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파이프라인 인수 넘어 플랫폼 확보·지분 투자로 진화 송도 '릴리게이트웨이랩스' 거점···제2의 올릭스·큐레보 가능성↑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글로벌 제약사들이 한국 기업의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의 권리를 일부 사들이는 수준에 그쳤다면 최근엔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 자체를 전략 파트너로 품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비만치료제 특수로 글로벌 제약 시가총액 1위를 다투는 미국의 일라이 릴리가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에 높은 관심을 보내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릴리, GC녹십자 관계사 '큐레보' 지분 전량 인수
27일 GC녹십자에 따르면 일라일 릴리는 GC녹십자의 미국 관계사 큐레보의 주식 2107만5336주를 약 4599억원에 양수했다. 거래대금 4599억원 중 업프론트(선급금)는 3066억원이고,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이 1533억원이다. 마일스톤은 일정기간 내 매출 목표 달성 시 45일 이내 지급될 예정이다.
큐레보는 GC녹십자가 글로벌 백신 시장 진출을 위해 2017년 미국 시애틀에 설립한 백신 개발사로 대상포진 백신 후보물질 '아메조스바테인(CRV-101)'으로 현재 임상 2상 확장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번 계약은 한국 기업이 미국 현지에서 성장시킨 바이오텍을 글로벌 빅파마가 지분 전체를 매입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여기에 향후 상업용 백신의 생산(CMO)은 GC녹십자가 맡는 형태로, 생산 기지 주도권을 유지했다. GC녹십자 입장에선 대규모 현금 유동성 확보와 함께 글로벌 빅파마인 릴리와의 생산 파트너 지위를 확보한 셈이다.
릴리, 올릭스·알지노믹스·에이비엘바이오 플랫폼 연달아 매수
일라이 릴리가 한국 기업 자산을 매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일라이 릴리는 올릭스와 알지노믹스, 에이비엘바이오 등과 기술이전을 타진했다. 그 결과 지난해 올릭스와 릴리는 MASH(대사이상 지방간염)·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OLX75016(개발코드명 OLX702A)'에 대한 글로벌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OLX75016은 RNA 간섭(RNAi)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 중인 MASH 및 비만 치료제다.
계약 규모는 총 6억3000만달러(약 9117억원)로, 계약금(선급금)과 임상 개발 단계별 마일스톤, 상업화 마일스톤 금액이 포함되며 단계별로 수령하는 모든 마일스톤에 대해서는 반환의무가 없다.
알지노믹스도 릴리와 최대 13억달러(약 2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유전성 난청 질환 RNA 편집 치료제 개발을 위한 라이선스 계약으로 릴리로부터 공동연구개발비까지 수령하며 이행 단계에 진입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 11월 혈뇌장벽 통과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Grabody)'를 릴리에 기술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총 26억200만달러(약 3조8000억원) 규모이며, 선급금 4000만달러(약 585억원)와 함께 릴리는 지분 투자금 1500만달러(약 220억원)도 직접 납입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경우 지분을 직접 취득하며 전략적 파트너십을 시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는 2020년부터 위탁생산(CMO) 계약을 체결하고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3월엔 이보다 한 단계 나아가 릴리와 글로벌 바이오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인 '릴리게이트웨이랩스(LGL)'의 국내 거점을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설립하기 위한 오픈이노베이션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글로벌 제약사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 국내 기업과 협력해 한국에 진출하는 첫 사례로, 릴리는 미국 외 지역 중 한국 거점을 최대 규모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LGL은 오는 2027년 개소 예정이다.
"한국은 요충지"···오픈이노베이션 확대로 추가 딜 기대
릴리는 한국을 단순 기술 구매처가 아닌 글로벌 신약 개발의 전략적 요충지로 삼는 모습이다.
최근 한국릴리 창립 150주년 미디어데이를 통해 릴리 측은 한국에 대한 투자 확대를 공식화했다. 존 비클 한국릴리 대표이사는 "한국은 매력적인 투자 국가로 한국 정부가 '제약바이오 산업 글로벌 5대 강국'을 목표로 제시한 것이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하며, 한국이 이를 달성하는 것을 지지한다"며 "혁신에 가치를 두는 국가는 바이오산업 경쟁력도 함께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병원 시스템·진단·임상시험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연구개발 투자에 적합한 환경"이라며 "초기 단계 유망 스타트업들이 많아 미래 투자 기회가 풍부하다는 점도 중요한 투자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차원의 협력도 가시화됐다. 릴리는 지난 3월 보건복지부와 MOU를 체결하고 향후 5년간 5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으며, 임상시험 유치 확대와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를 핵심 과제로 삼았다. 투자 금액의 97%가 임상시험에 집중 투입될 예정이며 당뇨병·비만·알츠하이머병 등 주요 질환 영역에서 한국의 글로벌 임상 연구 거점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거점이 완공되면 국내 유망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릴리의 축적된 임상데이터와 AI 신약 개발 플랫폼(튠랩스)을 지원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제2, 제3의 큐레보와 올릭스 같은 계약이 진행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삼성바이오는 릴리와의 협업을 'C랩 아웃사이드'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C랩 아웃사이드는 30개 입주사를 선발해 육성한다. 전반적인 운영은 양사가 공동으로 진행한다. C랩 아웃사이드의 입주기업은 시리즈 B 이하의 초기 스타트업이 대상이며, 이미 글로벌 빅파마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기업은 제외된다.
업계 관계자는 "특허 절벽으로 글로벌 빅파마들이 신약 발굴에 적극적인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최신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릴리의 행보가 다른 빅파마의 한국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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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임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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