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터러시(Literacy)'.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 즉 문해력(文解力)을 뜻한다. 농경사회에서는 생산을 위한 노동 역량이, 산업사회에서는 지식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정보화 사회에서는 컴퓨터와 인터넷 활용 능력이 개인과 사회의 경쟁력을 좌우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AI 리터러시'란 무엇일까?
AI 리터러시, 기술을 넘어선 '시대의 문해력'
흔히 AI 리터러시라고 하면 복잡한 파이썬 코딩이나 딥러닝 알고리즘의 수학적 이해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는 개발자와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대중에게 필요한 AI 리터러시란 단순한 기술 조작 능력과는 차원이 다르다. AI가 어떻게 작동하며 어떤 강점과 한계를 지니는지 이해하는 인지적 소양,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도구를 학업·업무·일상에 활용하는 실무적 역량, AI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윤리적·법적 문제를 고려하는 판단력까지 모두 포함한다. AI 리터러시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생존 역량이자, AI 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새로운 소양이기도 하다.
AI 리터러시 결핍이 불러올 치명적 위기들
AI 리터러시의 차이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AI를 개인 비서처럼 활용하여 하루 만에 열흘 치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과, 여전히 모든 작업을 수작업에 의존하며 기술을 두려워하기만 하는 사람의 생산성 격차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확대될 것이다. 기술에서 도태된 개인은 결국 노동 시장에서 밀려나고, 이는 심각한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거짓 정보의 무비판적 수용이 초래할 사회적 혼란이다.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으로 정교한 딥페이크(Deepfake) 영상과 합성 음성이 범람하고 있다. 대중의 AI 리터러시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가짜 연설이나 조작된 투자 정보가 순식간에 진실로 둔갑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낳을 수 있다. 사실이 아닌 것을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AI의 환각(Hallucination) 현상을 검증 없이 수용하면서 발생하는 일상적 참사도 적지 않다.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에 윤리의식과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다면, 우리 모두가 잠재적 범죄자이자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국가적 관점에서도 아무리 뛰어난 AI 모델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국민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생산성 향상도, 산업 혁신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AI 리터러시는 도로와 통신 인프라와 같이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사회적 기반 역량이다.
글로벌 강국들의 전 국민 AI 역량 경쟁
이러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글로벌 주요국들은 대국민 AI 리터러시 함양을 국가 주요 과제로 삼아 전력투구하고 있다.
핀란드의 'Elements of AI'
가장 대표적인 모범 사례는 핀란드다. 핀란드는 2018년 헬싱키대학교와 AI 기업 Reaktor가 공동 개발한 무료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 '인공지능 기초 입문(Elements of AI)'을 국가 차원에서 적극 확산시켰다. 이 프로그램은 기술 전문가 양성보다 일반 시민이 AI의 기본 원리와 사회적 영향, 책임 있는 활용 방식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당초 핀란드 인구의 1% 교육을 목표로 시작했으나 직관적인 기능 설계 덕분에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2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현재는 전 세계 100만 명 이상이 수강한 대표적인 글로벌 AI 리터러시 교육 사례로 자리 잡았다.
미국의 'K-12' 공교육 혁신
미국 역시 AI 리터러시를 국가 안보 및 21세기 민주 시민 교육의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2021년 '국가 인공지능 이니셔티브법(National AI Initiative Act)'을 기반으로 AI 연구와 인재 양성을 확대해 왔으며, 최근에는 연방 정부 차원의 AI 정책과 함께 주 정부와 교육기관 중심으로 초·중등(K-12) 교육 현장에서 AI 활용 역량과 교사 역량 강화를 확산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래 세대가 AI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책임 있게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싱가포르의 생애주기별 평생교육
국가 생존 전략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을 밀어붙이는 싱가포르는 전담 기관인 'AI Singapore(AISG)'를 필두로 비전공자 대상 무료 교육 과정인 '모두를 위한 인공지능(AI for Everyone, AI4E)'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을 국가 평생학습 제도인 '스킬스퓨처(SkillsFuture)' 등 국가 평생학습 체계와 연계해 자영업자, 주부, 은퇴 고령층까지 아우르는 생애주기 전반의 AI 리터러시 확산에 힘쓰고 있다.
중국의 기술-교육 투트랙 전략
AI 패권 경쟁의 한 축인 중국의 정책 또한 매섭다.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한 이후 베이징 등 주요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정규 교과 내 AI 교육을 도입·확대하고 있다. 대학과 직업교육 과정에서 AI 관련 학과와 교육 프로그램을 빠르게 확대해 고숙련 인재를 쏟아내는 한편, 유아기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의 AI 친숙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대중화 전략을 정교하게 결합하고 있다.
국가마다 접근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AI를 잘 만드는 나라'보다 '국민 모두가 AI를 잘 활용하는 나라'가 결국 최후의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의 AI 리터러시, 모두의 경쟁력
AI 대전환 시대에는 소수의 기업과 기관의 기술에만 의존하기보다, 전 국민의 AI 리터러시 역량을 고르게 끌어올릴 맞춤형 지원책과 함께 개개인의 노력도 절실하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성장하며 AI를 자연스럽게 접하는 이른바 'AI 네이티브' 세대는 단순히 과제나 숙제를 대신 해결하는 도구로 AI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올바른 질문을 설계하여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며 AI와 효과적으로 협업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표절이나 편향성 등 AI 윤리에 대한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을 세우는 윤리적 수용성 교육도 필수적이다.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는 말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직장인들은 자료 조사, 데이터 분석, 기획서 작성, 외국어 번역, 자료 탐색 등 업무 프로세스 전반에 AI를 적극 도입하는 '업스킬링'과 '리스킬링'에 매진해야 한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역시 마케팅, 홍보 콘텐츠 제작, 매출 분석, 고객 응대에 AI를 접목해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러한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모여 압도적인 생산성 차이를 만들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고령층 및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AI 리터러시는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이자 세상과의 '소통 창구'다. 지자체나 기관이 제공하는 교육에 적극 참여해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누리는 한편, 정교해지는 딥페이크나 보이스피싱 같은 신종 범죄를 판별하는 방어력을 길러야 한다. 아울러 가족과 사회는 이들이 AI 시대에 고립되지 않도록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승부수, '전국민 AI 경진대회'와 '모두의 AI'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 정부의 발걸음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역동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등이 추진하고 있는 '전국민 AI 경진대회'는 전국민 AI 리터러시 함양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혁신적인 시도다. 복잡한 코드를 짜는 개발자들만의 리그였던 과거의 획일적인 AI 대회에서 벗어나, 어린이부터 청소년, 일반인, 고령층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직접 AI를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다채로운 트랙을 마련해 진정한 의미의 '국민 축제'로 만들어 가고 있다.
특히 이 사업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모두의 AI' 사업은 대한민국의 인공지능 일상화와 대국민 리터러시 도약을 이끄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다. 소수 전문가와 IT 기업만의 전유물이었던 AI를 전 국민의 삶 속으로 스며들게 하겠다는 국가적 의지가 담겼다.
이러한 정책적 장이 온전한 결실을 보려면 국민들의 능동적인 호응이 필수적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거대한 AI 학습의 장에서 인공지능을 직접 다루어 보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실전 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활용법을 축적해야 한다.
성숙한 역량을 갖춘 AI 리터러시 강국을 기대하며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와 탄탄한 AI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AI를 잘 만드는 나라를 넘어, 'AI를 가장 현명하게 활용하는 국민'을 만드는 일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국가 경쟁력은 뛰어난 AI 기술을 개발하는 역량과 함께, 국민 전체가 그 기술을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역량에서 나온다.
정부는 AI 리터러시를 국민의 기본적 디지털 복지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해야 한다. 학교와 기업, 지역사회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촘촘한 AI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고, 소득이나 지역의 격차 없이 누구나 AI의 혜택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과감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국민들 역시 AI를 막연히 두려워하며 거리두기를 하거나, 반대로 전지전능한 마법처럼 맹신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AI는 결국 사람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한 정교한 '도구'이며, 그 도구의 손잡이를 쥐고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다. AI를 이해하고 잘 활용해 인간의 판단력과 창의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강력한 AI를 가진 나라가 아니라, AI를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책임 있게 활용하는 국민이 많은 나라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다음 도전은 AI 기술 확보를 넘어 '모두의 AI 역량'을 키우는 일이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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