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낡은 인사·업무관행 뜯어고치고 '상생금융' 등 정부 지원 앞장 섰지만 증권업 등 새 먹거리 확보는 지지부진
우리금융 안팎에서는 윤 정부의 코드 인사로 우리금융 회장직에 오른 임 회장이 정부 코드맞추기에 치중하느라 아직 자신의 색채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진단하며 앞으로의 행보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오는 7월1일자로 취임 100일째를 맞는다. 지난 3월24일 손태승 전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임 회장은 '새 기업문화 정립'이라는 포부와 함께 경영행보에 돌입했다.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와 은행권 최대 금액을 갈아치운 600억원대의 직원 횡령,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 계파 갈등으로 실추된 기업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것이 임 회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임종룡 회장이 취임 당시 "분열과 반목의 정서, 낡고 답답한 업무 관행, 불투명하고 공정하지 못한 인사 등 음지의 문화는 이제 반드시 멈춰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이를 방증한다.
'성과 중심 조직' 탈바꿈···'행장 오디션' 눈길
임종룡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에 내정되면서부터 조직 쇄신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수년간 우리금융의 발목을 잡은 무거운 사건이 낡은 업무 관행과 소통의 부재, 그룹의 고질병인 파벌 싸움 등 조직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임 회장은 가장 먼저 지주를 중심으로 변화를 줬다. 총괄사장과 수석부사장직을 폐지하고 11개였던 지주 내 사업부문을 9개로 재편한 게 대표적이다. 동시에 지주 임원을 11명에서 7명으로 줄이고, 구성원을 약 20% 감축했다. 회장 비서실도 없앴다. 자회사의 업종 특성을 감안해 경영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은 물론, 성과 중심 문화로 계파 갈등을 해소하는 부가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임 회장은 '오디션' 형식의 우리은행장 인선 프로그램을 도입, 경영승계 시스템의 혁신을 꾀했다. 내부 논의 중심의 CEO 인사에서 벗어나 절차적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고 전문성을 보강한다는 취지에서다.
그 일환으로 우리금융은 네 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64일간 공개경쟁을 이어갔고 지난달 26일 조병규 우리금융캐피탈 대표를 차기 우리은행장으로 선정했다. ▲외부 전문가 심층인터뷰 ▲다면 평판 조회 ▲업무보고 평가 ▲심층면접 등 네 단계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리더십과 소통 능력, 순발력 등 리더로서의 덕목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본 결과다.
우리금융은 행장 인선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앞으로 이를 지속 보완한다면 검증된 인물에게 경영을 맡기는 인사 시스템이 완성될 것으로도 기대했다.
상생금융 앞장선 우리금융···금융당국 관계 회복했지만
임 회장 취임 후 우리금융에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금융당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과 라임펀드 불완전판매 징계, CEO 연임 등으로 건건이 충돌했던 전임 회장 시절의 갈등을 청산한 모양새다.
단편적으로 임 회장과 당국 인사가 마주한 숫자만 헤아려도 이 같은 기류를 감지할 수 있다. 실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3월말 우리은행 영등포 시니어플러스 영업점 개점식을 시작으로 우리금융의 굵직한 행사에 세 차례나 참석해 임 회장과 소통했다.
우리은행 종로4가 금융센터에서 4월 초 열린 전통시장 상인 금융 환경 개선 업무 협약, 지난 12일 우리금융상암센터에서의 합동 소방훈련 등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원장은 29일 우리카드 상생금융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데 이 자리에서도 임 회장과 만날 것으로 예상된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의 경우 5월 외부에서 열린 보이스피싱 피해예방 간담회에서, 윤종규 KB금융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5월 금융권 공동 해외투자설명회에서 각 한 차례씩 이복현 원장과 대면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행보다.
윤석열 정부의 부름을 받은 '금융 빅4' 첫 회장이라는 타이틀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선이다. 임 회장은 30년 넘게 공직에 몸담은 정동 관료 출신에 윤 정부의 경제부총리 인선 과정에서 처음으로 물망에 오른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연초 우리금융 회장 후보직을 받아들였을 당시 정부가 '우리금융의 쇄신'을 주문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여러 정황상 금융당국도 임 회장 취임과 맞물려 우리금융을 향한 태도를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임 회장 취임 이후 우리금융은 사실상 당국의 정책 파트너를 자처하고 있다. 실제 지난 3월 가계대출 금리 인하 등 20조원대 '상생금융 플랜'을 발표하며 정부의 고통분담 요구에 화답했다. 4월에는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금융사 중 가장 먼저 5300억원 규모 지원 방안을 내놨다. 이번 달에는 '청년도약계좌' 첫 달 가입액(100명 추첨)을 대신 내주는 이벤트로 정책에 힘을 실었다.
증권업 진출 '감감 무소식'···실속 없는 퍼주기 비판도
윤 정부와 코드 맞추기에는 높은 점수를 따냈지만 사업 등 그 외의 영역에 대해서는 임 회장에게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시선이다. 아직까지 그룹의 미래를 위해 수익 기반을 강화하는 등의 혁신적인 시도나 성과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일례로 우리금융은 여전히 증권사 인수에 애를 먹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마땅한 매물이 없는 탓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증권사 M&A(인수합병)'만을 고집하는 임 회장의 경영방침에서 나오는 문제가 더 크다는 지적이다. 당초 우리금융은 중소형 증권사 인수가 어려워질 때를 대비해 모바일 기반 증권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신임 회장 취임과 동시에 이를 폐기했다. 진입 장벽 높은 증권업의 특성을 감안했을 때 경쟁력을 갖춘 곳을 인수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임 회장의 판단 때문이다.
증권업 진출이 지연될수록 우리금융은 불리한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OK금융과 JB금융 등 경쟁자가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증권사 몸값이 뛰고 있을 뿐 아니라, 경쟁자에게 추월을 허용할 수 있어서다. 작년까지 3~4위 금융그룹을 다투던 우리금융은 비은행 부진 여파로 인해 올 1분기 농협금융에 자리를 내줬다.
임 회장의 경영 방식을 놓고 내부에서도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과 직원에 유독 냉정할 잣대를 들이대면서 우리금융을 키워나가는 전략면에서는 실속이 없다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어서다.
정부가 무언가를 요구할 때마다 우리금융이 지원 정책을 즉각 쏟아내는 것을 놓고도 뒷말이 무성하다. 어려운 시기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과도한 출혈은 회사의 건전성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 타 금융그룹이 정부와 우리금융의 눈치를 함께 살펴야 하는 형국이 된 것도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임 회장이 인적 쇄신 이외의 분야에 대해선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금융그룹 CEO로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지만, 조직 장악과 정부 보조 맞추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뉴스웨이 차재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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