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격제 유지 가능성에 수익성 부담정부·업계 5조원 손실 보전 놓고 충돌담합 수사 변수 겹쳐 하반기 불확실성 확대
정부가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유지·강화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정유업계가 가격 통제, 손실보전 불확실성, 담합 수사라는 '삼중 압박'에 놓였다. 국제유가와 중동 정세라는 시장 변수에 더해 정부 정책과 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하반기 수익성 방어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업계에서는 과거 정유업계 실적을 좌우했던 국제유가보다 이제는 가격 결정권 제한과 보전 기준을 둘러싼 정책 불확실성이 더 큰 경영 리스크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완화하거나 종료하는 방안보다 국제유가와 중동 정세 변화에 따라 제도를 유지·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가 상승기에 발생할 수 있는 매점매석 행위에도 강력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으면서 정부의 시장 관리 기조도 한층 강화되는 분위기다.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국제유가가 급등하더라도 정유사가 정부가 정한 가격 이상으로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최근 국제유가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제도가 예상보다 장기화될 경우 정유사는 원가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최고가격제 시행에 따른 손실보전 기준도 갈등 요소다. 정부는 제도 시행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4조2000억원 규모의 목적 예비비를 편성하고 정산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보전 범위와 산정 기준을 놓고 정부와 정유업계 간 이견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핵심 쟁점은 '기회비용' 인정 여부다. 정유업계는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과정에서 가격 결정권이 제한됐고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국제 시세에 맞춘 판매나 수출 확대를 통해 확보할 수 있었던 수익까지 손실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실제 발생한 원가 상승분 등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손실을 기준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가 추산하는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누적 손실 규모는 약 5조원으로 정부가 마련한 예비비 규모를 웃돈다.
손실보전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정유사 담합 수사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검찰은 국내 정유사들이 유가 변동 과정에서 담합을 통해 일정 수준의 이익을 확보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는 정부와 공유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손실보전 절차와 담합 수사는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정산 심사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담합 수사가 손실보전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한다. 정부가 정유사의 실제 이익 규모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정부 가격 통제로 발생한 손실을 보전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동시에 과거 수익 구조까지 검증받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됐다.
시장 환경도 부담이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과 홍해 항로 불안까지 겹치면서 원유 조달 비용과 해상 운임 상승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통상 정유사는 원유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해 대응하지만 최고가격제가 유지될 경우 이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 원가는 오르는데 판매가격은 제한되는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국제유가 변동에 따른 재고평가 손실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하반기 실적 개선 여력도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 상승 자체보다 가격 통제와 손실보전 기준, 수사 리스크가 동시에 진행되는 점이 더 큰 부담"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변수보다 정책과 제도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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