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키코 분조위서 조정안 마련“은행, 피해기업에 평균 23% 배상”‘키코 재조사’ 윤 원장 일관된 철학 ‘11년’ 만에 배상받을 기회 열어줘
13일 금감원은 전날 열린 분조위에서 ‘키코’ 피해기업 4곳(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일성하이스코·재영솔루택)에 신한·우리·KEB하나·씨티·산업·DGB대구 등 6개 은행이 모두 255억원(평균 배상비율 23%)을 배상할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KEB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이다. 분쟁조정 대상 기업 4곳은 이들 은행의 키코 상품에 가입해 총 149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판매 은행은 4개 기업과 키코 계약을 체결할 때 예상 외화유입액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위험성을 기업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하지 않았다”면서 “고객보호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불완전판매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결정의 취지를 전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미리 정해둔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2007~2008년 많은 수출 기업이 가입하며 유명세를 탔다.
다만 이 상품엔 환율이 일정 범위를 벗어나면 기업이 손해를 본다는 허점이 있었다. 환율이 약정해 놓은 하한선 이하로 떨어질 경우 계약이 무효가 되고 상한선 이상으로 오르면 기업이 약정 금액의 2배로 은행에 팔아야 한다는 옵션 때문이다. 기대 이익은 제한적인 반면 위험은 ‘무한대’라는 점에서 최근 논란이 된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실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후 환율이 요동치자 키코에 가입한 기업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고 상당수가 폐업에 이르렀다.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 2010년 기준 키코 계약 거래기업은 738곳이었으며 손실액은 총 3조2000억원(기업당 44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은행으로부터 배상 받은 기업은 없었다. 이미 금감원 검사와 검찰 수사 등이 이뤄진데다 일부 기업은 은행을 상대로 소송도 걸었지만 2013년 대법원이 은행 측의 손을 들어줘서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은행이 소비자에게 장외파생상품 안에 포함된 수수료 등과 ‘마이너스 시장가치’에 대해 고지할 의무가 없다고 당시 재판부는 판단했다.
그런 ‘키코 사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인물이 바로 윤석헌 원장이다. 그는 교수 시절 키코가 ‘사기 상품’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금융행정혁신위원장으로서도 피해기업 재조사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어 금감원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피해기업을 중심으로 조사에 착수해 결국 1년6개월여 만에 분쟁조정을 이끌어냈다.
물론 윤 원장에게 부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금감원 신뢰도 하락을 우려하는 조직 내부의 시선이 있었고 대법원이 판결한 사안을 뒤집어선 안된다는 정치권과 업계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간 분조위 일정을 잡지 못했던 이유로도 풀이된다. 하지만 그는 은행의 불완전판매에 대해선 대법원도 인정한 만큼 이를 중심으로 한 분쟁조정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남은 관건은 금감원 분조위가 제시한 배상 비율을 은행이 수용할지 여부다. 민법상 소멸시효인 10년이 지난 사건이고 조정안 역시 법적구속력이 없어서다. 결과에 따라 추가 분쟁조정이 이어지면 수천억원대 배상 책임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은행의 고민거리다.
현재 4개 업체 이외에 분쟁조정을 기다리는 기업은 150곳이다. 금감원은 이들에 대해선 이번 분쟁조정 결과를 토대로 은행에 자율조정을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정성웅 금감원 부원장보는 “대법원 판결 이후 은행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유사 피해기업의 구제에서 고객보호 의무를 다하는 데 미흡했다”면서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가 부당하게 입은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 금융소비자 보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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