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LG그룹 시작으로 기업인과 만남文경제팀 반기업 성향에 메신저 역할 자임재계 “기울어진 경제운동장 바로잡아 주길”
지난 12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LG트윈타워를 찾자, 구본준 LG 부회장은 기다렸다는 듯 이같이 말했다. 이에 김 부총리는 “기업과 정부 간 만남이 일회성이 아니고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란다. 기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옴부즈만 채널을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김동연 부총리가 재계와의 직접 소통에 나서기 시작했다. 김 부총리는 LG그룹을 시작으로 혁신성장 등 정부 정책을 기업에 설명하고 재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기업인과의 대화를 갖는다.
이를 두고 관가와 재계는 부총리가 직접 기업들과의 만남을 갖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며 의아해 하고 있다. 이번 만남은 표면적으로는 민간부문과의 현장 소통을 강화해 달라는 대한상공회의소의 건의에 따라 마련됐지만, 김 부총리가 직접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文경제라인 반기업 성향···규제만 대거 소통은 없어
문재인정권의 기업정책은 한마디로 반기업적인 성격이 많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비정규직 고용부담제, 최저임금 1만원, 법인세 등 기업활동에 부담을 지우는 굵직한 방안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친노동’만 있을 뿐 ‘친기업’ 부문을 찾기 어렵다는 게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의 라인업을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재산불평등보다는 소득불평등이 심각하므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홍장표 경제수석은 정부의 경제정책 근간인 소득주도 성장론의 주창자로 알려져 있다.
경제부총리·금융위원장·일자리수석 등 일부 관료와 국회의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대선캠프 출신 교수, 시민운동가, 참여정부 인사, 개혁 성향의 정치인들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주로 소득주도 성장, 소득 재분배, 성과급 폐지, 비정규직 제로 등 친노동정책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강력한 재벌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문 정부의 경제팀 출범 이후 주요 부처 장관들은 각종 간담회를 통해 기업들과 만남을 지속해 오고 있다. 그럼에도 각종 정책에서 기업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 했다. 새 정부의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정작 고용의 주체인 기업인들의 의견은 거의 배제됐다. 재계가 몸을 사리는 것을 넘어 완전 무력화됐다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였다.
특히 집권 후 새 정부는 기업을 소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일방적 규제와 훈계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에 “성찰과 반성부터 하라”고 경고했다.
‘재벌저격수’로 알려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 간담회에서 “알아서 잘 하라”는 뉘앙스로 훈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일 확대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농담 삼아 한 말이었을지 몰라도 그의 기업관이 은연중에 드러난 발언이었다.
또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출범식에서부터 “중기부가 중소, 벤처, 소상공인의 수호천사가 되겠다며 첫 번째 문제로 대기업에 의한 중소기업의 기술탈취”라고 지적하며 대기업에 경고를 보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친환경주의자 교수 출신 답게 취임부터 탈원전을 선언했다. 탈원전의 급작스런 선언에 기업들은 적잖히 당황했다. 원전·석탄 사업자 등에게 직격탄이 되며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백 장관은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의지만 재차 보일 뿐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 했다.
지난 5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 단체를 잇따라 방문했다. 노동계 출신으로 편향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행보였다. 그러나 김 장관은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해 박병원 회장을 만나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다.
박병원 회장은 “젊은 애들이 취직 안돼 시집 장가 못 가고 애를 못 낳는 저출산 문제를 보더라도 실업자를 줄이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며 근로조건 개선보다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을 것을 주문했다. 이에 김 장관은 “일자리가 있어도 저녁 시간에 부부가 얼굴을 봐야 애를 만든다”며 근로시간 단축 등 근로조건 개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장관은 이날 재계 단체와 만난 뒤 기자에게 “오늘은 재계 단체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기보다 서로의 의사를 확인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 혁신성장 ‘대기업 역할론’ 강조
그간 기업들은 간담회나 경제 장관들과의 만남이 반갑지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정책 메시지가 일방적으로 전달됐을 뿐 기업의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이 수렴되는 자리는 많지 않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에게 앞으로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 시그널을 줘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건드리기 때문에 기업활동은 점점 더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업들은 이제 김 부총리와의 만남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김 부총리가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대기업 중심 경제정책에 전력을 다해 왔기에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반응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달 김 부총리를 만나 경제현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담은 제언집을 전달하며 “현실 대안 찾아달라”고 SOS를 보내기도 했다. 박 회장은 “제언집은 기업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기업편향성을 없애기 위해 보수, 중도, 진보를 아우르는 50명의 학자들에게 자문을 거쳤다. 이해관계의 벽에 막힌 과제들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 실천했으면 하는 바람을 제언집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문 정부는 혁신성장을 주창해 왔지만, 실상 혁신성장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기업들 사이에 꾸준히 나왔다. 일반적으로 혁신성장은 창업·벤처의 전유물로 알려져 있지만, 대기업들의 참여 없이 이뤄지기는 힘들다.
김 부총리는 문 정부 인사 중에서도 꾸준하게 ‘대기업 역할론’을 제기해 왔다. 소득주도 성장만으로는 지속적 성장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투자여력을 가진 대기업들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김 부총리와의 만남을 두고 기업인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부와 재계 간 새로운 관계 형성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경제 부처 수장이 대기업을 직접 찾아가 눈높이를 맞춘 소통을 통한 관계 설정에 나선 것 자체도 의미가 크다는 해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김 부총리가 컨트롤타워답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문재인정부의 경제운동장을 바로잡는 데 힘써주길 바라고 있다”면서 “현 정권 경제참모들의 기업규제드라이브에 일정부분 제동을 걸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김 부총는 대기업들과의 현장소통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빠른 시일 내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신산업 분야 중소·중견기업과의 2차 간담회를 개최하고 중소·중견·대기업, 산업·업종별 간담회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 간담회를 연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뉴스웨이 주혜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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