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정 적법했다" 檢항소 불가피하지만···사실상 '리스크' 해소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투자 탄력받을 듯
재계에선 그룹 총수가 리스크의 고리를 끊어낸 만큼 삼성의 반도체·배터리 등 신사업 투자와 인수·합병을 포함한 미래 전략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적법했다"···이재용 회장 '무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5일 선고 공판에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이재용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만을 목적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동시에 법원은 합병 비율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봤다.
검찰은 2020년 자본시장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혐의 등으로 이재용 회장을 기소한 바 있다. 삼성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결의한 2015년 당시 두 회사의 합병비율을 1대 0.35로 설정하면서 논란을 빚었는데,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와 그룹 지배력 강화를 목적으로 여기에 개입했고 주주에게도 피해를 입혔다는 논리였다.
결과적으로 제일모직 지분 23.2%를 들고 있던 이 회장(당시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5%를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물론 삼성 측 입장은 달랐다. 제일모직은 미래 사업으로 각광받던 바이오 부문에 집중 투자하며 가치를 끌어올리는 중이었고, 삼성물산은 수주·실적 부진과 안전사고 등 악재로 흔들리던 만큼 합리적 결정이었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밝혔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를 놓고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성공 여부가 불확실했던 상황을 고려했을 때 바이오젠 측이 보유한 콜옵션에 대해서도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해서도 피고인에게 특정한 의도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학계 "애초에 '무리한 기소'···檢 인력·수사력 낭비한 격"
학계에서도 이재용 회장 무죄 판결에 대해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애초에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이뤄진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합병과 관련해 그동안 이 회장 측은 승계를 의도하지 않았고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해왔는데 (검찰이 이를) 반박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합병 효과와 관련한 문건을 작성할 수는 있으나 이 회장이 보고를 받았고 승인했다는 주장을 검찰이 증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최 교수는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계산됐는데 법원은 이를 임의 규정으로 판단했었으나 자본시장법이든 회사법이든 이는 강행 규정으로 명시돼 있다"며 "100번 양보해서 이를 임의 규정으로 판단하더라도 범죄혐의로는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처리와 관련해선 "회계 부분도 전부 다 무죄를 받았는데 회계는 새로 도입된 IFRS(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이뤄졌다"며 "기업 쪽에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도 있기에 어느 모로 보나 범죄가 성립되긴 굉장히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를 두고 수사심의위원회가 10대 3 비율로 수사를 중단하라고 권고했으나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를 강행했다"며 "첫 번째 판단을 잘못하니 엄청난 인력과 수사력을 낭비한 꼴이 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검찰은 지난 3년 동안 인적, 물적 비용을 투입하며 열심히 수사 논리를 만들어왔으나 결과적으로 모든 쟁점이 무죄로 나왔다"며 "검찰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로 항소할 것이고 재판은 향후 3년 동안 다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5년간 450조 투자해 첨단산업 육성"···삼성 경영시계 속도붙는다
재계에서는 삼성의 경영시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의 항소 여부가 관건이지만, 일단 1심을 거치면서 이재용 회장이 큰 짐을 덜어낸 만큼 M&A를 포함한 대규모 투자 집행에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2020년 이 회장은 향후 5년간 국내·외에 450조원을 투자해 시스템반도체와 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그가 2018년 가석방으로 풀려난 직후 제시한 목표치(3년간 240조원)의 두 배에 이르는 규모다.
사실 삼성은 전세계 인공지능(AI), 바이오, 전장, 로봇 등 새 영역에 대한 투자에서 한발 뒤처져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초 'CES 2024'에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3년간 260여 벤처에 자금을 투입하긴 했으나, 2017년의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 이후 대형 M&A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룹 총수가 재판을 받는 특수한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 회장의 무죄 선고를 계기로 추가적인 투자 계획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란 게 전반적인 시선이다.
삼성 측은 충분한 실탄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실제 작년 3분기말 기준 삼성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약 75조원에 이른다.
윤곽을 드러낸 사업도 있다. 삼성전자는 네덜란드 노광장비 업체 ASML과 국내에 연구개발(R&D) 시설을 설립키로 합의했으며, 일본 요코하마에도 연구개발 거점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반도체 고성능화를 위한 패키징 기술을 강화하고 인공지능(AI)과 5세대 이동통신(5G) 수요에 대응할 차세대 반도체 제조 기술을 확보한다는 취지다.
이밖에 이 회장의 그룹 내 거취도 관심사다. 검찰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리스크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등기임원 복귀가 성사될 수 있다는 관측도 흘러나온다. 현재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뿐이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2022년 10월 이 회장 승진 건을 의결하며 책임 경영 강화와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약속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부문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규모 투자, M&A와 같은 굵직한 의사결정엔 그룹 총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이 회장의 어깨가 가벼워진 만큼 보다 과감한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현호 기자
jojolove7817@newsway.co.kr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sia0413@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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