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름값보다 먼저 폭등한 건 탐욕이었다

오피니언 데스크 칼럼 신지훈의 굳이 산업

기름값보다 먼저 폭등한 건 탐욕이었다

등록 2026.07.08 15:04

신지훈

  기자

reporter

전쟁은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리는 재난이다. 포성이 울리면 가장 먼저 출렁이는 것은 국제유가다. 그 여파는 주유소 가격표를 거쳐 고스란히 국민의 지갑으로 전가된다. 출퇴근을 위해 자동차를 몰아야 하는 직장인도, 하루 종일 도로를 달리는 택배기사와 화물차 기사도 기름값 앞에서는 속절없이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유가부터 걱정한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최근 검찰이 공개한 정유업계 내부 메신저는 그 익숙한 풍경에 묵직한 의문을 던졌다.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 벌 듯."

미국·이란 전쟁 직후 정유사 내부에서 오갔다고 검찰이 제시한 이 대화는 몇 줄에 불과하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물론 이는 현재 공소사실의 일부다. 최종적인 사실관계는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국민들이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하던 시기에 기업 내부에서는 전쟁을 실적 개선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존재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몇몇 직원의 부적절한 발언에 있지 않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가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조율했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이를 추종하면서 경쟁이 사실상 무력화됐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직접 담합에 따른 경쟁 제한 규모를 14조2000억원, 가격 추종 효과까지 포함하면 약 2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판단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정유사의 수익성이 개선되는 것은 시장경제에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문제는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시장 경쟁의 과정이다. 검찰의 주장처럼 경쟁 대신 가격 담합이나 정보 교환을 통해 이익을 키웠다면 이는 정상적인 시장 경쟁의 영역이 아니다. 자유시장은 기업의 이윤을 보장하지만 경쟁을 훼손하는 행위까지 용인하지는 않는다.

이번 사건의 무게가 더욱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정유시장은 사실상 네 개 업체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형적인 과점시장이다. 과점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한 산업에서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지가 제한된 시장일수록 기업에 요구되는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가격 결정 하나가 국민 생활비와 산업 전반의 비용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가격 담합 의혹뿐 아니라 전량구매계약을 통한 거래상 지위 남용,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대비한 자료 삭제, 정부에 대한 공급가격 허위 보고 정황까지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모두 재판을 통해 사실관계가 가려져야 한다. 다만 검찰의 판단이 법정에서 인정된다면 이는 일부 직원의 일탈을 넘어 시장 지배력을 행사하는 방식과 기업문화 전반을 되짚어봐야 할 사안이 된다.

무엇보다 국민에게 허탈감을 안긴 것은 내부 메신저에 드러난 인식이었다. 가격 인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라는 표현이 거리낌 없이 오가고, '우리 올해 2조 벌 듯'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공유됐다면 국민은 기업이 자신들과 같은 현실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되묻게 된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국민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실적의 기회로 소비하는 태도까지 시장경제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은 특정 정유사 몇 곳의 형사재판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과점시장을 감시하는 제도가 충분했는지, 가격 결정 과정은 얼마나 투명했는지, 경쟁을 촉진할 장치는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함께 점검해야 한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전제로 한다. 경쟁이 사라진 자리를 담합이 대신하는 순간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법원의 판단은 이제 시작이다. 재판 결과는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 다만 이번 사건은 이미 하나의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국민은 전쟁 때문에 기름값이 올랐다고 믿었다. 그러나 검찰의 공소사실이 법정에서 인정된다면 그 가격을 더 끌어올린 것은 국제유가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 순간 가장 크게 손상된 것은 유가가 아니라 시장에 대한 신뢰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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