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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수의계약 아니면 들러리입찰" 경쟁 사라진 정비업계

부동산 건설사

"수의계약 아니면 들러리입찰" 경쟁 사라진 정비업계

등록 2022.10.04 11:40

장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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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건설 들러리 서주는 중견·중소 건설업체?조합도 기간 줄이려 '들러리 입찰 의혹' 눈감기 논란사실상 담합 행위에도 처벌 가능성은 낮아

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서울의 한 단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장귀용 기자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서울의 한 단지. 기사 내용과 무관. 사진=장귀용 기자

도시정비시장이 수의계약 위주로 시공사가 정해지면서 경쟁이 사라지고 있다. 건설업계에서 원자재 상승으로 인한 공사비 부담 때문에 '제로섬' 수주전을 피하고 있어서다. 그나마 경쟁이 성사된 일부 사업장에선 한쪽에서만 입찰조건을 좋게 제출해 '들러리 입찰' 논란도 빚어지고 있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시공사를 선정한 도시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 120곳 가운데 88%(105곳)이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했다. 경쟁이 이뤄진 곳은 15곳에 불과했다. 도시정비사업은 시공사에 입찰에 2곳 이상이 참여하지 않으면 유찰된다. 유찰이 2번 되면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수의계약 현상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재개발에선 ▲동작구 흑석9구역 ▲흑석2구역 ▲서초구 방배6구역 ▲은평구 불광5구역 ▲부산 우동3구역 등 손꼽히는 대어들까지 모두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찾았다. 재건축시장에서도 ▲노원구 월계동재건축 ▲강남구 대치동구마을3지구 재건축 ▲용산구 한강맨션 등에서 1곳의 건설사만 응찰하는 일이 일어났다.

수의계약이 늘어난 것은 원자재 값 상승으로 인해 부담이 늘어나자, 건설업계 내에 수주 경쟁에 쓰이는 비용을 아끼자는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설공사에 주재료인 시멘트만하더라도 올해 최대 35%까지 가격이 올랐다. 자재가공비와 인건비도 모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작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드는 경쟁 홍보비용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2곳 이상이 응찰하는 '복수응찰'로 경쟁이 성사되면, 건설업체들은 민심을 얻기 위해 막대한 비용의 홍보비용을 쓸 수밖에 없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경쟁이 성립되면 홍보관 설치부터 각종 자료집과 홍보물 제작, 인건비 등 수많은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면서 "특히 입찰경쟁에서 질 경우 홍보비용은 고스란히 손해로 남게 돼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수의계약이 늘어나자 발주처인 조합들 내부에선 불만과 비판이 불거지는 곳도 많다. 서울 지역 A재개발의 조합원은 "경쟁이 성사돼야 건설사들이 수주를 위해 더 좋은 제안을 할 텐데, 분위기만 파악하다가 1곳만 빼곤 다 철수해버리니 선택지가 없다"면서 "수의계약으로 계약한 후엔 건설사가 갑(甲)이 돼버려 기대에 못 미치는 품질의 공사를 해도 도리가 없다"고 했다.

들러리 입찰의 구조. 사진=공정거래위원회들러리 입찰의 구조.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수의계약에 대한 거부감이 큰 현장에선 '들러리 입찰'도 나타나고 있다. 겉으로는 2개 이상의 업체가 입찰하지만, 1개 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는 설계나 품질에서 한참 떨어지는 제안서를 내 특정업체가 선택되도록 만드는 것.

들러리 입찰의 양상을 보면, 주로 중견·중소업체가 들러리를 서고 대형건설사가 사업을 수주하는 형태가 많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서울이나 광역시의 중요 정비사업에서 대형건설사의 빠른 수주를 돕고, 지방 사업에선 대형사가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중견사의 수주를 도와준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고 했다.

실제로 들러리 입찰 의혹으로 곤혹을 치룬 업체도 있다. 성북구 '길음시장 정비사업' 지난해 11월 호반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그런데 일부 조합원들은 경쟁 상대였던 제일건설이 들러리로 입찰했다면서, 호반건설과 제일건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코오롱글로벌도 들러리 입찰 의혹을 받는 대표적인 업체다. 코오롱글로벌은 2020년 흑석11구역에서 도전장을 내밀어서 대우건설과 맞붙었다. 지난해에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수주한 월계동신 재건축에서 깜짝 입찰에 참여했다. 올해 초엔 당초 포스코건설과 GS건설의 경쟁이 예상됐던 노량진3구역에 등장해 포스코건설과 맞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업장에서 상대방에게 90% 이상의 표가 몰리면서 패배했다.

당시 해당 사업장들에선 "코오롱글로벌이 현수막도 제대로 설치하지 않는 등 홍보에 힘을 별로 안 들이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서울의 대형 사업장에 진출하기 위해 시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헤프닝"이라면서 "대가를 받기로 하고 들러리를 선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부 조합에선 사업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들러리 입찰을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 단독입찰이나 무응찰로 2차례 입찰이 연기되면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이 때문에 들러리 입찰을 눈감아주고 시공사를 빨리 선정하려고 한다는 것. 정비업계 관계자는 "최근 서울 강남권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S 조합은 입찰보증금을 300억원으로 책정했다가, 최근 보증금을 없애고 보증서로 대체하기로 결정해 들러리 입찰을 조장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했다.

들러리 입찰과 수의계약 현상을 일종의 담합 행위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사실상 처벌이나 제재는 어려운 상황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담합 행위가 성립하려면 이득이 오간 정황이나 사실을 밝혀야 하는데, 정비사업은 공사비를 공유하는 등의 행위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위법행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라면서 "단순히 경쟁을 피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삼을 순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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