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수원 선경도서관 25억원 기부···최종현 선대회장 뜻 이어 "기업도 사회의 구성원" 인재 육성을 장기 경쟁력 확보 전략 확립최종건 창업회장부터 이어진 '사람 중심 투자'···이틀 전 SOVAC 폐막
SK를 세운 고(故) 최종건 창업회장이 강조한 철학이다. 현재는 단순한 경영 원칙을 넘어 SK그룹의 장기적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을 거쳐 최태원 회장에 이르기까지, SK는 '인재 양성'을 사업 이상의 무한한 자본으로 여기며 그룹 전반에 체계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8일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개관 30주년을 맞은 경주 수원시 선경도서관에 25억원을 기부한다고 밝혔다. 선경도서관은 이름 그대로 'SK의 옛 이름 선경'을 담은 공간이다.
책조차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없던 시절, 사람들은 24개월 할부로 책을 사야 했다. 이에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은 법원과 경찰청 부지였던 이곳을 1989년 직접 매입하고, 도서관 건립부터 장비와 장서 확충까지 정성을 다해 지원하며 기부했다. 지난해 기준 누적 방문객은 2000만명을 넘어섰고, 매년 23만명의 시민이 찾는 지역 대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고향 수원에 세워진 만큼, 최종현 선대회장은 출근 전 이른 새벽 점퍼 차림으로 도서관을 찾아 운영 상황을 챙기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설립 초기부터도 선경도서관에 '최고이자 최초'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 내 최대 규모를 자랑,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음향·영상 자료실을 갖췄고, 전국 공공도서관 가운데 처음으로 전산화 작업도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도서목록카드에 의존해야 했으나, SK가 직접 프로그램을 개발해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기부채납 방식으로 세워진 공공도서관 자체도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었으며, 이번에 최태원 회장이 리모델링 비용을 기부한 것 역시 국내 도서관 가운데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날 경기도 수원시 선경도서관에서 진행된 미디어 브리핑에서 이명옥 선경도서관장은 "SK그룹이 큰 결정과 성원으로 기부해주셔서 감사하다. 최선을 다해서 수원시 도서관을 전국의 대표문화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명옥 관장은 선경도서관 개관식 당시 막내 직원으로 근무를 시작해, 30년간 도서관을 지켜온 개관 멤버다. 이 관장은 앞으로 선경도서관을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이 머물며 쉴 수 있고 문화를 만들어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번에 SK그룹이 기부한 25억원은 1층 리모델링과 노후 금속 배관을 PVC로 교체하는 데 사용되며, 각종 심사를 거쳐 올 연말 공사를 시작해 내년 7월 초 완공될 예정이다.
최종건 창업회장의 '인재 육성' 정신이 담긴 선경도서관은 벌써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수원 시민 고영자 씨는 "처음에는 화장실에 들르려 무심코 들어왔다가 단골이 됐다"며 "두 자녀와 함께 걸어서 한 시간을 오가며, 아이들이 개인당 4000권 넘게 책을 읽을 정도로 내게는 친정집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큰아이는 지금 작가로 활동하고, 둘째는 SK그룹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뿌리에는 선경도서관이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인재 양성의 뜻···최태원 회장이 잇는다
이번 기부는 최태원 회장이 부친 최종현 선대회장과 삼촌 최종건 창업회장이 평생 실천해 온 사람을 키우는 철학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50년대 최종건 창업회장은 전력 부족으로 공장 기계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하던 시절에도 밤마다 직원들을 불러 모아 한글을 가르쳤다. '사람을 키우는 것만이 미래를 바꾸는 길'이라는 신념에서다. 6·25전쟁 직후 폐허가 된 고향 수원을 바라보며 "고향 사람들을 먹고 살게 할 이는 자신밖에 없다"고 부친을 설득해 선경을 창립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당시 최종건 회장의 나이는 28살이었다. 모집한 첫 직원 100명은 최 회장이 정한 '식구가 많은 사람부터 뽑으라'는 원칙에 따라 선발하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
직접 둘러본 SK의 첫 사업장은 5평 남짓한 관리동과 현재 산업관으로 탈바꿈한 두 건물뿐이었다. 이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대규모 섬유회사로 성장한 과정을 지켜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창업 당시에도 형을 위해 모아둔 유학 자금을 내놓고 유학을 1년 미뤘다. 공부를 좋아했지만 "사업이 커지고 있으니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형의 부름에 1962년 귀국해 학자의 길을 접고 형제 경영에 합류했다. 그러나 최종건 창업회장이 불과 48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최 선대회장은 혼자서 무거운 짐을 떠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선대회장은 사람을 키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민간기업 최초로 장학재단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가난한 청년들에게 조건 없는 해외 유학 기회를 열었고, 석유파동으로 기업이 흔들리던 1970년대에도 사재를 털어 장학사업을 이어갔다. 1973년에는 "열 명 중 한 사람만 봐도 청소년에게 유익하다면 조건 없이 지원해도 좋다"라며 고교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장학퀴즈' 제작비용 일체를 후원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최태원 회장 또한 사업 확장과 인재 양성, 사회공헌에 다각도로 뛰어들었다. 2019년 '최종현학술원'을 창립해 사재인 SK㈜ 주식 20만주를 출연하며 스스로 이사장을 맡았다. 사회복지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 청솔복지관도 재건축 비용을 지원해 2010년 재개관할 수 있었다.
최태원 회장은 2019년부터 7년째 국내 대표 참여형 사회문제 해결 플랫폼 'SOVAC'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디자인하다'를 주제로 민간기업과 학계, 정부·공공기관, 청년 세대 등 180여 개 파트너가 참여해 사회적 가치 생태계 확장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선경도서관 새단장을 비롯해 지역사회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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