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위기'···총수들 잇딴 메시지극에 달한 불확실성 속에도 반전 모색삼성전자 반도체 20조, 현대차 27조
국내 상황도 그렇다. 국가 리더십 부재로 경제 정책의 방향성은 길을 잃었다. 한국경영자총회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97%가 '올해 경제 위기를 예상한다'고 했고, 이 중 23%는 '1997년 외환위기보다 심각할 것'으로 우려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재계 총수들이 전면에 나섰다. 새로운 대변혁을 요구하는 변곡점에 선 만큼 잇따라 강력한 메시지를 내놨다. 구성원 결속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기업 투자금도 대폭 늘린다. 산업 지형이 재편되는 해가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겠단 의지다. 글로벌 패권 경쟁이 거세질 만큼 기존 성장 방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단 복안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최근 이례적으로 강한 질책을 쏟아냈다.
이 회장은 지난 17일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임원들에게 "전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이 훼손됐다"며 "과감한 혁신이나 새로운 도전은 찾아볼 수 없고, 판을 바꾸려는 노력보단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고 질타했다.
그러며 '사즉생'을 주문했다. 그는 "삼성다운 저력을 잃었다. 죽고 사는 각오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초격차 복원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만큼 삼성전자는 매머드급 연구개발(R&D) 센터에 투자를 집행한다. 20조원을 들인 기흥캠퍼스 반도체 연구개발 단지 'NRD-K'에 이어 2030년까지 총 20조원을 투입, 차세대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고(故) 아산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정신을 내세웠다.
오는 2027년 현대차 창립 60주년에 맞춰 '사사(社史)'를 발간한다. 지난 2022년부터 3년간 글로벌 판매 톱3 완성차 그룹으로 올라선 현대차는 최근 고조된 불확실성 돌파를 위해 정 명예회장의 유산을 기리고 이를 전면에 앞세우기로 했다. 정 명예회장의 '도전정신'과 '인본주의' 철학을 강조해 최근의 위기 상황을 새로운 기회로 삼아 상황을 반전시키겠단 구상이다.
27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도 단행한다.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27조6834억원을 집행하기로 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3조7000억원 늘어난 금액으로, 증가율은 15.8%에 이른다. 이를 통해 전동화, 자율주행, 글로벌 생산 전략 강화에 나설 방침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19일 임직원 타운홀 미팅에서 "지금은 테슬라가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분야에서 앞서가고 있고 중국 업체들이 빠르게 따라붙고 있지만 2028년에는 누가 더 잘할지 아무도 모른다"며 "그때까지 제대로 된 SDV를 개발해 품질 평가에서 꼭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미래 성장 사업 확보에 사활을 건다. 구 회장은 올해 초 인도 출장 당시 "우리가 어느 정도 앞서 있는 지금이 지속가능한 1등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자는 메시지였다.
이를 위해 LG는 인공지능(AI)·바이오·클린테크 등 이른바 구 회장표 신사업에 향후 5년간 50조원을 투자한다.
특히 AI는 구 회장의 전략적 판단 하에 힘을 쏟고 있는 분야다. 그는 지난해 6월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최신 AI 기술 동향을 직접 점검하기도 했다. LG는 자사 엑사원 시리즈를 발전시켜 계열사 및 글로벌 파트너사의 산업 현장에 적용,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해 바이오에도 투자를 확대한다. 올해는 미국 리듬파마슈티컬스에 4000억원 규모의 희귀비만증 신약 기술을 수출하는 등 성과도 내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고강도 리밸런싱(사업 구조개편) 작업에 나선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내겠단 방침이다. 동시에 미래 성장 산업 육성에도 박차를 가한다.
최 회장은 지난 19일 열린 '제52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 인플레이션, AI발 산업 패러다임 변환이라는 삼각파도 속에 게임의 룰이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변화의 속도에 뒤처지면 도태될 것이고 더 빠른 속도로 변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며 "지금은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에 나설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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