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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재자’, 아버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무비게이션] ‘나의 독재자’, 아버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등록 2014.10.24 15:43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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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독재자’, 아버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기사의 사진

부모가 되면서부터 삶에 대한 가치관은 확고하게 변화가 일어난다. 부모가 되는 순간 나 자신은 없어지고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알림이 울리게 된다. 내가 없는 나는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점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부모로서 내가 없는 나가 되는 순간은 다르다. 나를 대신한 자식, 자식을 위해 자신의 심장이라도 꺼내주고 싶은 애(愛)가 발동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가 되는 순간부턴 삶은 완벽하게 변화하게 된다.

영화 ‘나의 독재자’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얘기다. ‘독재자’란 단어에서 느낄 수 있듯 언뜻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아버지상에 대한 얘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아니다. 작가 조창인 장편소설 ‘가시고기’처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와는 또 틀리다. ‘나의 독재자’는 자식을 위해 자식에 대한 사랑의 간절함을 위해 나아가 아들에게 모든 것이었던 아버지인 자신을 위해 평생을 연극 속에서 살아야 했던 어떤 가련한 아버지의 얘기다.

 ‘나의 독재자’, 아버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기사의 사진

가난한 아버지가 있었다. 연극 배우를 꿈꾸지만 무대에서 제대로 된 대사 한 번 한 적 없는 꿈만 꾸고 사는 아버지, 그는 김성근(설경구)이다. 아내와 사별 후 노모와 함께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 연극에 미쳐 제대로 된 벌이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무대에 서는 기회를 잡게 된다. 대타로 오른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에 당황하게 대사 한 마디 못하고 망신을 당한다. 그 모습을 본 아들과 노모는 실망한다. 하지만 진짜 실망은 김성근 자신이다. 평생에 꿈이던 기회를 자신이 날린 꼴이 된다. 그렇게 또 다시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온다. 일생일대의 엄청난 연극 속 주인공으로 캐스팅이 되는 것이다. 김성근은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듯 혼신의 힘을 다해 배역에 빠져든다. 그렇게 김성근은 배역에 미쳐갔다.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흘렸다.

‘나의 독재자’는 아버지와 아들의 얘기다. 아니 아들이 평생을 바라본 아버지에 대한 얘기다. 아들이 평생을 바라보고 오해했던 아버지의 가슴 절절한 부성애를 말한다.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믿고 20년의 시간을 살아온 아버지의 길고 긴 연극은 아들에게 말한 ‘위대한 연극’임과 동시에 고통의 연극이었고 삶의 연극이었으며 아버지의 연극이었다.

 ‘나의 독재자’, 아버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기사의 사진

서슬퍼런 시대 속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의 상대역으로 뽑힌 김성근은 그렇게 자신을 위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김일성이 돼버렸고, 김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의 흐름 속에 김성근이란 이름을 지워나갔다. 그런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 태식(박해일)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었다. 부모란 이름, 자신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아버지는 이제 없어졌다. 자신의 모든 삶이 아버지 성근으로 인해 망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태식은 자신을 다독이며 “괜찮다. 다 괜찮다”고 다독이던 든든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20년 동안 그리워 했는지도 모른다.

20년 동안 김일성으로 살아오며 정신병원에서 생활한 김성근과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신을 망가트려 가던 태식은 결국 20년 전 두 사람의 보금자리였던 낡은 집에서 다시 조우한다. 재개발 보상을 위해 아버지의 인감도장이 필요했던 태식과 20년 동안 이어져 오던 연극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된 성근에게 그 집은 특별한 의미다. 아들 태식에겐 아버지의 사랑이 묻어 있던 공간이고, 아버지 성근에겐 아들에게 떳떳하게 설 수 있는 마지막을 준비하는 대기실이고 분장실이고 자신의 묻힐 장소였던 것이다.

 ‘나의 독재자’, 아버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기사의 사진

영화는 20년의 시간 동안 아버지 성근과 아들 태식이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그 안에서 두 사람의 유대관계가 어떻게 다시 복원되며 마지막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그 20년의 시간 속 흐름이 결코 덧없는 물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하이라이트에서 선보여 지는 성근의 독백신은 근래 등장했던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파괴적이면서도 가장 눈물샘을 자극하는 명장면으로 꼽기에 아깝지 않다. 20년 전 아들의 앞에서 망신을 당했던 그 대사를 아버지 성근은 당당히 또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20년 동안 자신이 갇혀있던 감옥을 열쇠를 열고 스스로 걸어 나오는 이 장면은 이 시대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의 순간이다. 태식이 마룻바닥 자신의 보물창고 찾아낸 그 물건도 어떻게 보면 20년 동안 스스로가 갇혀 있던 감옥의 빗장을 푸는 열쇠였을 것이다.

 ‘나의 독재자’, 아버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기사의 사진

‘나의 독재자’ 1970년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실제 김일성의 대역이 존재했었다는 팩트에서 출발한다.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은 손쉽게 인물들의 아픔으로 드러낼 수 있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연출과 시나리오를 쓴 이해준 감독은 이 영화를 지금도 가족들을 위해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에 대한 얘기로 풀어냈다.

영화 중간 허교수(이병준)가 성근을 위해 교육하는 콘스탄틴 스타니슬라브스키(1863-1938)의 저서 ‘배우수업’에서 언급된 ‘진실 되며 살아있는 연기’ 속 ‘메소드 연기’(리 스트라스버그가 정립)는 어쩌면 ‘권력자’의 철두철미한 연습을 위해 만들어진 ‘김일성 대역’ 김성근을 위한 말이 아닌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우리를 위해 살아오며 우리만을 위해 살고 있는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버린 채 연기하는 그 삶의 정의를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독재자’, 아버지 당신의 삶을 존경합니다 기사의 사진

그래서 ‘나의 독재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슬픈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자신을 버리고 평생을 연극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다. 오는 30일 개봉.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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