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가맹점 대금 지급 주기 단축과 기한이익 상실시점 연장 등 서민 지원책도 전쟁의 빌미가 된 강도 높은 소비자 보호 정책의 연장선이다.
윤 원장은 지난 9일 ‘금융감독 혁신과제’를 발표하면서 “소비자 보호 쪽으로 감독 역량을 이끌어감으로써 금융사들과의 전쟁을 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특히 “키코(KIKO) 등 과거 발생한 소비자 피해나 암보험, 즉시연금 등 사회적 관심이 높은 민원·분쟁 현안의 경우 소비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조정해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례적인 금융감독당국 수장의 전쟁 발언은 불완전판매 감독 방향에 대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왔다.
고객이 낸 돈과 돌려받는 돈이 다른 산업의 특성 탓에 불완전판매와 민원의 온상으로 지목돼 온 보험업계가 첫 타깃이 될 것이란 예상이 가능했다. 암보험과 즉시연금이라는 현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만큼 보험금 지급을 미뤄 온 보험사들 사이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윤 원장이 예고한 전쟁은 현실이 됐다. 최대 1조원 규모의 즉시연금 미지급금 일괄 지급 방침에 생보업계는 비상이다.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는 지난해 11월 삼성생명, 올해 6월 한화생명의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가입자가 과소 지급한 연금을 지급하라며 제기한 분쟁조정 신청에 대해 보험약관에 따라 덜 지급한 연금과 이자를 지급토록 결정했다.
즉시연금은 보험에 가입할 때 보험료 전액을 일시에 납입하고 다음 달부터 매월 연금을 수령하는 상품이다. 만기 시 만기보험금을 지급하는 만기환급형 상품과 그렇지 않은 상품으로 나뉜다.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보험료에 일정한 이율을 곱해 산출한 금액 중 만기보험금 지급을 위한 재원을 공제한 금액을 매월 연금으로 지급한다.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 A씨의 경우 지난 2012년 9월 상품에 가입했는데 삼성생명은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 연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해당 상품의 약관에는 연금 지급 시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보험사가 약관에도 없는 내용을 근거로 연금을 덜 지급했다는 얘기다.
분조위는 약관에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고 명시돼 있지 않고 재원을 공제해 연금을 지급한다고 기재된 ‘보험료 및 책임준비금 산출방법서’의 내용이 약관에 편입됐다고 볼 수 없다며 공제 없이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삼성생명은 분조위의 결정이 나온 지 두 달여만인 올해 2월 2일에야 분조위의 결정을 수용해 A씨에게 과소 지급한 연금과 이자를 지급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모든 사안에 대해 분조위의 결정과 동일하게 미지급액을 일괄 지급하라는 금감원의 통보에도 반년째 지급을 미루고 있다.
삼성생명의 즉시연금 과소 지급 사례는 약 5만5000건이며, 미지급액은 약 43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을 포함한 전체 생보사의 즉시연금 미지급액은 최소 8000억원, 최대 1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수천억원에 달하는 즉시연금 미지급액을 일괄 지급하는 것은 무리라며 버티던 삼성생명은 윤 원장이 칼을 빼들자 뒤늦게 검토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즉시연금 지급과 관련해 현재 시범 운영 중인 일괄구제제도를 통해 소비자를 구제토록 하고, 분조위 결정 취지에 위배되는 부당한 보험금 미지급 사례에 엄정 대응할 방침이다.
삼성생명은 최근 금감원에 즉시연금 미지급액 일괄 지급 여부를 이달 하순 이사회에서 결정하겠다고 전달했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의 결정을 보고 입장을 정하겠다며 지급을 미뤄 온 한화생명과 교보생명 등 다른 대형 생보사들은 삼성생명 이사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달 20일 분조위 결정 이후 한 차례 연장된 의견 개진 기간이 종료되지 않았다.
윤 원장이 5대 금융감독 혁신부문 중 하나로 제시한 자영업자와 서민에 대한 금융지원 강화도 이 같은 소비자 보호 정책과 맞닿아 있다.
윤 원장은 “서민과 취약계층을 금융사의 단기수익 추구 행위로부터 보호하고 금융지원을 확대함으로써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겠다”며 “은행, 상호금융조합 등의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경영 애로 상담과 컨설팅, 금융지원 등을 포함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마련해 저소득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완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신용카드 가맹점의 결제대금 지급 주기를 2일에서 1일로 단축하는 것을 포함해 자영업자의 금융애로를 해소하고, 기한이익 상실시점 연장 등을 통해 취약차주의 상환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금감원은 신용카드 영세가맹점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 중 가맹점 대금 지급 주기를 1영업일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와 함께 가맹점의 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앱투앱(App to App)’ 등 신종 결제수단 개발과 활성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취약차주의 채무 상환 부담 경감과 관련해서는 4분기 중 실업, 질병 등으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차주의 채무조정요청권을 신설하고 일시적 유동성 위험에 처한 차주의 신용관리를 지원하기 위해 기한이익 상실시점을 3개월로 연장할 예정이다.
뉴스웨이 장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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