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약가인하 정책···국산 바이오시밀러 수혜인도·유럽·일본 기업과 시밀러 경쟁 심화 예측생물보안법 불발···장기적 관점 대응
2025년 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47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시대가 열린다. 트럼프의 더 강력해진 '아메라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에 맞춰 글로벌 산업계도 생존 전략을 마련하는 모습이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또한 트럼프 공약에 맞춰 대미 정책을 변경하고 있다. 트럼트 2기 시대를 앞두고 약가 인하·대중국 필수 수입품 금지 등에 따른 기대감과 강력한 관세정책, 공보험 분야 축소 등의 불안감이 공존하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현실과 과제 등을 4회에 걸쳐 조명한다. [편집자 주]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산업경제이슈' 보고서를 발간해 트럼프의 바이오의약품 산업 관련 주요 정책·강령으로 약가 인하, 자국 내 필수의약품 생산, 공적부조·사회보험 개혁 등을 꼽았다. 또 바이든 정부가 수립한 기존 헬스케어 정책은 축소, 재편하거나 철회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한국산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수요가 유지되면서 직·간접적인 통상 압력이 가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트럼프 당선인이 제네릭·시밀러 사용 촉진에 우호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역시 최근 트럼프 정부의 약가인하 정책기조, EU·미국의 교체 처방(오리지널 의약품과 바이오시밀러를 서로 바꿔 처방해도 무방한 정책) 장려 등으로 인해 바이오시밀러 분야 국내기업의 글로벌 진출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위탁생산(CMO) 분야에서 압도적 생산 능력과 품질 경쟁력, 다수의 트랙레코드 등 핵심 수주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제약사와의 수주 활동도 순항을 보일 것으로 봤다. 특히 미국 생물보안법 확대에 따른 국내 CMO 수요 증가를 예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중 빅파마(대형 제약사)가 높은 약가로 부당한 이윤을 취하고 있다며 약가 인하 정책을 예고했다. 약가 인하 압력을 높이기 위해 바이오시밀러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해 결과적으로 국내 시밀러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바이오 의약품과 같은 효능을 내는 일종의 복제약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실제로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비롯한 국내 시밀러 기업은 미국 시장에서 고가의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다만 바이오시밀러에 우호적인 정책이 실행되면 국내 기업 뿐 아니라 모든 바이오시밀러 기업에 기회가 되는 만큼 경쟁은 심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강화하며 관세를 부과하거나 시장가격에 개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연구원은 "인도·유럽·일본 기업과 바이오시밀러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단기 관점에서 가격을 인하하기보다는 중장기 혁신 바이오베터 특허·기술 확보와 경쟁력 제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당사 의약품의 경우 WTO(세계무역기구)에 따라 관세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향후 관세 인상에 추가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만큼,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면 셀트리온은 오히려 타 업종 대비 영업 확대 및 실적 성장 등 순수 사업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공동으로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을 발의하는 등 초당적으로 중국 바이오 기업 견제에 나서고 있어 국내 CDMO(위탁개발생산) 기업에도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회가 추진 중인 생물보안법이 중국 기업을 직접 겨냥하고 있어 유전자 분석·CDMO 부문에서 중국 기업의 입지 위축이 예상돼서다.
미국의 생물보안법은 중국 바이오 기업의 글로벌 시장 활동을 제한하고 자국의 바이오산업과 안보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발의됐다. 이 법안은 중국의 주요 바이오 기업 5곳(BGI, MGI, 컴플리트제노믹스, 우시앱텍, 우시바이오로직스)을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이들 기업과의 거래 및 협력을 제한하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CRDMO(위탁 연구·개발·제조) 시장의 경우 기존 중국 기업에 의존하던 글로벌 제약사가 미국, 유럽, 한국 등 타 국가에 위치한 기업으로 거래처를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이 중국 CMO, CDMO 기업에 위탁하는 물량은 연간 2조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당초 생물보안법은 지난해 9월 미국 하원에서 찬반 306대 81이라는 압도적 지지로 통과되는 등 2024년 내에 통과될 것이 유력해 보였으나 중국 기업 로비가 먹혀들며 예산지속결의안에 포함되지 못했고, 2025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2025)에서도 제외됐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법안의 대상이 된 우시바이오로직스·앱텍이 최근 1년간 지출한 로비 금액은 약 125만달러(약 18억원)로 추산된다.
올해는 법안을 반대했던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이 상원 국토안보위원장 자리에 오르면서 입법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는 "생물보안법안이 내년에 다시 입법 절차를 거치더라도 규제대상기업에 대한 지정 및 해제 절차 등 논란이 되었던 조항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해당 법안은 통과가 불발되기 전에도 큰 파급력 우려 탓에 시행 유예기간을 둔 바 있다. 미국 바이오협회 조사에 따르면 미국 제약 및 바이오기업의 79%가 중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으로, 생물보안법이 시행되면 다수 기업은 제조 파트너를 변경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며 그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환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하원 상임위원회는 산업계 일부 의견을 반영해 생물보안법 통과시 유예기간을 2032년 1월 1일 이전까지로 설정했다.
애초에 생물보안법 제정이 국내 기업에는 즉각적 수혜로 이어지지 않았던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 전략을 마련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정지은 산업연구원 신산업실 부연구위원은 "생물보안법이 발효되고 '우려 대상' 기업들이 위축되더라도 한국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직접적인 수혜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국내 바이오산업계와 정부는 산업의 핵심이 되는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 원천기술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연구개발 및 사업화 투자 확대, 전문인력 양성 및 교류, 그리고 우수 기업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 및 전략적 투자의 확대 등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하고 이를 저해하는 규제는 과감하게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 부연구위원은 "약가를 낮추기 위한 정책들이 강제성을 띠고 있어 실제 추진 가능성은 미지수지만, 전반적으로 바이오시밀러 및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수요가 강화되어 해당 분야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더욱 효율적인 공급을 위해 한국 CDMO 기업의 역할도 중국 견제 정책 강화와 함께 미국 내에서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제약바이오기업의 경우 아직 독립적으로 미국 연방 정부 조달시장에 참가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미국 내 고객사와의 협력 강화를 통해 미국 내 생산 기반을 강화하는 방안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같은 맥락에서 미국 내 독자적 공급망 구축보다는 미국 내 토종 기업이나 미국 외 유수의 제약 기업과 합작을 통해 진출하거나 미국 내 기업을 직접 인수하는 방안 등이 제시될 수 있다"고 했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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