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문소리씨의 얘기를 꺼낸 건 최근 해외자원개발로 막대한 손해를 끼친 공기업들의 작태가 한심했기 때문이다. 철저한 자성과 개혁의 목소리 보다는 몸에 깊게 틀어박힌 공기업 특유의 ‘보신주의’가 문씨의 발언과 오버랩됐다.
한 예로 한국석유공사 13대 사장으로 지난 22일 취임한 양수영 전 포스코대우 부사장을 둘러싼 풍경이 그렇다. 그는 출근길을 가로막는 노조를 달래기 위해 그들이 요구한 몇 가지 사항에 대해 합의했다. 그 중 노사 ‘공사개혁위원회의 운영을 통해 해외자산의 부실한 인수 및 운영, 투명성을 상실한 경영행위, 부당한 업무지시와 강압 등 현재의 경영위기에 봉착한 공사 내부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개혁과제를 도출, 이를 성실히 이행한다’는 합의안이 눈에 띈다.
표면적으로는 자체 팀을 구성해 과거 정권 시절에 행해졌던 해외자원개발 관련 사업 부실을 검토한다는 내용이다. 일종의 적폐청산을 하겠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경영부실에 대한 과거 문제만 보겠다는 것일 뿐, 혈세를 가져다 국민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친 자기 반성과 사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많이 아쉽다.
이런 지적에 대해 양수영 사장과 임직원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과거 정권 차원에서 결정한 사업이고, 과거 경영진들의 독단이 부른 참사라는 이유로 자신들 책임은 아니라고 강변할 것이다. 실제로 당시 하베스트의 유전은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가 직접 개입한 사업인 건 맞다. 석유공사의 부채비율은 2008년 73.3%에서 지난해 529.42%로 폭증했다. 9년 만에 부채비율이 7배 가량 뛴 셈이다. 하베스트 광구 사업을 포함한 해외 자원개발에 나섰던 손해가 대부분이다. 특히 석유공사 26개 해외법인 중 절반인 13곳이 자본잠식으로 나타나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숫자들을 보고 있으면 석유공사 새 사장과 임직원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노사의 마지막 합의안을 보면 이들이 국민에게 안겨준 실망을 극복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인지 의심스럽다. ‘노사는 노사합의 없는 인위적 구조조정을 시행하지 아니하며···’라는 문구다. 노사공동 선언문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단 만큼 이행 약속이 필수다. 4조5000억원짜리 우물(하베스트)에 투자해 허공에 날린 사람들과 맺은 새 사장의 약속이라고 믿기가 어렵다. 결국 자신들 밥그릇은 지켜달라는 얘기 아닌가. 노조와의 합의문에 싸인한 후 양 사장은 취임 4일만에 개인 사무실로 출근했다.
석유공사의 부실은 전 정권과 과거 경영진의 무리한 해외 투자가 빚어낸 참사다. 하지만 석유공사 임직원들은 자신들이 방관자, 또는 암묵적 동조자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자성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새 사장의 출근을 걸고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켜내야겠다는 발상과 이를 용인한 양수영 사장의 ‘노사공동합의문’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 든다.
뉴스웨이 주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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