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檢 출신' 이복현 행보에 시선고정 소비자 지원 요구엔 서둘러 금리 내리기도새 정부 들어 강화되는 '관치금융'에 우려↑
'검사 출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광폭 행보에 금융회사가 긴장감을 거두지 않고 있다. 새 감독당국 수장이 취임 이후 금리 인하와 취약차주 지원, 건전성 강화 등 복잡한 주문을 쏟아낸 가운데, 이를 소홀히 했다가는 자칫 검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금융그룹은 금융감독원의 행보에 연일 촉각을 곤두세우며 원장의 요구사항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한창이다.
각 금융사는 금리인상기 속 취약차주 지원에 신경을 기울이는 것은 물론,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 여기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도 최대한 홍보를 자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사유로든 금감원의 관심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는 얘기다.
금감원장이 진행하는 은행·보험·여신전문회사·상호금융·저축은행 등 업권별 간담회에서도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모든 금융사 대표가 열외 없이 차리를 채우면서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참석하지 않거나 다른 경영진이 대신 출석토록 하던 과거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그만큼 모든 기업이 새 원장의 의중에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금융사가 자세를 낮춘 것은 검사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감독당국을 이끌게 된 이 원장의 독특한 이력에 기인한다.
1972년생인 이 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자 공인회계사 시험과 사법고시에 동시 합격한 금융·경제 수사 전문가다. 사법연수원 32기 출신인 그는 춘천지검 원주지청 형사2부 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 대전지검 형사제3부 부장검사,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했다.
아울러 이 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막내 특수통 검사인 그는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금감원장에 발탁된 것으로 유명하다.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 인사가 지나치게 중용된다는 지적에 "적임자라고 생각한다"며 공개적으로 그를 두둔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금융권 전반엔 금감원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정부의 눈 밖에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짙다.
이미 금융권 내 이 원장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라는 말 한마디에 금융사가 일제히 움직인 게 이를 방증한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달 20일 시중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예대금리차 확대로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취약 차주의 금리 조정 폭과 속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모든 시중은행이 발 빠르게 금리를 조정함으로써 요구에 부응했다. 일례로 케이뱅크는 아파트담보대출 전세금리를 최대 연 0.41%p 낮췄고, 농협은행은 전세대출 우대금리를 0.1%p 늘렸다. BNK부산은행 역시 '가계 원(ONE)신용대출' 신규 금리를 최대 0.60%p 내렸다.
금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내놓은 곳도 있다. 기존 주택담보대출자의 부담 이자 가운데 5%가 넘는 부분을 은행이 1년 동안 지원하기로 한 신한은행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우리은행의 경우 신용등급 7구간 이하, 고위험 다중채무자 등 저신용차주 중 성실상환자를 대상으로 채무를 감면해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기존 개인신용대출을 연장하거나 재약정할 때 약정금리가 6%를 넘어서면 초과하는 이자금액으로 대출원금을 자동 상환하는 방식이다. 원금 상환에 따른 중도상환해약금도 전액 면제한다.
보험업계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끌어내리며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나섰다. 농협손해보험은 한 때 금리 상단이 6%를 웃돌던 '헤아림아파트론'의 금리를 지난달 3%대로 조정했고, 교보생명도 비슷한 시기 '교보프라임장기고정금리모기지론' 금리를 4.50~5.70%로 하향했다. 5월과 비교해 상·하단 금리를 0.69%p, 0.20%p씩 줄였다.
이처럼 시장금리가 상승하는 와중에 업계가 대출 금리를 낮춘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할 만 하다. 통상 금융사는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와 은행채 금리를 지표로 대출 금리를 산정하는데, 이 기간에 이들 지표가 지속 상승했기 때문이다. 금리가 워낙 순식간에 오른 탓에 채권을 발행하는 등의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감독당국에 성의를 보이려 대책을 짜냈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업계는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금융사를 '이자 장사'라는 프레임을 씌워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 취약층 지원 책임까지 떠넘기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새 정부 들어 유독 관치금융이 강화되고 있다는 볼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각 금융사가 가급적 이복현 금감원장의 방침을 따르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부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면서 "내부적으로는 추후 더 큰 주문이 뒤따를까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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