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점포 5년간 1507곳 사라지며 필요성 부각'은행-우체국 제휴' 계획은 나오는데 현실은 '잠잠'수수료 산정·책임소재 기준까지 협의점 '첩첩산중'은행연합회 "노년층 비대면 거래 계속 늘어" 반박통장 정리수준 거래위해 제휴까지?···실효성 의문도
그 와중에 금융 당국은 일찌감치 우체국을 은행 점포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2년여 가까이 이렇다 할 실행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서는 은행과 우체국 사이에서 금융 당국이 협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관측 속에서 구체적인 방안이 실행된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이 의문이라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은행들 '가성비' 따져서 점포 문 닫는다? = 먼저 이달 나온 은행 점포 폐쇄 현황만 종합해도 "한시가 급하다"는 금융 취약 계층의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지난 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 자료를 받아 내놓은 발표에 따르면 2016년 10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최근 5년간 국내 시중은행 점포 1507곳이 사라졌다.
이 가운데 4대 시중은행으로 불리는 ▲하나은행(304곳) ▲KB국민은행(225곳) ▲우리은행(165곳) ▲신한은행(136곳) 등이 사라진 점포 중 60% 이상을 차지했다.
강 의원은 "비대면 거래 증가를 이유로 점포를 폐쇄하는 것은 은행이 가진 공공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은행이 점포 폐쇄 현황을 반기별로 대외에 공표하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은행이 지나치게 수익성에만 골몰해 '가성비'가 떨어지는 점포 문을 닫는 것을 공공성 측면에서 제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발언은 각 지역 정치인들이 여론을 등에 업고 은행 점포 폐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나온 결과다.
실제 신한은행은 서울 노원구 월계지점을 폐쇄하겠다고 했다가 주민 반발이 일어나자 직원 3명을 상주시키는 '디지털 출장소' 전환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 당국과 일선 은행 현장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있다. 이미 금감원은 은행 점포 폐쇄 움직임을 집중 감시하고 있다. 은행연합회도 '은행권 점포 폐쇄 공동절차'를 내놓으며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에서 드러나듯 최근의 점포 폐쇄 속도를 막기엔 역부족으로 풀이된다.
전국은행산업노동조합협의회는 "무분별한 은행 점포 폐쇄는 지역과 세대별 격차를 키워 금융소비자 피해로 귀결될 것"이라며 "수도권 대비 인건비 부담과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방 지역 소재 영업점은 무분별하게 점포 폐쇄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위 계획 2년째 답보···업무계획엔 계속 '우체국 제휴' 명시 = 은행 점포 폐쇄를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한 금감원과 마찬가지로 금융위원회도 구체적인 대책은 마련한 상태다.
이미 2년여 전부터 우체국과 은행이 손을 맞잡도록 유도해 제휴 점포를 내놓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금융위는 2020년 8월 '고령친화 금융환경 조성방안'을 내놓고 폐쇄 점포 인근에 다른 지점이 없거나 초고령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이동·무인점포·창구제휴 등 대체 창구 공급을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위는 "지점 수가 많은 우체국을 중심으로 은행과 창구 업무 제휴를 강화하겠다"라는 구체적인 실행안도 내놨다.
당시 금융위 발표에 따르면 전국 우체국 지점은 2655개로 시중은행 전체 점포 수 6711개 대비 40%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도권에 집중된 은행 점포(서울·경기비중 50%)와 달리 우체국 점포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된 것이 강점으로 꼽혔다.
이를테면 은행 점포 폐쇄가 이어지더라도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는 우체국을 제휴 창구로 활용하면 꼭 오프라인 점포를 찾아야만 하는 일부 금융 취약 계층의 접근성 하락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는 금융위의 이런 발표 이후 지금까지도 발전된 움직임이 없다는 점이다.
당시 금융위가 발표에서 직접 거론한 우체국 창구 제휴 중인 IBK기업은행, 한국산업은행, 한국씨티은행, 전북은행과 카드를 통한 입출금 이체 거래만 가능한 하나은행의 제한적 제휴 외에 또 다른 은행이 추가 제휴를 맺는 성과도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2020년 8월 금융위 계획 발표 이후 지금까지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우체국 제휴 점포 탄생은 고사하고 우체국과 추가 제휴를 맺은 은행조차 나오지 않은 셈이다.
그런 가운데도 금융위의 '우체국 제휴' 움직임은 계속됐다. 금융위는 2021년 업무계획에서 "디지털 취약 계층의 금융 접근성을 제고하겠다"라는 목적에 따라 우체국과 제휴 은행간 업무 위탁 범위를 '단순 입출금'에서 '통장개설'까지 확대하고 지점 폐쇄 결정 이전 영향 평가 실시 등을 추진하겠다고 명시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말 나온 2022년 업무계획에서도 금융위는 '우체국에 대한 업무위탁 확대(제휴은행 및 서비스 등)'를 금융 디지털 전환에 대비한 소비자 보호 체계 강화 방안 중 하나로 꼽았다.
이렇다 할 실행이 엿보이지 않고 있는데 계획에 더한 계획만 구상안이 데칼코마니처럼 찍혀 담긴 셈이다.
◇"수수료 산정·책임 소재 접점 찾아야"···은행들 점포 전략도 각각 달라 = 은행과 우체국의 제휴 확대가 여전히 답보 상태인 것을 두고 현장에서는 "이쯤이면 현실성에 의문부호가 달리는 계획"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올해 초부터 금융위, 우정사업본부, 시중은행들이 우체국 제휴 지점 활용을 위한 논의에 속도를 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각에서는 여전히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꾸준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선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시선에 따라 응하고 있지만 수수료 산정부터 책임 소재까지 만만찮은 과제가 쌓여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는 우체국과 제휴 맺은 은행이 수수료를 납부할 때 고객과 서비스에 대한 기준을 어떻게 책정할지부터 혹여라도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사고에 대비한 책임 소재를 어떤 기준으로 나눌지에 대한 논의까지 방대하다.
수수료 문제만 하더라도 우체국 제휴 지점마다 어떤 산정 방식에 따라 차별화를 둘 것인지도 고려 대상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의 성격을 지닌 시중은행이 공공 성격을 강조하는 금융위나 우체국과 '한 배'를 탈 수 있느냐의 문제도 거론된다. 엄밀히 말하면 우체국 제휴 점포로 시중은행이 얻을 이익보다는 우체국이나 금융위가 챙겨갈 이득이나 대외적인 긍정적인 이미지가 더 크다는 셈법이다.
또 다른 갈등 지점은 은행마다 영업 환경이나 기준에 따라 선호하는 지역과 점포 성격이 다른데 이를 어떻게 특정 우체국 점포와 각각의 개별 은행을 연결해 제휴할 것인가의 문제다.
사실 이는 최근 불어닥친 '은행-편의점 점포' 확대에서도 엿보이는 대목이다.
일례로 하나은행은 편의점 디지털 점포 확대 전략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을 우선순위로 뒀다. 반면에 신한은행은 '도서 지역 위주' 전략을 세웠다. 은행마다 점포 입지와 인근 거주자의 평균 소득 등을 따지는 영업 환경 분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문제는 은행과 우체국이 제휴 점포를 바라보는 시각도 정반대라는 점에서 해결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은행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우체국과 선별적 제휴를 일단 추진하자고 주장하는 반면에 우체국 쪽에선 전국 제휴를 목표로 시범 운영하자고 맞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보고서 "금융당국 추진 부족"···은행연합회 "노령층 비대면 거래 비중 늘어" = 금융위 계획이 이미 1년 반 전에 나온 만큼 금융 취약 계층을 위한 우체국 제휴 점포 추진은 국회 일각에서도 "추진이 부진한 상황"이라며 주시하고 있다.
이구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지난해 11월 내놓은 '은행권의 점포 축소와 금융소외계층 보호를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 영국 사례를 근거로 은행의 우체국 업무 위탁을 대안으로 꼽았다.
이 보고서는 영국이 2007년부터 2017년 사이에 은행 점포 수가 37% 감소(1만1365개→7207개)하자 우체국 점포망을 활용해 우체국에 여러 은행의 점포를 입점시키는 형태의 공동점포를 운영하고 있다고 제시했다.
이는 지방은행들이 우체국 공간 일부를 임대하고 은행이 요일별로 하루씩 직원을 파견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구형 조사관은 "현재 금융당국이 발표한 정책들은 명확한 대안과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공동지점제나 공동ATM의 추진도 부진한 상황"이라며 "은행별로 발표하고 있는 대책들도 견고한 공조체계나 통일된 방향성 없이 추진되고 있어 금융 당국과 업계가 금융 소외 현상 최소화라는 목적 하에 실효적인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 조사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점포 축소는 금융의 디지털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은행이 선택해야만 하는 생존전략 중 하나로 보는 시각이 있다"며 "점포를 감축하는 대신 소비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수단을 다변화할 경우 금융소비자들의 이용 편의가 증진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이는 전혀 다른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열어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최근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이 은행 창구 이용 고객을 단순히 비수도권 노령층일 것이라는 추정에서 벗어나 섬세하게 파악해보자고 말한 것과도 이어진다.
김 회장은 지난달 2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인터넷 전문은행이 처음 등장한 2017년에는 대면 서비스 비중이 10%를 조금 넘었지만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보면 이 비중은 6%대로 낮아졌다"며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대면 채널 이용 비중이 2019년에는 80% 수준에 달했는데 지난해 3월 기준으로는 83% 정도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은행 업무에서 대면 서비스 비중이 한 자릿수 퍼센트까지 낮아진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대면 서비스 적응도는 계속 상승해 일각에서 추정해서 우려하는 것보다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어 김 회장은 "창구를 이용하는 고령층의 거래 또한 약 85% 정도가 입출금과 통장정리 등 비교적 간단한 업무"라며 "과도하게 인위적으로 점포 폐쇄를 억제하기보다 어떤 분들이 창구를 주로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파악한 후 이에 맞는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는 고령층이 비대면 금융 활용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란 추정을 반박하는 주장으로 읽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론되는 우체국 제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한 업무 제휴 차원에서 응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며 "금융 당국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과도한 개입을 하지 않더라도 각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은행이 더 치열한 고민을 할 것이란 점도 봐줬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과 우체국 제휴 논의는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최대한 타협점을 찾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결국 '공공성'을 내건 금융위의 추진 배경이 은행연합회의 '고령층 비대면 거래 증가'와 은행들의 '공공성과 수익성 균형'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뉴스웨이 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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