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 유동성 위기에 ‘역할론’ 재부상 대한항공·아시아나 긴급 자금 수혈하고 두산중공업 추가 지원 방안 검토 착수“시장 불안정 요인 되지 않도록 할 것”
임기를 5개월여 남겨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여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경기 악화로 산업계 곳곳에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자 구조조정 컨트롤타워인 산은의 역할론이 재부상하면서다. 다만 두산중공업과 국적 항공사 문제 등 급한 불을 꺼나가고 있음에도 산업계 전반에 만연한 연쇄 부실 우려에 이동걸 회장의 부담은 상당한 것으로 감지된다.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산업은행은 수출입은행과 함께 두산중공업,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굵직한 기업의 유동성 공급 문제를 하나씩 풀어가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먼저 지난 24일 산은과 수은 등 채권단은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을 긴급 수혈하는 대규모 지원 방안을 확정했다. 특히 대한항공의 경우 2000억원은 운영자금으로 제공하고 화물·운송 자산유동화증권(ABS) 7000억원어치를 매입하는 한편, 출자전환 가능한 3000억원대 영구채도 인수해 10.8% 정도를 지분으로 보유하겠다는 솔루션을 내놨다.
1조6000억원을 투입한 두산중공업과 관련해선 8000억원 규모의 추가 수혈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유상 증자와 비용축소, 비핵심 자산 매각 등을 포함한 3조원 규모의 두산그룹 측 최종자구안을 채권단이 전격 수용한 결과다. 두산중공업은 앞서 받은 자금으로 약 4000억원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조기상환과 구조조정 등에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이미 대부분을 소진해 추가 지원이 절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은 제주항공 지원도 앞두고 있다. 수은과 함께 각 1000억원과 700억원을 마련해 이들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조력하기로 했다. 인수계약금 545억원과 이스타항공 유상증자에 필요한 자금까지 고려한 숫자다.
산은의 이례적인 ‘신속 행보’는 표면적으로 악재 확산을 막기 위함이나, 각 기업이 당장의 위기만 벗어나면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이동걸 회장은 지난 24일 진행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자금 지원의 70~80%는 코로나19 여파로 일시적인 유동성 어려움을 겪는 기간산업을 돕는 수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외부에서 걱정하는 것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다른 업권으로 구조조정 우려가 빠르게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단적으로 올 하반기엔 유통가(街)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적지 않다. 소비 악화로 매출에 타격을 입은 주요 기업의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물론, 각각 서둘러 덩치 줄이기에 나서면서 산업 재편이 가속화할 것이란 관측이 흘러나온다. 유통업뿐만이 아니다. 산은은 항공업 재편에 대한 화두도 던져놓은 상태다. 저비용항공사(LCC) 출범과 맞물려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로 인해 경제위기 때마다 해결사를 자처한 산은에도 또 한 번 무거운 짐이 지워진 모양새다. 당초 산은은 창업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혁신기업 육성기관으로의 탈바꿈을 추진해왔으나 최근 들어선 그 계획을 미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두산중공업 유동성 위기를 계기로 구조조정 관련 부문의 역할이 커지는 등 다시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여기에 기업으로부터 자금을 회수하고 은행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책임까지도 떠안게 됐다.
그럼에도 이동걸 회장은 기업 구조조정과 혁신 생태계 조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놓치지 않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내비쳤다.
이동걸 회장은 “금호타이어·현대상선·한진중공업 등의 구조조정이 완료됐고, 아직 안된 곳도 안정화 단계라 부담은 덜었다”면서 “구조조정 필요성이 생기더라도 시장 불안정 요인이 되지 않도록 차질없이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위기 극복으로 산은이 추진해온 혁신성장 지원과 혁신기업 발굴 육성에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담당 부서에서 차질 없이 로드맵대로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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