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황·명분 상 구속영장 청구 어려워구속 이후 한국경제 후폭풍 상당해정의 실현보다 경제 먼저 생각해야
이 부회장은 12일 오전 9시 28분 검정색 체어맨 승용차를 타고 서울 대치동 특검팀 사무실에 도착해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은 조사 현장으로 들어가기 전 취재진을 향해 “국민들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송구하다”는 짧은 말을 던지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특검 측은 이 부회장의 신병처리 방향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겠다는 의중을 이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여기에는 수사 진척 상황에 따라 이 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재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구속 수사는 실현되기 어렵다는 관측을 여러 가지 이유로 내놓고 있다.
◇증거 인멸·도주 우려 없는데도 구속 필요? = 통상적으로 범죄 혐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구속영장 청구의 대표적 근거는 혐의자가 증거의 인멸이나 도주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이다.
재계 안팎은 물론 당사자인 삼성그룹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이 도주나 추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의 명분이 떨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특검은 세 번이나 진행된 검찰 압수수색의 결과물을 갖고 있다”면서 “세 번이나 수색을 했는데도 인멸할 증거가 또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사정당국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현재 출국금지 상태인 이 부회장이 다른 곳으로 도피할 가능성도 없는 만큼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삼성 브랜드 가치 회복 발목 잡는 일 = 구속을 전제로 한 과잉 수사는 회복의 길로 들어서던 삼성의 브랜드 가치 회복에 발목을 잡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 부회장의 구속 수사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갤럭시노트7 리스크로 나빠진 브랜드 이미지를 어렵게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사정당국이 이 부회장을 범죄자로 규정할 경우 삼성은 ‘범죄기업’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사정당국이 우리 기업을 세계적인 망신거리로 치부하는 셈이 된다.
더구나 이 부회장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공히 알려진 글로벌 CEO급 인사다. 글로벌 비즈니스 사회에서 이 부회장의 이미지는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다. 그러나 특검이 구속수사를 진행할 경우 그동안 쌓아 온 이 부회장의 긍정적 이미지는 모두 무너지고 만다.
◇특검, 韓 경제 성장 망칠 셈인가 = 이 부회장이 만약 구속될 경우 삼성과 이 부회장의 대외 신인도가 무너지기 때문에 우리 경제가 그 즉시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 상 삼성이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매출과 이익, 브랜드 파워의 비중은 상당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구속되고 다른 삼성의 고위 임원들이 사법처리될 경우 경영의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부재 상태를 맞게 된다.
컨트롤타워가 망가지면 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이는 총수 구속으로 적지 않은 고난을 겪은 SK, 한화, CJ 등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이들 기업보다 파급효과가 훨씬 큰 삼성의 성장이 멈추면 가뜩이나 저성장 상태인 우리 경제가 도태될 수 있다고 다수가 우려하고 있다.
1등 기업 총수의 구속은 다른 기업의 위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특검이 삼성을 비롯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했던 다른 기업인들에게서도 비위 사실을 적극 캐내고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이 구속될 경우 다른 기업인들도 이 부회장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더구나 기업 총수의 잇단 구속 수사는 기업의 성장 분위기를 저해하고 각 기업에 소속된 구성원들에게 실망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 개혁’ 속도 늦어질 수도 =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지난해부터 여러 삼성 계열사를 통해 공격적으로 진행했던 각종 개혁 작업도 속도가 늦어지거나 무산될 수 있다.
특히 수평적 조직 문화 창달과 같은 벤처식 문화 혁명이나 각종 사업구조 개편 등 이 부회장이 주도했던 일은 더더욱 그렇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국민이 미래전략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면서 스스로 개혁의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스스로 제시한 개혁의 대안을 완수할 수 없게 된다.
삼성 내부에서 경영에 대한 확실한 의사결정권을 보유한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 벌어질 삼성 내부의 혼란도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미 삼성은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사태 이후 이건희 회장이 물러난 뒤 2년여간 안팎으로 상당한 혼란을 경험한 바 있다.
그 당시에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나 계열사 CEO들로 이건희 회장의 빈틈을 대체할 수 있었지만 현재는 이 부회장의 대체자도 딱히 없다. 특검이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겸 부회장 등 핵심 임원 등에 대해서 엄벌 의지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애초에 삼성은 외압에 의해 불가피하게 돈을 정권에 건넨 피해자”라면서 “사전에 짜인 틀에 따라 악의적인 표적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만큼 특검이 명백한 증거를 갖고 공정하게 수사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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