달라진 브랜드 위상
브랜드 위상이 높아지면서 미국에서의 중고차 가치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기아의 중고차 가치는 2018년 39.7%에 머물렀지만 2020년 45.5%, 2021년 47.7%, 2022년엔 55%까지 치솟았다. 이는 일본 스바루에 이은 2위 수준으로, 중고차 가치 상승은 높은 신차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중고차 가치 상승에 따라 기아의 인센티브도 업계 최저 수준으로 유지됐다. 지난해 1분기 기준 기아의 미국 인센티브는 608달러로, 같은 기간 현대차(948달러)보다 무려 340달러나 낮았다. 지난해 12월 기아의 인센티브는 1812달러로 급증했지만 산업 평균(2687달러)보다는 여전히 낮게 유지됐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자동차 시장이 2025년까지 초과수요 국면을 겪는 가운데 기아의 산업 내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며 "달라진 위상은 점유율뿐만 아니라 인센티브, 딜러들 사이에서의 선호도, 전기차 수상 실적, 평균 가격에서도 드러난다"고 평가했다.

전용 전기차 공장이 완공될 올해는 현대차와 함께 미국 전기차 시장 '톱2'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유일한 전용 전기차인 EV6가 다소 부진했지만, EV9 출시와 보조금 지급의 영향으로 시장 점유율이 크게 오를 것이란 관측이다. 특히 기아의 첨단 모빌리티 기술이 집약된 EV9은 2019년 출시된 텔루라이드에 이어 브랜드 가치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임은영 삼성증권 EV/모빌리티팀 팀장은 "기아는 EV9을 출시했고 올해 하반기 미국 전기차 서배나 공장 가동으로 제네시스 전기차와 아이오닉5 등도 현지 생산될 예정"이라며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판촉 활동이 수월해진 점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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