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일부 어른들은 2000년이 되면 밀레니엄 버그로 은행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니 빨리 현금을 찾아야 한다고 은행을 닦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까까머리 중학생에겐 하굣길 PC방 가기 전 스타크래프트 전략을 떠들어대기 위한 시원한 장소 중 하나가 은행이었다. 그때도 은행 TV에선 거의 매일 뉴스가 나오고 전광판에 괴상한 숫자들이 환율이란 이름 아래 돌아가고 있어 재미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은행은 여름에 시원한 공간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느닷없이 어릴 적 은행 기억을 반추한 건 요즘 은행에 번진 ‘MZ세대’ 신드롬을 보면서다. 은행 CEO가 MZ세대 문화를 배우고 메타버스에 등장해 아바타로 이들 직원과 만났다는 홍보 자료들이 이메일에 빼곡한데 이것이 지향하는 건 뭘까 싶었다.
당장 MZ세대의 사전적 의미를 되찾아보니 1980년초~2000년대초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한다고 한다.
여기 대입하면 밀레니얼 시대 초입에서 은행 에어컨을 만나고 스타크래프트 전략을 떠든 중학생도 MZ세대 형님 격으로 포함되는데 2000년대 초반생들과 격차를 생각하니 아무래도 같은 세대로 묶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그래서인지 일부 은행 홍보 담당자들은 MZ세대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내부에선 ‘M세대’와 ‘Z세대’로 구분하고 있다고 하고 어떤 은행은 아예 ‘Z세대’ 특화 마케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충 눙쳐서 쓰기 쉽게 명명한 MZ세대가 얼마나 아득하고 불분명한 구분이라는 분석이 재차 이해됐다.
가만히 보면 은행들이 그토록 교감하고 싶어 하는 세대는 사실 M세대보다는 Z세대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지금의 은행은 어떤 이미지일까. 에어컨이 있어서 은행에 들어갔다가 이것저것 보게 되는 그런 얘긴 이미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처럼 전설의 유니콘 얘기가 됐다.
앞으로 사회 주역이 될 지금의 20대 초반은 카카오톡 계좌송금으로 상대방 계좌번호도 알 필요 없이 돈을 주고받고 모바일 앱으로 비상금을 대출받는다. 이미 은행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곳은 아닐까. 이렇게 놓고 보면 휴대폰 속에 있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과 지금의 은행은 하나도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 은행들이 MZ세대를 위해 꺼내든 ‘메타버스’는 이미 그들 안에선 구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메타버스도 좋고 CEO가 아바타로 등장하는 것도 좋은데 차라리 은행들이 Z세대를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금융 교육이 약하다고 하니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방과 후 금융 교육 같은 걸 에어컨 빵빵한 은행에서 해보는 그런 상상은 너무 나간 것일까.
이미 일부 은행에서 찾아가는 금융 교육 같은 걸 하고 있다는데 교육에 더해 새로운 체험을 가미해 이런 활동을 강화하는 건 어떨까 싶다. 당장은 실익이 크지 않겠지만 ESG경영 시대에 측정 항목에서 플러스 요인도 되고 잠재 고객과 호흡한다는 면에서도 의미 있지 않을까.
동네마다 있던 비디오가게와 공중전화부스가 사라진 것처럼 은행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이 오진 않았으면 한다. 고객의 발길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절대로 끊어지진 않도록 하기 위해 몇몇 은행이 특화 점포 구축 등에 골몰하는 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은 그래서 청신호다.
금융은 신뢰가 첫째라는 데 최소한의 대면 접촉을 위한 은행의 움직임이 더욱 가열 차길 기대한다. 그리고 그게 앞으로 평생 고객이 될 수도 있는 Z세대와 그 이후를 위한 다각도의 스킨십이면 더 좋겠다. 좋은 기억은 시간 속에서 추억으로 남아 한편의 노스탤지어가 된다. 은행은 예나 지금이나 동네에서 가장 시원했고 지금도 그렇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이 있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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