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경영 일선서 멀어져···대부분은 작고불가능 우려 딛고 초고속 성장으로 ‘한강의 기적’ 신화 일조후대 경영자, 기업가 정신 본받아 새로운 경제신화 이뤄내야
대표적 재계 1세대는 현재 자산총액 기준 상위 10대 기업의 창업주들을 일컫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특히 6·25 전쟁이 끝난 이후 1980년대 중반 또는 1990년대 중반까지 각 기업의 총수로 일하면서 오늘날 기업 경영의 기반을 닦은 이들이 재계 1세대로 분류된다.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고 아산 정주영 현대 창업주, 고 연암 구인회 LG 창업주-상남 구자경 LG 명예회장 부자, 고 담연 최종건 SK 창업주-고 최종현 전 SK 회장 형제,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 고 정석 조중훈 한진 창업주 등이 대표적 재계 1세대 인사들이다.
위에서 언급된 재계 1세대 인사 8명 중에서는 6명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 중에서는 연암 구인회 LG 창업주와 최종건 SK 창업주가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호암은 1987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나머지 인사들은 대부분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 타계했다.
마지막으로 경영 일선에 남은 사람은 신격호 총괄회장이었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전까지 대한해협을 수시로 건너며 한·일 롯데를 총괄 관리하는 ‘셔틀경영’을 원만히 수행할 정도로 왕성한 활력을 보였다.
그러나 신 총괄회장도 최근의 그룹 경영권 분쟁 여파로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모습이다. 이미 대부분의 계열사 경영을 차남 신동빈 회장이 장악했고 90대 중반에 들어선 신 총괄회장의 건강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1세대가 걸어 온 역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폭발적인 성장과 해외 수출 중심의 경영을 통해 전쟁 이후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불과 50여년 만에 세계 10위권으로 끌어올리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호암은 남들이 모두 실패할 것이라고 여겼던 전자 산업, 특히 반도체 산업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컬러 TV를 비롯한 백색가전 사업도 경쟁사인 금성사(현 LG전자)보다 한발 늦게 시작했지만 우수한 기술 개발과 공격적 마케팅을 앞세워 고속 성장을 이뤘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은 세계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반도체 강국이 됐다. 반도체 기술 덕에 컴퓨터 산업이 발전했고 이는 세계적인 인터넷 강국의 기반이 됐다. 또 백색가전과 휴대전화 분야에서도 한국 기술의 우수한 경쟁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아산도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모두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던 꿈을 1970년대에 현실화했다. 아산은 자동차 고유모델과 국산 엔진 생산의 고집을 관철시켰고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 지폐를 보여주면서 차관을 얻는 기개를 발휘한 끝에 울산에 대형 조선소를 지었다.
‘포니’에서 시작된 국산 자동차의 성공신화는 오늘날 현대·기아차를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 빅5의 일원으로 키운 밑거름이 됐다. 더불어 현대중공업은 우리보다 한발 앞섰던 일본을 제치고 부동의 세계 조선업계 1위 업체로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종건-최종현 형제는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의 꿈을 함께 꿨고 최종현 전 회장이 꿈을 이뤘다. 직물기업이었던 선경은 1975년 석유 산업 진출을 선언했고 1980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 인수와 1991년 울산 콤플렉스 준공을 통해 수직계열화 작업을 마쳤다.
최종현 전 회장은 수직계열화 작업을 마친 뒤 정보통신 산업의 발전을 예견하고 IT 업종으로의 진출을 선언했다. 최 전 회장의 예언을 맞아떨어졌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스마트 IT 인프라 구축을 완성했다. 그 중심에는 SK텔레콤이 있었다.
정석 조중훈 창업주는 1969년 약 100만달러의 적자에 허덕이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물류전문가’ 정석의 수완은 5년 뒤 대한항공을 흑자로 돌려세웠다. 이후 대한항공은 세계 항공업계에서 가장 빠른 시간에 초고속 성장을 거둔 초우량 항공사로 성장했다.
이렇듯 자신보다 회사, 회사보다 국가 경제를 먼저 생각하면서 발벗고 뛴 재계 1세대의 노력 덕분에 우리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물론 이들의 성장에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1966년 터졌던 한국비료(현 삼성정밀화학)의 사카린 밀수 사건을 비롯해 정권 교체기 때마다 등장했던 정경유착의 낯 뜨거운 모습, 각종 이권 관련 특혜 논란, 근로자에게 고압적이던 노동 정책과 양극화 현상의 심화는 고속 성장의 영광을 더럽히는 옥에 티로 남았다.
더불어 잊을 만할 때마다 터지는 재벌 총수 자녀들의 비뚤어진 도덕성과 각종 비리 유착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 경영에만 충실했을 뿐 가족 관리에서는 빵점”이라는 비판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이제 재계는 발전의 기반을 마련한 1세대를 끝내고 탄탄한 기반 위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하는 시대에 다다르게 됐다. 다수의 재계 관계자들은 재계 1세대의 성공 DNA였던 ‘기업가 정신’을 후세의 경영자들이 진지하게 배우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재계 1세대가 온갖 어려움과 비판을 감내하면서 경제 성장에 힘을 보탤 수 있던 배경에는 기업가 정신이 있다”며 “자신보다 회사의 이익을 앞에 두고 나라에 보답한다는 정신으로 경영에 임한다면 재계를 보는 국민의 시각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백현 기자 andrew.j@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andrew.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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