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타워 부재가 M&A 등 신속한 의사결정 저해 "미래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새 조직 필요" 제언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지난 5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관련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모든 관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초 검찰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 주목해 이재용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그가 부회장 시절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이 작업에 개입했고, 위법을 저지름으로써 결과적으로 주주에게 피해를 입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 측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가운데 재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최지성·김종중·장충기 등 과거 삼성그룹 미전실에 몸담았던 임원에게도 나란히 무죄가 선고됐다는 점이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불명예를 안고 사라진 미전실이 면죄부를 받은 격이어서다.
이는 삼성이 미전실과 같은 성격의 조직을 재구성할 명분을 확보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삼성 미전실은 중장기 성장 전략과 계열사의 사업, 감사, 기획, 법무 등 모든 사안을 조율하는 그룹의 핵심 조직이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1959년 만든 삼성물산 비서실에서 출발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그리고 미전실에 이르기까지 58년간 명맥을 유지하면서 삼성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다. 계열사에서 파견된 250여 명이 근무했는데, 조직의 규모로도 유명하다.
그런 미전실이 자취를 감춘 것은 2017년이다. 당시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린 삼성은 미전실 해체를 포함한 5대 쇄신안을 발표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후 ▲사업지원TF(삼성전자) ▲금융 경쟁력 제고TF(삼성생명) ▲EPC(설계·조달·시공) 경쟁력 강화TF(삼성물산) 등 3개 태스크포스 주도로 계열사별 자율 경영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선 삼성이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꾸릴 필요가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견해다. 중심을 잡아줄 조직이 없는 탓에 M&A와 같은 대규모 투자나 신사업 발굴 등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실제 삼성은 인공지능(AI), 바이오, 전장, 로봇 등 새 영역에 대한 글로벌 투자 경쟁에서 다소 뒤처져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언급처럼 최근 3년간 260여 벤처에 자금을 투입하긴 했으나, 2017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 이후 대형 M&A는 없었던 탓이다.
따라서 삼성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하면서 계열사 간 소통을 강화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SK그룹 역시 비슷한 기능의 수펙스추구협의회의를 앞세워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도 이러한 견해를 내비쳤다. 그는 작년 8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 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많은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한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일각에선 이달 새롭게 출발한 준감위의 어깨가 무거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2기에 이어 이찬희 위원장 체제를 유지한 3기 준감위는 2년 간 활동하며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과 지배구조 개선 등에 주력할 것으로 점쳐진다.
재계 관계자는 "미래 시장을 장악하려는 기업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삼성도 그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조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검찰의 항소 가능성이 부담이 될 수는 있겠지만, 1심 판결로 부담을 덜어낸 만큼 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시점이 됐다"고 진단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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