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태원 회장이 잃은 것···9440억보다 무거운 'SK 총수의 서사'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신지훈의 굳이 산업

최태원 회장이 잃은 것···9440억보다 무거운 'SK 총수의 서사'

등록 2026.08.19 14:18

신지훈

  기자

reporter

9440억원.

숫자만 놓고 보면 이번 이혼 재산분할 소송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잃은 것은 명확해 보인다. 서울고법은 지난달 24일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의 665억원보다 14배 이상 많고, 2심의 1조3808억원보다는 줄었지만 국내 이혼 재산분할 가운데 손꼽히는 규모다.

물론 법적 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다. 최 회장 측이 다시 대법원 판단을 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7년 시작된 두 사람의 법적 다툼이 9년 가까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하나의 분기점이다.

그렇다면 최 회장이 잃은 것은 9440억원일까. 아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돈은 가장 눈에 잘 보이는 손실일 뿐이다. 이번 판결은 개인 자산을 넘어 최 회장의 성공을 바라보는 시선, 나아가 'SK의 서사'에도 흔적을 남겼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혼인 기간 중 취득한 재산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최 회장에게 재산의 3분의 2, 노 관장에게 3분의 1을 인정했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9440억원을 지급하도록 했다.

SK㈜ 주식은 최 회장에게 단순한 투자자산이 아니다. SK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는 경영권 자산이다. 따라서 재산분할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개인 자산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SK㈜ 지분을 직접 처분하는 것은 경영권과 맞닿아 있어 부담이 크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주식의 가치만이 아니다. 최 회장의 성공 서사에도 법원의 판단이 하나의 흔적을 남겼다.

최 회장은 SK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총수다.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 사업에서 에너지·배터리·반도체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고, SK하이닉스 인수는 그룹의 위상을 바꾼 대표적인 승부수로 평가받는다. 그동안 SK의 성장은 '최태원의 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압축돼 설명돼왔다.

그러나 법원은 혼인 기간 동안 형성된 재산의 가치 증대에 노 관장의 기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가사와 양육 역시 재산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봤고, 그 판단의 결과 SK㈜ 주식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됐다.

이를 두고 노 관장이 SK를 만들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반대로 최 회장의 경영 성과만으로 오늘날 SK의 가치를 모두 설명하는 것 역시 이번 판결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결국 이번 소송의 핵심은 누가 SK를 만들었느냐가 아니다. 한 사람이 경영을 통해 만들어낸 성과와 다른 한 사람이 가사와 양육 등으로 뒷받침한 기여를 어떻게 재산적 가치로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 회장의 경영 성취와 개인 재산 사이의 경계가 법정에서 다시 그어졌다.

여기에 9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최 회장이 이혼 조정을 신청한 것은 2017년 7월이다. 이후 2022년 1심, 2024년 2심을 거쳐 대법원의 파기환송과 올해 파기환송심까지 이어졌다. 그 사이 SK는 반도체와 배터리, AI, 에너지 등 미래 사업을 둘러싼 경쟁에 뛰어들었다. 개인적인 법적 분쟁이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총수 개인을 둘러싼 법적 공방이 9년간 이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결코 가벼운 개인적 비용은 아니다.

그렇다면 최 회장은 모든 것을 잃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최 회장은 SK그룹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판결 역시 경영권 자체를 흔드는 방식으로 지분을 분할하지 않았고, 노 관장에게 돌아갈 몫도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결국 최 회장이 지켜낸 것은 SK다. 대신 SK를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개인적 비용은 커졌다. 9440억원은 그 비용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숫자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이 있다. 어쩌면 이번 소송에서 최 회장이 가장 크게 잃은 것은 돈이 아니라 '확신'일지도 모른다.

기업을 키운 경영자의 성과가 어디까지 개인의 성취이고, 어디까지 가족의 기여인지, 기업의 가치가 커질수록 그 기업을 지배하는 개인의 재산과 공동의 재산을 어디에서 나눌 것인지, 이번 소송은 그 경계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최태원 회장이 이번 소송에서 잃은 것은 SK가 아니다. SK를 자신의 성공과 온전히 동일시할 수 있었던 시간과 서사, 그리고 그 성공의 결과물을 개인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확신에 더 가깝다.

SK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개인적 비용은 결코 작지 않았다. 9440억원은 그 비용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숫자일 뿐이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