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모빌리티 중심 고부가 사업 확대 집중정부·업계, NCC 270만~370만톤 감축 목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생존을 위한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범용 제품의 수익성 회복이 요원해지면서 고부가 소재 육성과 저수익 설비 축소를 동시에 추진하는 전면적인 사업 재편에 나섰다. 신사업만으로 기존 매출 공백과 고정비 부담을 상쇄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LG화학, 롯데케미칼, 금호석유화학, 한화솔루션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에틸렌·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등 범용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반도체 소재, 고기능성 합성고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 고부가 분야로 포트폴리오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배경에는 구조화된 공급 과잉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증설로 시장에 공급 물량이 넘치면서 범용 제품 가격 경쟁은 심화됐고 에틸렌 스프레드도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 국면에서는 고가 원료로 생산한 제품을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역래깅 부담까지 겹치며 수익성 개선을 가로막고 있다.
업황 부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산업 기상도'에서 석유화학을 11개 업종 중 유일하게 '비(매우 어려움)' 단계로 분류했다. 하반기 석유화학 수출 역시 상반기보다 14.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기업들은 범용 제품의 물량 경쟁에서 벗어나 기술 장벽이 높은 첨단 소재 중심으로 성장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반도체와 모빌리티, 전력 인프라 등 미래 산업 수요를 겨냥해 고부가 소재 비중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전환 속도가 가장 빠른 분야는 반도체 소재다. LG화학은 미국 후공정 기업 앰코에 반도체용 스트리퍼를 공급하고 동박적층판(CCL), 칩 접착 필름(DAF), 감광성 절연재(PID) 등 패키징 소재를 육성하고 있다. 현재 약 1조원인 전자소재 매출을 2030년까지 2조원으로 늘리고 2035년까지 연구개발에 15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롯데케미칼도 자회사 한덕화학을 통해 경기 평택에 반도체·디스플레이용 현상액(TMAH)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2030년 이후 전략 소재 비중을 60% 이상으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OCI는 반도체 세정·식각 공정용 고순도 인산과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생산 기반을 넓히고 있으며, SKC는 미국 자회사 앱솔릭스를 앞세워 유리기판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존 주력 제품의 고부가화와 비화학 사업 확대도 병행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전기차 타이어용 합성고무 SSBR과 특수합성고무 EPDM 생산능력을 늘리고 MDI 설비의 생산 효율을 높여 원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케미칼 부문 효율화와 함께 미국 태양광 사업과 전력망 소재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고 있다.
다만 고부가 소재 전환만으로 범용 사업 부진을 단기간에 만회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페셜티 제품은 수익성이 높지만 고객사 인증과 양산까지 시간이 걸리고 다품종 소량생산 특성상 범용 제품의 매출 규모를 대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가동률 하락에 따른 범용 설비의 고정비 부담도 커져 저수익 설비를 유지할수록 재무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
정부도 산업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롯데케미칼과 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의 대산산단 사업 재편안을 석유화학산업 1호 프로젝트로 승인했다. 롯데케미칼 대산사업장을 분할해 HD현대케미칼과 통합하고 3년간 연산 110만톤 규모의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을 중단하는 내용이다. 중복되거나 수익성이 낮은 범용 다운스트림 설비도 축소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와 업계는 국내 NCC 생산능력을 270만~370만톤 줄이는 것을 목표로 설비 통폐합과 고부가 제품 전환을 병행할 계획이다. 적자 설비를 유지하며 업황 반등을 기다리기보다 생산능력을 선제적으로 조정해 고정비를 낮추고, 확보한 재원을 첨단 소재와 신사업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구조 개편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부가 소재 전환은 필수지만 범용 제품의 매출과 설비 부담을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며 "경쟁력이 떨어진 설비를 정리하고 확보한 재원을 성장 사업에 집중하는 구조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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