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외계 괴수영화다. 괴물이 나오고 인류가 대항해 물리친다는 스토리다. 진부하고 따분할 정도의 반복 스토리다. 그럼에도 ‘퍼시픽 림’이 화제의 주인공이 됐고, 올 여름 블록버스터 대전의 다크호스로 꼽혔던 점은 독특한 콘셉트에 있을 것이다.
1970~80년대 안방극장으로 어린이들을 끌어 모은 거대 로봇 만화영화의 향수를 차용한 영민함이 ‘퍼시픽 림’에는 있다. 여기에 일본 영화의 전유물로 여겨진 괴수물이 결합됐다. 이 정도면 지금의 30~40대에겐 ‘퍼시픽 림’은 추억이 된다. 여기에 무려 ‘괴수의 미학’을 가진 길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이다. 기대 충만이다.
시작과 함께 높이 80m에 달하는 ‘예거’(로봇)가 등장한다. 태평양 한 가운데 뚫린 웜홀을 통해 지구로 들어온 ‘카이주’(괴물)와의 대결은 엄청난 사운드와 함께 심박수를 끌어 올리는 데 모자르지 않다. 더욱이 사람이 직접 들어가 조종하는 ‘예거’는 남성들만이 갖고 있는 거대 로봇에 대한 로망을 건드리며 몰입감을 높인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조차도 이런 로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가.
문제는 초반 10여분의 격렬한 전투신이 끝난 뒤 데워진 몸의 체온이 너무 빨리 식는단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 체온을 다시 데우는 방법이 너무도 가식적이다. 주인공의 트라우마는 온데간데 없고 느닷없이 새로운 여자 파트너와 묘한 러브라인을 구축한다.
글쎄 감독이 이 영화의 방점을 스토리가 아닌 거대 로봇과 거대 괴수의 난타전에 포인트를 맞춘 것인가로 넘겨짚고 영화를 봐야 할 듯하다. ‘퍼시픽 림’을 통해 영화의 완성도와 스토리의 개연성 배우들의 연기력을 평가하는 관객들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다시 말해 이 ‘퍼시픽 림’은 남성 로망의 스크린 데뷔작 정도로 정리하는 게 적당하다.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로봇에 대한 판타지를 건드리며 적중했다면, ‘퍼시픽 림’은 (만약 흥행에 성공할 경우) 거대 로봇 파일럿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건드린 할리우드 상술의 기민한 승리가 될 수 있겠다. 초거대 유조선을 야구 방망이 휘두릇 하는 ‘예거’의 파일럿이라니. 생각 만해도 극도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망을 한다면 그 또한 거대 로봇과 괴수에게 느낄 것이다. 할리우드 ‘괴수 전문가’ 길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이라고 느끼기엔 2% 모자란 듯한 CG 완성도가 아쉬울 따름이다. 일부 장면에서의 ‘카이주’는 심형래 감독의 ‘용가리’를 연상케 할 정도로 고개가 갸우뚱 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드리프트’란 독특한 방식의 2인 또는 3인 조종 시스템과 각 나라별 특징을 가진 5대의 ‘예거’는 바라만 봐도 색다른 재미를 느끼게 만든다.
덧붙여 아쉬움 한 가지. ‘퍼시픽 림’은 한국 영화시장이 전 세계에서 얼마나 중요한를 망각한 듯하다. 최근 할리우드 톱스타들이 대거 내한을 결정하며 한국 시장의 중요도를 역설했다. 워쇼스키 남매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 ‘네오 서울’이란 시퀀스를 넣어서 한국 관객들을 배려(?)하기도 했다. 이밖에 여러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어와 한국 배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레드2’에선 이병헌의 한국어 대사도 나온단다.
‘퍼시픽 림’에선 각 나라별로 5대의 예거가 등장한다. 아시아권에선 중국과 일본이다. 특히 일본은 주인공 여배우와 영화 속 하나의 시퀀스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가만 보니 극중 ‘카이주’가 괴물이라는 뜻의 일본어란다. 더욱이 카이주를 보면 일본 괴수물의 레전드 ‘고지라’가 생각난다. 이건 ‘퍼시픽 림’이 일본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가 아닌가란 생각마저 들게 한다.
로봇에 대한 로망을 쫓는다면 무조건 관람을 추천한다. 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기대를 갖지 말기를 바란다. 개봉은 11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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