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기업, 미국 후기 임상 전략 재정비 필요CES 요구 축소로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회 확대초희귀질환 맞춤치료는 플랫폼 가치 재조명 기대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이 주목하는 변화는 크게 세 갈래로 정리된다. 신약 허가에서 '확증(중추) 임상 2건'을 요구하던 관행을 '1건의 적절하고 잘 통제된 임상과 보강 근거'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성이 제시됐고, 바이오시밀러(동등생물의약품)에서는 비교효능연구(CES, 통상 3상) 요구를 줄여 분석평가 중심으로 유사성을 입증하도록 하는 초안이 공개됐다.
여기에 초희귀질환 맞춤치료 영역에서는 환자 수가 극히 적어 전통적 임상 설계가 어려운 경우 '합리적으로 개연성 있는 작동 기전(plausible mechanism)'을 포함한 근거 패키지로 개발·평가 경로를 열겠다는 초안이 나오며, 임상 개수보다 근거 중심으로 규제가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약 개발 기업, 후기 임상 진입 시 영향권
이번 규제 변화 중 신약 허가 관련 논의는 단순히 임상이 줄었다는 의미로 보기 어렵다. FDA가 던진 메시지는 두 번을 반복하는 형식보다 한 번이라도 설계가 탄탄한지를 더 강하게 보겠다는 쪽에 가깝다. 대조군이 부실하거나 평가변수가 타당하지 않은 경우, 또 통계 계획이 사후적으로 구성된 경우라면 임상을 2~3건 수행해도 결론이 왜곡될 수 있다는 논리다.
따라서 앞으로는 동시대 대조군 사용, 최선 치료 대비 여부, 1차 평가변수 선택, 효과 크기, 통계적 검정력, 무작위배정 등 '설계 체크리스트'가 사실상 진입장벽이 될 수 있고, 기전이 불명확하거나 중간지표 의존성이 큰 영역에서는 여전히 추가 시험 요구가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기본값이 1건으로 이동하면, 특히 자본 여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바이오텍을 비롯한 기업에는 '가성비 임상' 전략을 짜볼 수 있는 공간이 생길 수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앞으로 미국에서 후기 임상 설계를 새로 짜야 하는 곳이 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초기 임상을 진행 중인 기업이 그 대상이다.
대표적으로 에이비엘바이오는 미국 파트너사를 통해 ABL001, ABL301, ABL503, ABL111 등 여러 파이프라인의 초기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네옥바이오와 이중항체 ADC 후보물질 ABL209(NEOK002)의 임상 1상 시험계획서(IND)를 FDA에 제출하기도 했다. 네옥바이오는 에이비엘바이오가 미국에 설립한 이중항체 ADC 임상 개발 전문 바이오 기업으로 ABL209와 ABL206(NEOK001)에 대한 글로벌 개발 및 상업화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ABL206의 임상 1상 IND는 지난달 16일 FDA 승인을 받은 상태로, 네옥바이오는 두 후보물질에 대한 임상 1상을 올해 중반 시작할 예정이다. 내년 중 발표될 초기 임상 데이터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확인되면 임상 진전이 이뤄질 텐데, 그 과정에서 이번 규제 변화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외에도 리가켐바이오 IKS014(LCB14)·LNCB74, 보로노이 VRN11·에노제르티닙(ORIC-114), 한미약품 HM15275·투스페티닙, SK바이오팜 SKL35501, 에스티큐브 넬마스토바트(hSTC810), 파마리서치 CNT201 등이 미국 FDA에 IND 승인을 받아 임상 진행 중이다.
일부 신약허가신청(NDA)을 준비 중인 기업도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비보존제약 관계사 비보존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마약성 진통제 어나프라(오피란제린)의 미국 내 임상 3상을 잠정 중단한 바 있다. 본래 미국 임상 3상 재개 여부를 검토 중이었으나, 신약 허가 정책 변화에 맞춰 미국 FDA와 사전협의(pre-NDA)를 준비 중이다.
비보존 관계자는 "FDA는 2022년 급성 통증 치료제 개발 가이드라인에서 마약성 진통제의 사용량과 필요성도 효능으로 인정 가능하다는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며 "기존 임상 결과의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 지표를 중심으로 FDA와 협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 파이프라인은 글로벌 빅파마(대형제약사)에 기술수출 된 물질로, 향후 중추임상 설계 단계에서 근거 패키지 경쟁이 강화될수록 파트너사의 규제 소통·설계 역량 중요도가 커질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정책이 확정된 규정이라기보다 심사 방향성에 가까운 만큼, 실제로 기업별 수혜가 현실화하려면 적응증별 가이드라인과 개별 심사 사례가 축적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이오시밀러 CES 축소 체감 커
바이오시밀러의 CES 요구 축소는 상대적으로 체감이 빠른 분야로 평가된다. FDA는 수 년 전부터 바이오시밀러 개발에서 비교효능연구가 시간과 비용이 큰 반면 민감도는 낮다는 취지의 문제의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대부분 제품에서 분석평가를 중심으로 비교가능성을 입증하도록 하는 접근을 제안했다. 이와 같은 흐름이 최종 가이던스로 굳어지면, 임상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품목에서 개발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파이프라인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붙는다.
국내에서는 미국에서 시밀러 판매·확대 경험을 축적한 셀트리온과 미국 승인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가장 직접적인 수혜 후보로 거론된다.
셀트리온은 미국에서 바이오시밀러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대표 주자로, CES 부담 완화가 현실화할 경우 후속 품목 진입과 동시개발 전략의 경제성이 개선되는 구조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역시 미국에서 다수의 바이오시밀러 승인·전개 경험을 가진 기업으로, 개발 과정에서 비교임상 요구가 줄수록 파이프라인 확장과 개발비 효율 논리가 강화될 수 있다.
이밖에 동아ST 또한 지난해 미국에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스텔라라 시밀러인 이뮬도사를 출시하는 등 시밀러 승인 레퍼런스를 확보한 이력이 있어 후속 품목 확대 시 임상 부담 완화가 우호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지난 2024년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투즈뉴(HD201)'의 유럽 승인을 받은 곳으로, 현재 미국 FDA 품목허가 및 출시를 준비 중이다. CES 요구 축소 기조가 구체화할 경우 개발·제출 전략에 반영될 여지가 있는 기업으로 분류된다. 역시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후보물질 AP063 품목허가를 준비 중인 에이프로젠은 유럽과 미국 규제기관과 협의를 진행 중으로, 최근 FDA에 현재 확보된 임상 및 분석 자료를 기반으로 확증적 임상 3상 시험 자료 없이 허가 신청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받았다고 알려졌다.
다만 시밀러 개발 진입이 쉬워진 만큼 경쟁이 더 격화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 임상 부담이 전보다 줄어드는 만큼 출시 속도와 공급 안정성, 유통 채널 선점력에서 기업 간 격차가 더 부각될 여지도 있다.
초희귀 맞춤치료 '작동 기전' 강조
초희귀·맞춤치료의 '합리적으로 개연성 있는 작동 기전 (plausible mechanism)' 경로는 적용 범위가 좁지만, 시장에서는 플랫폼 가치 재평가 논리로 번질 확률이 있다. 희귀질환 환자 수가 너무 적어 전통적 임상 설계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 작동 기전 개연성과 소규모이더라도 설득력 있는 결과, 자연사 데이터, 표적 교정 확인 등으로 근거 패키지를 구성할 수 있도록 길을 열겠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이때 특정 플랫폼을 통해 개발된 물질이 승인허가를 받는 등 좋은 결과를 낼 경우, 같은 플랫폼을 통해 개발된 다른 물질 역시 기본적으로 같은 기전을 사용하는 만큼 해당 정책 수혜를 볼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다만 이 역시 단순 기전만으로 승인을 받는 것이 아니라, 허가 이후 시판 후 데이터 수집과 확증적 근거 확보를 전제로 하는 구조가 함께 논의되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단기 매출보다 파트너십에 긍정적 변수로 작동할 공산이 크다.
국내에서는 유전자편집·핵산치료 플랫폼을 보유했거나 이미 미국 파트너·미국 협업 축을 갖고 있는 기업이 간접 수혜 후보로 꼽힌다.
툴젠은 그간 미국 특허·소송 이슈를 통해 CRISPR(크리스퍼) 플랫폼과 IP 존재감을 부각했고, 진코어는 미국 소재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들은 맞춤형 유전자편집 기술이 제도권으로 확장될 때 플랫폼 가치가 재조명될 여지가 있다.
올릭스는 지난 2019년 미국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고, 지난해 일라이 릴리와 대사 이상 지방간염(MASH) 및 심혈관 대사 질환 치료제 후보 물질 'OLX702A'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전달체 없이도 세포 내로 약물을 전달하는 '비대칭 siRNA(cp-asiRNA)'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만큼 기전 중심 정밀치료라는 기조와 부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일라이릴리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알지노믹스 역시 RNA 편집 기술을 지닌 기업이다.
이외에 비상장사 중 피알지에스앤텍처럼 희귀 유전 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는 사례도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관계자는 "(FDA의) 이번 입장은 확정된 규정 개정이라기보다, 향후 심사 정책 방향성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실제 적용 범위와 구체적 심사 기준은 추후 FDA 공식 문서 또는 사례를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올해 FDA에서 임상시험 요건에 대한 중요한 변화가 예상되고, 이럴 경우 임상시험 비용 및 기간 단축에 따른 큰 기회비용 효과가 예상되는 만큼 후속 정책수립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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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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