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한국기업” 해명 불과 얼마 전인데이번엔 총수 지정 피하려 외국 국적 앞세워네이버 등 기업 역차별 논란에도 공정위 확고
지난 2019년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 국가·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거세지자 쿠팡이 뉴스룸을 통해 해명한 글 일부다. 이 글에서 쿠팡은 국내서 사업을 영위하는 명백한 한국 기업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당시 쿠팡은 일부 소비자들로부터 ‘일본계 기업’이라고 지목당한 탓에 진땀을 뺐다. 쿠팡은 2015년과 2018년에 걸쳐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으로부터 3조 원이라는 막대한 투자를 받아 회사의 몸집을 불렸다. 그 때문에 당시 소비자들로부터 “일본계 자본이 들어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쿠팡은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임을 내세웠다. 모든 사업은 ‘우리나라’에서 진행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해외 투자를 유치해 한국 경제의 성장을 돕고 있고, 한국을 대표하는 많은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을 부각했다.
그런데 김범석 쿠팡 의장의 동일인(총수) 지정 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국내 대기업 총수로 지정되면 강도 높은 규제가 뒤따르기 때문. 지난 30일 공정위가 ‘쿠팡의 총수는 쿠팡’이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일단 김 의장은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에서 벗어나게 됐다.
김 의장은 미국법인 ‘쿠팡Inc(Coupang, Inc.)’를 통해 국내 쿠팡 계열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실질적 지배자다. 그는 쿠팡Inc 지분 10.2%를 보유한 4대 주주지만, 차등의결권을 적용하면 의결권 비중 76.7%에 달한다.
공정위도 김 의장이 쿠팡 Inc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지배한다는 점이 명백하다고 봤지만, 결국 김 의장을 총수로 지정하지 않았다.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경우 국내 최상위 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왔고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기에는 제도가 미비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쿠팡이 외국계 기업이고, 김 의장이 미국인이기 때문에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했다는 말이다.
외국인을 총수로 지정한 전례가 없다지만, 실제 ‘외국인은 지정 못 한다’라는 법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공정위가 김 의장을 실질적 지배자라고 인정해놓고서 선례만을 따르는 모순을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IT기업인 네이버와도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4년 전 네이버의 경우,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의 지분이 4%뿐인데도 공정위는 이 전 의장을 총수로 지정했다. 당시 공정위는 이 4%가 유의미한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봤다. 이 전 의장이 동일인으로 지정되면 해외 투자 활동 차질, 이미지 타격 등의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데에도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쿠팡에는 조금 다른 결론을 내렸다. 김 의장은 국적을 이유로 규제를 피하게 됐고 ‘형평성 논란’은 더욱 불거지게 됐다. 총수로 지정되면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 등을 특수관계인으로 보고 이들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또 계열사와 거래 내역 등을 공시해야 한다. 김 의장은 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김 의장의 친인척들이 회사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쿠팡 계열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계열사들과 쿠팡이 일감 몰아주기 거래를 해도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김 의장 동생 부부 또한 억대 연봉을 받으며 쿠팡에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은 공정위 특수관계인 감시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김 의장이 총수 지정을 피한 이후 여론은 좋지 않다. 공정위를 향해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특혜를 줬다는 조롱이 쏟아지고 있다. 사업의 대부분을 한국에서 운영하는 자랑스러운 한국기업임을 강조해놓고, 김 의장이 국내법에 의해 규제를 받아 불리할 것 같으니 미국인임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 의장은 규제를 피했지만, 쿠팡은 여론의 호의를 잃어가는 듯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던 때 로켓배송으로 전 국민의 칭찬을 받았던 것은 벌써 옛날 일이 됐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는데, 쿠팡이 로켓으로 쌓아 올린 호의를 어떻게 지킬지 궁금해진다.
뉴스웨이 김민지 기자
kmj@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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