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한국판 CES로 불리는 한국전자전(KES) 개막식 축사에서 한 말이다. 전자·IT분야 400여개 업체가 참여한 행사의 축사로는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전, LG전자와 삼성전자의 8K TV 논란 등 최근 벌어지고 있는 대기업간 갈등에 우려를 표시한 것이다.
성 장관의 우려는 팩트에 근거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학계·기관·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한중일 3개국의 배터리 경쟁력을 분석한 조사에서 중국이 10점 만점 중 8.36, 일본은 8.04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7.45에 그쳤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배터리 전쟁은 2~3년 내에 승자들이 가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터리 3사는 현재 ‘톱10’에 모두 포함돼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LG와 SK가 소송에 쏟아 부을 비용을 배터리 산업 기금으로 돌려 관련 부품·소재산업 발전에 사용하는 것이 국가나 회사에 이익일 것이라는 지적도 십분 이해가 된다.
TV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인 IHS마킷이 지난달 발표한 올해 8K TV 판매 전망치는 두달만에 22.5% 낮아졌다. 8K TV로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이 가장 큰 원으로 꼽힌다. 따라서 아직 제대로 된 시장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의 기술을 흠집 잡기 보다는 시장을 키우데 힘을 합치는 게 먼저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로 국내 업체끼리 선의의 경쟁이 아닌 이전투구를 벌여 ‘네거티브섬 게임’이 된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2011년 12월 국내 최대 배터리 제조업체는 자사에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LiBS)을 공급하던 국내 업체를 특허 침해로 제소했다. 배터리의 양극과 음극을 나누는 분리막은 배터리 핵심부품으로 일본 업체와 국내 업체가 글로벌 톱3를 형성하고 있다. 이 소송전은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왔다.
소송이 시작되면서 배터리 제조업체는 중국에서 분리막을 공급받기 시작했다. 반대로 분리막 공급업체는 중국 배터리 회사들을 새로운 고객으로 유치했다. 이 소송은 원고도 피고도 승자가 아닌 채 막을 내렸다. 배터리 제조회사는 1, 2심 모두 패소한 뒤 대법원 최종판결을 앞두고는 특허변경을 통해 파기환송을 시켰다. 이후 양사는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이 싸움을 끝냈다.
결국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우리나라의 분리막을 적용하는 동시에 분리막 기술도 키우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중국 배터리 기술이 아직은 국내 업체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소송전 기간 중에 품질경쟁력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산업부 장관의 축사에 담긴 우려에서 이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보인다.
뉴스웨이 강길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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