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 '자율 구조조정' 첫발···롯데·HD현대 대산 NCC 합친다(종합)

롯데·HD현대, 석화 재편안 제출···산업부 "집중 지원 제공"'구조 개편 1호'···사업재편 승인 시 대규모 지원 혜택 대산서 110만톤 감축 예상···여수·울산도 연내 합의 속도

그래픽=박혜수 기자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국내 석유화학 업계를 뒤흔드는 첫 구조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양사는 대산 NCC 설비를 통합하고 합병법인 지분을 50:50 공동 보유하는 사업재편계획을 산업부에 제출하며 정부가 요구한 NCC 생산능력 감축 주문의 약 3분의 1을 단번에 해치우겠다는 구상이다. 비상걸린 석유화학 업계의 1호 해결사가 등장하면서 여수, 울산 등 국내 주요 석화단지에서의 구조조정안 마련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사업재편계획 승인 심사를 신청했다고 26일 공시했다. 양사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석유화학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이행 및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개편에 참여하기 위해 산업통상부에 양사 공동으로 사업재편계획 승인 심사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기업결합에 따른 지분조정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사전심사도 신청했다. 사전심사는 기업결합을 하고자 하는 회사가 신고 기간 이전에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지 여부에 대해 공정위에 심사를 요청하는 제도다.

이번 재편계획의 핵심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과잉 문제로 지적되어 온 납사 크래커(NCC) 설비를 단일화하는 것이다. 롯데케미칼이 대산단지 내 설비를 물적 분할로 HD현대케미칼에 넘기고, 분할신설법인을 HD현대케미칼과 합병해 HD현대케미칼이 존속한 뒤 분할신설법인은 소멸하는 구조다. 이후 롯데케미칼이 합병법인 주식을 추가 취득해 최종적으로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각각 50% 지분을 보유하는 완전 공동 지배 구조를 갖게 된다.

양사는 합병을 통해 NCC 설비를 합리화하고 생산 운영 체제를 일원화할 계획이다. 중복설비를 줄여 공급 과잉을 해결하고 원료 조달 단가를 낮추는 등 비용을 절감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대산석화단지 내 롯데케미칼의 NCC 생산능력은 연 110만톤, HD현대케미칼은 85만톤 수준이다. 롯데케미칼의 기존 대산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대산 단지는 합병 후 연 85만톤 규모로 운영된다. 롯데케미칼 측은 "단일 체계 운영으로 생산과 공정의 일관성 및 안정성이 높아져 사업재편 전반의 실효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제출건은 롯데케미칼이 지난 6월부터 국내 석유화학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HD현대케미칼과 함께 충남 대산 NCC를 놓고 통합 논의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간 중국 업체의 공급 과잉으로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의 가동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업계 전반에서 구조개편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국내 NCC 가동률은 지난해 80% 초반에서 올해 상반기 70%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사례는 정부가 요구한 NCC 자율 감축 첫 성과이자 석화 업계의 사업재편 신호탄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주요 석유화학 기업을 대상으로 1470만톤에 달하는 NCC 생산 능력을 자발적으로 270만~370만톤(18~25%) 감축 계획 제출을 주문한 바 있다. 이번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재편만으로도 정부 목표치의 3분의 1가량(약 110만톤 수준)이 한 번에 줄어든다. 이에 따라 대산산단의 총 생산능력도 478만톤에서 368만톤으로 감소하게 된다.

산업부는 제출된 사업재편계획을 사업재편계획심의위원회를 통해 60일 이내 심사할 예정이다. 심사 기준은 구조 변경 및 사업 혁신 적합성, 생산성, 재무 건전성 등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유-석화 수직계열화를 통한 효율성 향상으로 중동·중국의 최신 설비에 대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정부가 당초 제시했던 사업재편계획 제출 기한(연말)보다 한 달가량 빠른 일정으로 진행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승인될 경우 양사는 세제지원, 상법 특례 등 인센티브를 받게된다. 아울러 사업재편 승인 시 석화 산업 구조 개편을 위해 부처 간 협의를 거친 세제·R&D·원가절감 및 규제 완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원 사항이 포함된 '맞춤형 기업지원 패키지'도 함께 발표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고부가 및 친환경 사업 구조로의 전환도 병행하며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2022년 이후 적자를 면치 못하던 롯데케미칼의 수익성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감이 물씬 흐르고 있다. 지난 3분기 실적발표 때 김민우 롯데케미칼 전략기획본부장도 "대산 단지 내에서 극복할 방안을 찾고 스터디를 했다"며 "생산되는 에틸렌 밸런스를 맞추고, 수익성에 맞춰 다운스트림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가동한다면 손실 보는 수준을 대폭 축소하거나 몇천억 원 단위의 수익성 제고 효과가 있다는 걸 내부적으로 찾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초기에는 설비 철거와 관련한 환경영향평가, 폐기물 처리, 안전 조치, 다운스트림 설비 재배치 등으로 일시적인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며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유지보수 비용과 고정 비용, 에너지 비용 및 원재료 비용을 절감함으로써 합작사의 전반적인 비용 구조가 개선되는 방향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신홍주 신영증권 연구원도 "롯데케미칼은 구조조정 계획을 가장 먼저 제출하며 생존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HD현대케미칼과의 수평적 통합으로 수천억원의 적자 축소가 가능하고, 업황 회복에 회사의 생존을 위한 노력이 더해지며 시너지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여수산단에 직접 방문해 석유화학 기업들에 경고장을 넣기도 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정부가 지난 8월에 발표한 사업재편계획서 제출기한은 12월 말이며 이 기한을 연장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이 시한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은 정부지원에서 제외될 것이며 향후 대내외 위기에 대해 각자도생해야 할 것"이라며 최후통첩성 입장을 나타냈다.

현재 롯데케미칼·HD현대케미칼 외에는 사업재편이 더딘 상황이다. 여수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NCC 통합 운영안을 논의 중이며, 울산에서는 대한유화·SK지오센트릭·에쓰오일이 외부 컨설팅을 통해 사업 재편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정부에 협조적인 사업재편 첫 사례가 발생하고 지난 2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통과된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여수와 울산 석화단지에서의 구조조정안 마련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