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최초 'AI은행원' 도입···직원은 상담업무 집중단순 계좌개설 넘어 맞춤형 상품추천 서비스 추진 금융안정성 제고 노력···"최종 결정권은 사람에게"
이곳은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신한은행 AI 브랜치. 정문에 들어서면 은행 영업점의 흔한 번호표 발급기 대신 마이크와 대형 디스플레이 속 인공지능(AI) 은행원이 고객을 반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1월 AI브랜치를 개소하고 은행권 최초로 'AI 은행원'을 선보였다. AI브랜치는 은행원 대신 화면 속 AI 은행원이 고객을 응대하는 미래형 영업점이다. 신한은행은 과거에도 국내 최초로 ATM과 인터넷뱅킹을 도입하며 업계를 선도해왔다. 이번 AI브랜치는 신한의 '혁신 DNA'를 잇는 결정체로 평가받고 있다.
AI브랜치의 AI 창구는 기존 은행창구에서 제공했던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신규 예·적금을 비롯해 환전, 증명서 발급, 통장 거래내역 출력, 신규 인터넷뱅킹 신청 등이 대표적이다.
신한은행 AI 브랜치는 고객 편의성 뿐만 아니라 효율성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반복적인 업무는 AI가 처리하고, 기존 직원은 대출상담이나 자산관리 등 복잡한 업무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AI 은행원은 실제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우수직원을 모델로 삼아 개발됐다. 고객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실제 직원의 친숙한 말투와 행동을 AI에 녹여낸 게 특징이다. AI 브랜치는 AI브랜치의 일 평균 방문고객은 10명 이상, AI은행원의 업무처리 건수는 4개월 만에 1000건을 넘어섰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층뿐 아니라 40~60대 고객의 이용 비중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 디지털 전환 선도···"고객 데이터 AI 접목에 매력"
지난 19일 AI브랜치에서 만난 이호선 신한은행 디지털혁신단 AI유닛 수석은 AI 은행원의 핵심인 생성형 AI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다. 지난 2023년 ICT업계를 떠나 신한은행에 입행한 이 수석은 디지털혁신단 AI유닛에서 'AI 은행원'을 담금질해왔다.
신한은행은 2021년 7월부터 '디지로그 브랜치'라는 이름으로 디지털 기반 오프라인 창구 실험을 이어왔고, 기술 축적과 현장 피드백을 기반으로 AI 브랜치를 완성했다. AI와 데이터를 미래 핵심 경쟁력으로 판단한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은행장 시절인 지난 2020년 은행장 직속으로 '디지털혁신단'을 신설한 바 있다.
이 수석은 신한은행의 디지털 경쟁력이 금융권 선두에 있다고 자신했다. 특히 이 수석은 "ICT업계에서 AI와 관련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지만 고객의 데이터를 서비스에 직접 반영할 기회는 드물었다"며 "금융업처럼 규제가 까다롭고 고객의 신뢰가 절대적인 산업에서 데이터 기반의 실무경험을 쌓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신한은행은 외부 솔루션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개발한 생성형AI 모델을 AI브랜치에 녹여냈다. 이 수석은 "빠르게 변하는 AI 기술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하려면 핵심 기술 내재화가 필수"라며 "신한은행이 갖고 있는 금융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시킨 AI 모델은 신뢰성과 현장 적용성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인터뷰에서 함께 만난 문성기 AI브랜치 부지점장도 AI브랜치 개소에 힘을 보탠 인물 중 한 명이다. 기획부터 운영까지 전 과정에 참여한 문 부지점장은 AI 은행원의 잠재성에 큰 기대감을 내비쳤다.
AI 은행원은 아직 '신입'···금융취약계층 접근성 과제
문 부지점장은 "AI 은행원은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과 같다"며 "지금은 한 걸음씩 배우고 있지만 앞으로는 상담까지 가능한 '디지털 직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AI브랜치는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문을 열고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연장 운영돼 직장인의 이용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문 부지점장은 "일요일에 급하게 출국하는 경우에도 환전이 가능하고, 월요일까지 필요한 부채증명서도 주말에 발급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의 AI은행원 개발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이 수석은 "AI가 고객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하는 경우가 있고, 사람이 보기엔 단순한 문제도 AI에겐 어려울 수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 점검과 테스트를 반복하고, 고객 대화 패턴을 기반으로 응답 로직을 지속 개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수석은 AI가 기존 은행원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이 수석은 "AI가 상담직원 옆에서 정보를 요약하고 상품을 추천하는 'AI 어시스턴트' 기능을 개발 중"이라며 "상담 중 놓치기 쉬운 항목을 자동으로 안내하거나 고객 성향에 맞는 설명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수석은 "금융안정성 측면에서도 대출 승인 등 최종적인 의사 결정은 AI가 아닌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내부적으로 AI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한 거버넌스를 수립 중"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AI 은행원이 가야할 길은 아직 멀다. 아직까지 단순 반복업무만 가능하고 시니어층 등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접근성에 한계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AI브랜치에는 고객 안내를 위한 전담 직원이 당분간 배치된다.
문 부지점장은 "연세가 있는 분들이 은행을 찾아오는 건 모바일뱅킹 사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고령층 입장에선 아무리 사람같은 AI라도 어색할 수 있고, 앞으로 AI은행원만의 장점을 잘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망분리 등 타이트한 금융 규제도 AI은행원이 넘어야 할 산이다. 이 수석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규제가 뒤따라가기 어려워 보인다"며 "당국이 AI 관련 가이드라인과 제도 개선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고 지원한다면 금융산업 전체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거치지 않고도 신기술을 안전하게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AI 개발 속도도 훨씬 빨라질 것이라는 게 이 수석의 생각이다.
끝으로 이 수석은 "IT업계만큼은 아니지만 AI기술에 대한 금융권의 관심은 대단히 높고,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망분리를 비롯해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여러 규제 속에서 AI브랜치처럼 고객에게 도움이 되는 새로운 서비스를 발굴해내는 게 금융권의 숙제"라고 말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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