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규제에 SK하이닉스·명신산업 잇단 제동현대차·LG전자·두산 등 자회사 상장 전략 재검토주주 보호·기업 자금조달 사이 합리적 기준 마련 필요
SK하이닉스가 미국 자회사 솔리다임의 기업공개(IPO) 추진을 중단하며 당분간 후폭풍이 지속될 전망이다. SK그룹이 중복상장 논란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후발주자들도 해외 자회사 상장 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전자, 두산그룹 등 해외 자회사 상장을 추진 중인 다른 기업들도 사업 확장과 자금조달이라는 실익을 유지하면서 주주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SK하이닉스 "자본시장 여건 등 고려해 IPO 중단" 공시
SK하이닉스는 최근 자본시장 여건과 주가흐름 등을 고려할 때 현재 IPO가 SK하이닉스와 기존 주주들에게 가장 유리한 선택인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솔리다임의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 및 IPO 추진 검토를 중단한다고 23일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이날 "해외 종속회사인 솔리다임은 생산능력 확대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자금조달 방안을 검토해 왔으나 자본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프리IPO 및 기업공개에 대한 검토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총 90억달러 규모로 인텔의 낸드·SSD 사업을 인수하며 출범한 법인이다.
솔리다임은 올해 들어 뉴욕 증시 상장을 목표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상장 대표 주관사로 낙점하고 실무 절차를 밟아왔지만 중복상장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SK㈜→SK스퀘어→SK하이닉스→AI컴퍼니→솔리다임'으로 이어지는 다층적 지배구조 속에서 SK㈜와 SK스퀘어, SK하이닉스는 이미 상장된 상태다. 시장에서는 솔리다임까지 상장되는 경우 모회사 주가가 저평가되는 '중복상장 할인(더블 카운팅)'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압박도 거세졌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중복상장에 저촉된다는 판단은 금융위도 하고 저희도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종합국정감사에서 "SK스퀘어랑 SK하이닉스가 모회사로서 주주 충실의무에 기반한 5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며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적용 대상이라고 밝혔다.
앞서 명신산업의 경우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손자회사 심원아메리카의 해외 상장 추진에 반대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코스피 상장사인 명신산업은 자동차 차체 부품제조 전문업체다. 회사 측은 지난 14~16일 주주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결과 주주 소통절차 및 주주 보호방안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김용진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솔리다임 상장 철회는 기존 주주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자회사를 별도로 상장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사례"라며 "앞으로도 국내 기업들이 기존 사업을 확장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예탁증서(ADR) 등 다른 대안이 떠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주가치 보호하되 투자 확대 위한 상장은 허용 필요"
솔리다임의 상장 철회가 현실화하면서 해외 자회사 IPO를 추진 중인 다른 대기업들의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나스닥 상장을 검토 중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56.4%는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가 투자 목적으로 설립한 미국 현지법인 HMG글로벌이 보유하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의 나스닥 상장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네이버에서 물적분할된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두나무와 포괄적 주식교환 완료 이후 1년 이내 네이버파이낸셜의 기업공개(IPO)위원회를 구성하고 완료일부터 5년 이내 상장을 추진하기로 약정했다.
LG전자의 미국 로봇 자회사 베어로보틱스도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를 추진하고 있으며 두산그룹 미국 수소·연료전지 자회사 하이엑시엄은 지난달 외국계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IPO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했다. CJ대한통운의 물류 자회사 다슬로지스틱스 역시 인도 증시 상장을 추진하며 현지 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모회사 주주가치 훼손을 방지하면서 기업의 자금조달과 사업 확장을 보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규제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의 의사결정 자체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회사 상장이 주주 이익에 부합하는 결정이었는지는 이사들의 주주 충실의무에 따라 판단하고 문제가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해외 IPO를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을 일률적으로 막는 것은 혁신과 투자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상장은 엄격하게 심사하되 독립적인 성장과 투자 확대를 위한 상장은 합리적으로 허용하는 균형 잡힌 제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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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노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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