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최흥식, 채용비리 의혹 직접 밝혀라

칼을 빼들 때만 해도 누구보다 의기양양했던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하지만 정작 그 칼끝이 자신을 향하자 말수가 부쩍 없어졌다.

하나금융지주 사장 재직 당시 친구 아들의 하나은행 채용을 청탁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최 원장의 해명은 "외부에서 채용과 관련한 연락이 와서 단순히 이를 전달했을 뿐"이라는 한마디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공식 석상에 직접 나와 밝힌 것이 아니라 A4 한 장 분량도 안 되는 금감원 안내자료를 통해서였다.

하나은행에 대한 채용비리 검사 과정에서 표적검사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금감(監)원을 금검(劍)원으로 둔갑시킨 장본인 치고는 궁색한 대응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최 원장은 금융권 채용비리를 근절하겠다며 은행권에 이어 제2금융권으로 검사를 확대한 상태다.

최 원장은 하나금융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3년 대학 동기의 부탁을 받고 하나은행 채용에 지원한 동기 아들의 이름을 은행 인사 담당 임원에게 전달했다.

여기까지가 최 원장이 인정하는 채용비리 의혹의 발단이자, 단순한 추천일뿐 청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아들의 지원 사실을 전달한 것은 맞지만, 합격 여부에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지주사 최고위 경영진이었던 최 원장의 전달을 받은 하나은행은 지원자 이름 뒤에 붙은 최흥식이란 꼬리표를 뗄 수 있었을까. 인사 담당 임원 입장에서는 그의 언급을 청탁이나 압력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는 만큼 추천 행위 자체가 부당한 개입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 원장은 한 술 더 떠 피감기관인 하나은행을 상대로 자신의 누명을 벗기라며 압박에 나섰다. 금감원은 하나은행에 최 원장의 친구 아들 채용 당시 점수 조작이나 채용 기준 변경이 있었는지 확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앞서 채용비리에 대한 검사와 하나금융 회장 선출 과정에서 최 원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하나은행의 입장만 곤란만 더 곤란해졌다. 일명 'VIP 채용 리스트'에 기재된 55명의 채용을 모두 청탁으로 규정할 경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하나은행의 입장을 악용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할 문제가 최 원장의 결여된 문제의식이다. 모두가 추천 그 자체의 문제를 지적하는 상황에서 혼자만 관여를 부인하데 몰두하고 있다. 실제 채용에 압력을 행사했는 지는 비리의 경중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뿐이다.

최 원장 이제 자신의 부하 직원들로 구성된 특별검사단을 꾸려 의혹을 규명하겠다고 한다. 그가 금감원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독립으로 포장한 특별검사단의 검사 결과를 누가 얼마나 신뢰할까.

최 원장은 더이상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금감원 뒤에 숨거나 그동안의 갈등을 앙갚음 하듯 하나은행에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금감원은 개인 최흥식에 대한 의혹을 무마해야 할 의무가 없고, 하나은행은 옛 임원의 일탈을 해명해야 할 책임이 없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더 무섭다고 했다. 어설프게 녹슨 칼을 빼들었다간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다.

채용비리를 향해 이미 밖으로 나온 최 원장의 칼이 녹슬었는지, 아닌지는 본인이 직접 증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