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호르무즈 곧 열린다지만··· K-정유, '중동 의존도' 깨고 공급망 재편 사활

산업 에너지·화학

호르무즈 곧 열린다지만··· K-정유, '중동 의존도' 깨고 공급망 재편 사활

등록 2026.05.08 07:23

김제영

  기자

아프리카·남미·북미산 원유 도입 확대 움직임중동산 원유 비중, 작년 69.2%→5월 56.3%원유 품질·정제효율 저하, 단기 대응 일시 조치

그래픽=홍연택 기자그래픽=홍연택 기자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중동산 원유 조달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가 대체 공급망 확보에 나서고 있다. 미국·아프리카·남미산 원유 도입이 확대되며 국내 원유 수입 지형에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원유 품질과 정제 설비 구조, 물류비용 등의 한계로 대체 원유 확보가 중장기 해법이 되긴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는 아프리카·남미·북미산 원유 확보를 검토하며 수입선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한화토탈에너지스는 최근 리비아산 콘덴세이트 단기 물량 52만3000배럴을 들여오면서 리비아산 원유 수입이 약 6여년 만에 재개됐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원유 제재가 일시적으로 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 가능성도 제기된다.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는 산업통상부,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최근 베네수엘라산 원유 수입에 대한 사업성 및 설비 적용 가능성을 논의했다.

HD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을 검토 중"이라며 "품질에 대한 검증 작업과 대금 결제 등 제반 문제가 있어 실제 도입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한국이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 비중은 작년 월 평균 69.2%에서 5월 56.3%로 하락할 전망이다. 호르무즈 봉쇄 영향에도 중동 비중은 여전히 과반을 차지하고 있으나, 미국·기타 지역의 원유 도입 물량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대체 원유 확보 움직임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에너지 데이터업체 크플러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원유 수출량은 하루 평균 520만배럴로, 전쟁 직전인 2월(390만배럴)과 비교해 약 33% 증가했다. 전쟁 전 중동산 원유를 수입하던 아시아 국가들의 수요가 미국으로 이동한 영향이다.

이 같은 흐름은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글로벌 원유 시장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중동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3개월 차로 접어들면서 글로벌 원유 수급 구조 자체가 재편되는 양상이다.

특히 전쟁 초기에는 중동 정유 설비 차질로 인해 경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먼저 급등했으나, 최근에는 원유 공급 여력이 축소되고 있다. 공급 차질이 장기화하자 단기 충격을 흡수해 온 국제에너지기구(IEA) 비축유 방출과 유조선 재고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주요 산유국들의 증산 움직임도 공급망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OPEC+ 내 일부 국가들은 6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지만, 호르무즈 해협 통항 불안이 지속되는 만큼, 실제 증산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원유 종류에 따른 품질 차이는 변수다. 미국산·리비아산 원유는 휘발성이 높은 경질유 비중이 큰 반면, 베네수엘라산은 황 함량과 점도가 높은 초중질유로 분류된다. 국내 정유사들은 중동산 중질유를 기준으로 설비가 최적화돼 있어 대체 원유를 대규모로 투입할 경우 생산 효율 저하나 추가 정제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대체 원유 확보가 근본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경제성 측면에서도 운송 거리와 물류비용, 대금 결제 시스템 등 제반 사항을 고려하면 중동 원유의 공백을 완전히 메우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비중동산 원유 도입 지원을 통해 안정적인 원유 공급에 기여하고 있다. 정부는 4~6월 미주·아프리카·유럽산 원유에 대해 중동산 대비 운임 차액 전액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8월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정부 역시 남미산 원유의 한계를 인정했다.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베네수엘라산 원유와 관련해 "초중질유에 가까워 주 타깃이 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중동 외 지역의 원유 수급 다변화를 위해 남미·북미 지역 원유를 지속적으로 도입해왔다. 중동 전쟁 발발 이후 공급 안정성을 위해 그 규모가 더 확대됐다"면서도 "기본적으로 한국 정유사는 대부분 중동산 중질유에 설비가 맞춰 있고, 물류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중동이 가장 경제적인 원유 수급처"라고 말했다.

이어 "원유 도입 차질로 공장이 멈출 수준의 위기는 아니지만 안정적인 공급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중동 지정학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원유 수입선 다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