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 법인 최대주주로 등판, 계열사 편입오너 3세 장남 정명선, 이사 선임···첫 경영 무대자산 700만원·매출 6100만원, 사업 초기 단계
KCC그룹 계열사 명단에 올해 초 낯선 이름 하나가 추가됐다. '호두나무'. 겉으로 보면 자산 700만원, 현금 20만원에 불과한 소규모 법인이지만, 지분 구조와 주주를 따라가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결로 흘러간다. 정몽진 KCC 회장이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이 회사는 대기업집단 계열사로 편입됐고, 오너가의 개인 법인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두나무는 지난 3월 KCC그룹 계열사로 공식 편입됐다. 지분 구조는 정몽진 회장이 71.43%, 장남 정명선 호두나무 대표가 7.14%를 보유하는 형태다. 특히 그동안 그룹 지주사인 KCC 외에는 별도 지분 관계가 없었던 정명선 대표가 처음으로 독립 법인의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는 점에서 변화의 신호로 해석된다.
변곡점은 지난 1월 23일이다. 이때 회사는 발행주식을 기존 4만주에서 14만주로 늘렸고, 정 회장이 새로 발행된 10만주를 인수했다. 단순 계산하면 약 5억원 규모의 증자 참여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지배 구조가 사실상 재편되며 정 회장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같은 날 정명선 대표는 호두나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고, 현재는 대표이사까지 맡고 있다. 본사도 가평에서 서울 강남구 역삼동으로 옮겼다. 계열사 편입 직후인 4월에는 약 6800만원 규모의 사무용 장비도 새로 들였다. 작은 법인이지만 정비는 빠르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회사 이름 '호두나무'는 정 대표가 활동해온 예명 '호두'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1994년생인 정 대표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고, 뇌파와 생체신호 데이터를 활용해 감정과 기억을 예술 콘텐츠로 구현하는 '브레인아트' 작업을 이어왔다. 국립대구과학관, 국립광주과학관, CICA미술관 등에서 관련 전시도 진행한 바 있다.
사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전통 제조업과는 결이 다르다.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뇌파와 감정을 디지털 예술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그룹의 기존 주력 사업인 도료·실리콘 사업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다.
재무 상태는 더 눈길을 끈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계는 700만원, 현금성 자산은 20만원에 불과하다. 반면 차입금은 1억9300만원에 달했고,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1억9400만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여기에 동일인 및 혈족 1촌으로부터 2023년 600만원, 2024년 5700만원을 차입한 이력도 확인된다. 초기 단계부터 오너가의 자금 지원이 이어진 구조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 회사를 단순한 소규모 법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특히 정 회장이 직접 최대주주로 올라선 점, 그리고 정 대표가 전면에 등장한 시점이 맞물리면서다. 일부에서는 오너 3세의 첫 경영 무대이자 실험 성격의 프로젝트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된다.
다만 확대 해석에는 신중론도 있다. 호두나무의 계열사 편입 자체가 사업 확장이라기보다는 지분 구조 변화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발생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공정거래법상 동일인과 특수관계인의 지분 비중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계열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현재 KCC 오너 3세 구도에서도 흥미로운 대비가 나타난다. 정 대표와 누나인 정재림 KCC 상무는 각각 KCC 지분 1.06%씩을 보유하고 있지만, 정재림 상무는 그룹 내부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반면 정 대표는 별도 법인을 통해 독자 행보를 시작한 상태다.
재계에서는 아직 이를 승계 구도와 직접 연결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다만 자본 규모나 사업 성격과 무관하게 오너 3세가 전면에 등장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KCC 내부 지형 변화의 초입 신호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작은 법인 하나가 던진 질문은 의외로 크다. 단순한 예술 프로젝트인지, 아니면 오너가 차세대 구도를 시험하는 무대인지. 시장의 시선은 이제 숫자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의도에 더 쏠리고 있다.
KCC 관계자는 "호두나무는 인간의 뇌파 등 생체신호 데이터를 AI로 해석해 개인의 감정과 기억을 예술 작품·미디어아트·디지털 콘텐츠로 구현하는 아트테크 스튜디오"라며 "KCC와 실질적인 거래 관계는 없으나, 계열사 지정 요건에 해당돼 계열사로 편입됐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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