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적 투자자(FI)들의 풋옵션 행사 압박으로 궁지에 몰린 최대주주 겸 최고경영자(CEO) 신창재 회장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FI 측에서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풋옵션 행사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져 고비는 남아 있다.
교보생명은 11일 정기 이사회를 열어 내년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사회 의장인 신창재 회장을 비롯한 이사진은 이날 상장 주관사인 NH투자증권,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CS)가 제출한 IPO 추진 방안 보고서를 검토한 뒤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주관사 측은 보고서를 통해 “새로운 제도 도입에 대응하기 위해 자본 확충이 필요하며 규제가 확정되기 전이라도 증자를 추진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내년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주관사 추가 선정, 지정감사인 감사, 상장 예비심사, 증권신고서 제출, 공모 등의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교보생명이 상장을 추진하는 것은 회사 창립 60년만이다. 교보생명은 신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신용호 회장이 1958년 창립했다.
신 회장이 경영권 방어와 증시환경 악화 등을 이유로 수년간 미뤄온 상장은 FI들의 풋옵션 행사 압박으로 뒤늦게 속도가 붙었다.
앞서 FI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이하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신 회장 측에 풋옵션 행사 의사를 통보했다.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올해 6월 말 기준 어피너티(9.05%), IMM PE(5.23%), 베어링 PE(5.23%), 싱가포르투자청(4.5%)이 총 24%의 교보생명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지분을 1조2054억원에 매입하면서 2015년 말까지 IPO가 이뤄지지 않으면 신 회장 개인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받았다.
교보생명의 상장이 지연되면서 연기금 공제회 등 출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FI들은 원리금 상환 압박에 시달려왔다.
교보생명은 지난 9월 18일 이사회에서 정보와 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IPO 추진 안건을 보류했다. 당시 어피너티 측 사외이사인 이상훈 어피너티 한국지점 대표는 유일하게 보류에 반대했다.
교보생명은 지난달 20일 이사회를 추가로 개최했으나 상장 주관사의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논의를 미뤘다.
오는 2022년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과 신(新)지급여력제도(K-ICS) 시행에 따른 대규모 자본 확충 부담도 상장 필요성을 높였다.
IFRS17은 보험부채를 기존의 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새 국제회계기준이다. 이에 따라 자본 변동성 확대 등 위험 요인을 반영한 새 자본건전성제도인 K-ICS가 도입될 예정이다.
교보생명은 K-ICS 도입 시 수조원의 자본 확충이 필요할 것으로 자체 추산하고 있다.
앞서 교보생명은 K-ICS 최종안이 나오는 2019년 자금 조달을 위한 상장 추진 가능성을 열어뒀다.
교보생명은 K-ICS 도입에 대비해 지난해 7월 국내 보험사 중 최초로 5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올해 7월 최대 10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을 추가로 발행할 계획이었으나 금리 상승으로 발행을 보류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K-ICS 도입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하는 금융사로 도약하기 위해 기업공개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IPO는 자본 확충의 의미뿐 아니라 회사를 둘러싼 이해관계자가 더욱 많아지고 사회적 책임도 더욱 커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며 “시장 상황이 좋지 않지만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성공적인 IPO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상장 추진 결정으로 신 회장이 모든 고비를 넘긴 것은 아니다.
어피너티 컨소시엄 측에서 상장 여부와 관계없이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어피너티 컨소시엄이 실제로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신 회장이 마련해야 할 인수 자금은 최소 1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신 회장 본인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지분 일부를 매각해야 해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신 회장은 교보생명 지분 33.78%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신 회장의 가족과 계열사 임원 등의 지분을 더하면 지분율은 36.91%다.
다만, 풋옵션은 교보생명의 상장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일 뿐, 실제로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FI들이 원하는 것은 성공적인 자금 회수인 만큼 굳이 풋옵션 행사를 강행해 소송공방까지 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뉴스웨이 장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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