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탈자’ 1인2역 연기 매력적15년차 여배우의 남다른 소회
배우 임수정은 앞만보고 달렸다.
20대 임수정은 정말 열심히 연기했다. 자신 앞에 놓인 일들을 숙제처럼 하나씩 해나가던 임수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임수정은 다소 예민하게 자신을 방어해야했다. 자신을 향하는 평가와 대중의 말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임수정은 30대가 되며 변화했다. 차분해졌고, 성공이나 목표를 향해 내달리기보다 잠시 숨을 고르며 길 위에 놓인 풀 한포기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줄 알고,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되었다. 임수정을 만난 시간은 마치 종교인과 대화를 나눈 것처럼 기분이 맑아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는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드라마 ‘학교4’(2001)로 데뷔한 임수정은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를 통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스크린으로 무대를 옮긴 임수정은 영화 ‘각설탕’(2006),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전우치’(2009),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다.
그런 그가 영화 ‘은밀한 유혹’(2015) 이후 ‘시간이탈자’(감독 곽재용)로 돌아왔다. 임수정은 극중 1983년의 남자(조정석)와 강력계 형사인 2015년의 남자(이진욱)가 우연히 서로의 꿈을 통해 사랑하는 여자(임수정)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간절한 사투를 벌이는 내용을 담은 감성추적 스릴러 영화다.
◆‘시간이탈자’ 1인2역, 같지만 다른 옷
관객은 즐겁다. ‘시간이탈자’에서 임수정은 같은 듯 다른 83년도의 윤정과 2015년 소은을 동시에 연기한다. 영화가 펼쳐지는 107분이라는 시간 동안 관객은 임수정의 다양한 매력을 만나는 황홀한 경험을 한다. 임수정은 1인 2역 촬영이 고되지 않았냐는 질문에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촬영장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제가 그동안 했던 작품 중에서 촬영장 분위기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좋았죠. 두 시대를 오가며 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데, 촬영장에서도 감독님과 스태프들이 잘 해주시고 예뻐해 주셨어요. 많이 웃으며 행복하게 촬영한 작품이었죠. 곽재용 감독님이 한국영화로 오랜만에 복귀하시는 거지만 관록이 어마어마 하시다는 걸 느꼈어요. 특유의 리더십으로 배우 뿐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하나로 똘똘 뭉쳐서 쭉 갔어요.”
임수정은 ‘시간이탈자’를 행복하게 촬영했다고 했다. 곽재용 감독은 임수정을 살뜰히 챙겼다. 이는 작품에서 여배우의 감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배려였던 것. 이는 주요했다. 임수정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작품에서 과거와 현재의 비슷한 듯 다른 감성을 잘 표현했다.
“곽재용 감독님의 감성이 반가웠어요. 영화 내내 전반적으로 흐르는 특유의 감성이 반가웠죠. 1인2역이지만 크게 다르지 않길 바란다는 감독님의 디렉션이 있었어요. 다른 듯 같게 연기해달라고 이야기하셨죠. 초반에는 다소 헷갈리기도 했는데 연기를 하고 감정을 느껴가다보니 알겠더라고요. 호흡도 잘 맞아갔어요. 83년도 윤정은 소녀 같은 면이 있어요. 사랑스러운 느낌이 여자보다는 소녀스럽죠. 까르르 웃는 장면도 많고 아이처럼 뛰어다니는 장면들이 많아요. 그런 장면이 소녀처럼 보여졌던 것 같아요. 2015년 소은은 현대여성답게 솔직하고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아요. 감정에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매력을 살리고자 했죠.”
곽재용 감독은 임수정이 연기한 소은과 윤정에 애정을 듬뿍 담았다고. 이는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기도 한다.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 속 주인공, 그 이상의 의미를 담았다. 임수정은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캐릭터를 연구해갔다. 진지하고 신중한 임수정이기에 곽재용 감독을 향한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감독님께서 윤정이한테 더 애정을 쏟으셨어요. 의상부터 헤어스타일까지 모두 감독님께서 선택하셨죠. 윤정이한테 첫사랑 이미지를 투영하신 것 같아요. 80년대 헤어스타일을 찾아보니 정말 윤정이와 비슷하더라고요. 83년 당시 감독님은 군대에 계셨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소은 분장을 하고 촬영장에 가면 윤정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예쁘지 않냐고 보라고 하셨어요.(웃음)”
◆ 로맨스 스릴러, 복합장르에 매력 느껴
영화는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감성 로맨스 스릴러를 표방했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차용한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개되는 사건이 스펙터클하게 펼쳐진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감성 로맨스라는 큰 줄기와 만나 새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것. 임수정은 이 점을 영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았다. 또 멜로 영화가 제작되지 않는 환경에 대한 아쉬움도 전했다.
“한국영화 시장에서 로맨스나 멜로 영화가 만들어지고 보여지는 확률은 낮지요. 제작도 드문데 올라간 작품이 성공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어서 제작이 쉽지 않잖아요. 단순한 로맨스 장르가 아닌 타 장르에 멜로 감성이 들어간 복합장르가 새로운 장르로 자리잡으면 어떨까, 이런 복합장르가 관객들에게 인정받는다면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는 희망이 되지 않을까, 좋은 시도라고 생각했어요.”
임수정은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1년 전에 제작된 영화이기에 임수정 역시 관객의 입장이 되어 영화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었을 터. 임수정은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시사회 때 영화를 처음 봤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스릴러 장르에 맞게 적당한 러닝타임이 나와서일까요. 몰입감 있게 봤어요. 두 시간 안에 편집이 되는 영화가 많지 않은데 10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적당한 것 같아요. 지루하지 않게 봤어요.”
◆ 여배우 15년차의 소회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무려 15년 동안 임수정은 여배우의 자리를 지켰다. 20대와 30대를 여배우로 보낸 임수정은 지나온 날들을 곱씹으며 자신을 토닥토닥 위로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여배우라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당당한 모습이 참 좋았다.
“여배우는 현장의 꽃이죠. 어떨 때는 엄마처럼 안아주고 보듬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죠. 존재감이랄지 영향력이랄지 분명히 있지요. 그런 점이 좋아요. 15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이 남아있다고요? 정말 감사하죠. 제 안에 소녀 같은 감성도 있는데 외모도 관리를 해야겠지만, 마음이 늙고 싶지 않아요. 머리도 늙고 싶지 않고요. 마흔, 쉰, 예순이 되고. 어떤 일을 할지 계속 배우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함께할지 모르겠지만 계속 여자이고 싶어요. 그러려면 관리를 열심히 해야겠지만 노력해서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요.”
임수정은 자신의 20대를 복기했다. 30대가 된 자신을 바라보며 ‘감사하다’고 했다. 확실히 임수정은 성숙해졌다. 여유 있고 차분한 목소리로 임수정은 지나간 시간을 회상하기도, 미래에 다가올 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30대인 지금, 오늘이 감사하더라고요. 온전히 나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지내고 싶고, 또 시간이 지나면 동반자를 만나 가정을 꾸릴 수도 있지요. 저 개인의 삶, 여자 임수정의 삶도 중요해요. 30대 내내 조화롭게 사는 과정을 끊임없이 겪고 있어요. 20대 때는 일밖에 몰랐어요. 커리어 쌓기 바빴는데 여유를 가지고 활동하다 보니 노출 빈도수가 적어졌죠. 그래서 최근에는 SNS를 시작했어요. 소소하지만 ‘저 이런 일상을 살아요’ 하며 보여주고 싶어요.”
임수정은 연이어 진행된 인터뷰로 지쳤을 법 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했다. 박하사탕을 조용히 오물거리면서도 꺄르르 거리기도 하며 소녀 같은 매력을 보였다. 최근에는 꽃에 빠져있다는 임수정은 배우로서 꼭 이루고 싶다는 목표가 있다고 했다. 세상 욕심 없을 것 같은 임수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목표가 있어요. 한 작품 정도만 관객들이 엄지척할 수 있는 훌륭한 영화를 하고 싶어요. 작품성으로 인정받고, 또 스코어도 잘 나오는 작품이요. 작품성은 좋은데 스코어가 잘 나오지 않거나. 스코어가 좋은데 작품성은 부족한 작품말고요. 마흔이 되기전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대표작을 만드는게 목표에요. 여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는데 있을 거에요. 그런 작품을 만나면 김혜수, 전도연 선배님처럼 저를 다 던져서 감정을 펼치는 연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ssmoly6@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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