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누굴 위한 ‘乙’ 보호인가?···‘갑의 횡포’ 진원지는 국회

올 초부터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닥치며 정치권을 비롯해 경제계를 뜨겁게 달궜다. 특히 남양유업 파동으로 시작된 ‘갑을 신드롬’은 경제민주화 촉매제가 됐고 정치·사회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사실 ‘갑을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재벌 중심의 시장경제 구조가 강화되면서 갑을관계는 더욱 뚜렷해졌다. 남양유업으로 촉발된 기업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의 횡포’는 유통, 제조, 서비스 전 분야에서 봇물 터지듯 터져나왔고, 여기에 기업들은 고개를 숙여야 했다. 기업들은 계약서에서 ‘갑’과 ‘을’ 용어를 삭제하거나 대국민사과를 하는 등 진화를 시도했다.

여야 정치권은 ‘갑의 횡포’에 맞대응하기 위해 특별위원회와 상설 조직 구성과 입법 등 ‘을 보호’ 첨병 역할을 자청해왔다. 그러나 ‘을’ 보호자를 자청하고 있는 정치권이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의 횡포’에 대해서는 묵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의 입법권을 쥐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과 국가정보원 정치 글 수사 외압 논란 등 정쟁으로 민생 법안을 비롯해 경제활성화 법안까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로 기업들이 실적 악화로 신음하고 있고, 국민들의 가계부채가 최고점을 기록하는 등 국내외 상황이 불투명한 상황인데도 정쟁에 파묻혀 국민인 ‘을’을 돌보기는커녕 정쟁에 함몰돼 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러한 정치권의 ‘갑의 횡포’에 어느 누구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 지난 6년간 예산안 처리가 법정시한(12월 2일)내에 처리되지 못해 모두 해를 넘겨서 처리됐다. 이뿐만 아니다. ‘민생’을 외쳤던 지난 18대 국회에서 처리한 법안은 발의 6000건 중 35%에 불과, 정쟁으로 나머지는 자동파기 되는 등 ‘민생’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지난 5월 기준으로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만 5000건이 넘었지만 지난 상반기 처리된 법안은 고작 900여건에 불과하다. 16대 국회에서 51%였던 처리율은 17대 국회에서 50% 밑(43%)으로 뚝 떨어진 데 이어 18대 국회 35%, 19대에선 18%로 추락한 것이다.

법률의 제정과 개정, 국정감사, 국가예산안 및 결산안 심의 등 국가의 중요사안을 결정하는 국회의원의 이러한 직무유기는 ‘갑의 횡포’라는 지적이 무리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갑의 횡포’는 국정감사에서도 나타난다. 올해 국감은 유난히 기업인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기업 국감’ 아니냐는 비나냥이 쏟아졌을 정도다. 올해 국감에는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이 196명으로 2011년(80명)에 비해 2.5배 많다.

게다가 기업인을 증인을 불러 놓고는 질문은 하지 않고 호통만 치는 것으로 끝내는 구태도 여전했다. 국감을 계기로 기업인들을 대거 불러 호통 치면서 갑의 위상을 확실히 각인시키기 위한 의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갑의 횡포’를 문제 삼으면서 국회의원 스스로 ‘갑질’을 하고 있다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철 기자 tamad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