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전 세계 혁신 파이프라인 43% 차지···중심은 중국"美 FDA 최우선 전략·AI 적극 활용·아시아 질환 집중" 조언
신약개발의 성공 공식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에서 초기 임상과 개념검증(PoC)을 거친 뒤 기술이전이나 글로벌 개발을 추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연구개발 초기부터 FDA 허가와 다국가 임상시험(MRCT), 글로벌 상업화를 함께 염두에 두고 개발 전략을 설계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글로벌 바이오산업에서 아시아의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한때 글로벌 제약사의 생산기지나 임상 수행 국가로 평가받던 아시아는 이제 혁신 신약을 직접 개발하고 기술을 수출하는 핵심 거점으로 부상했다. 맥킨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아시아가 전 세계 혁신 파이프라인의 약 43%를 차지하며 글로벌 바이오 혁신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초기 연구개발부터 글로벌 허가와 사업화를 함께 고려하는 전략이 확산되면서 산업의 경쟁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다.
국내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개발 전략을 고도화하고 있다. 항체약물접합체(ADC)와 이중항체, RNA 치료제 등 차세대 모달리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후보물질의 기술력만으로 차별화하기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어떤 적응증을 선택하고 어느 국가에서 임상을 수행할지, 허가와 사업화를 어떻게 연결할지 등 개발 전략의 완성도가 신약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FDA는 마지막이 아닌 '출발점'"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임상 막바지에서 해외 진출을 고민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업계에서는 후보물질 발굴 단계부터 FDA 허가 전략과 다국가 임상시험(MRCT), 사업개발 계획을 함께 설계해야 개발 속도와 기술이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는 후보물질의 기전과 효능뿐 아니라 임상 설계의 완성도와 규제 전략, 후속 개발 가능성까지 함께 검토한다.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미국과 유럽 등 대규모 시장에서 곧바로 개발을 이어가기 어려운 구조라면 계약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면 FDA 전략은 개발 후반에 붙이는 절차가 아니라 처음부터 포함해야 하는 요소"라며 "비임상 설계와 임상시험계획, 환자군 선정이 하나의 개발 경로 안에서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초기 임상부터 미국 환자를 포함하거나 국내외 임상을 동시에 설계하는 사례도 확대되고 있다. 국내 임상 결과를 확보한 뒤 다시 미국 기준에 맞춰 시험을 설계하면 시간과 비용이 이중으로 들 수 있기 때문이다. MRCT 역시 단순히 참여 국가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국가별 의료환경과 환자 특성을 반영한 일관된 임상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핵심으로, 이를 위해서는 임상개발과 규제, 통계, 사업개발 조직이 초기부터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과거에는 좋은 후보물질을 만들면 이후 단계는 파트너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초기 개발 전략 자체가 기술의 일부로 평가된다"며 "어떤 국가에서 어떤 환자를 대상으로 어떤 데이터를 먼저 만들 것인지가 기술이전 가능성을 좌우한다"고 전했다.
결국 FDA 허가는 신약개발의 마지막 관문이 아니라 개발 방향을 결정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후보물질을 먼저 만들고 글로벌 전략을 나중에 붙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목표 시장과 허가 경로를 먼저 정한 뒤 이에 맞춰 연구개발을 설계하는 방향으로 경쟁의 기준이 바뀌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 확보, '아시아 질환'이 기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다고 해서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경쟁하는 적응증에 뛰어들 필요는 없다는 조언도 나온다. 오히려 아시아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질환을 공략하는 것이 차별화된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중국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서구 기업들이 집중하는 분야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충족 의료수요(Unmet Need)가 큰 질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간암과 위암, 담도암 등은 서구보다 아시아 환자 비중이 높고 임상 경험과 의료 인프라도 풍부한 만큼, 글로벌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분야라는 설명이다.
실제 글로벌 제약사들도 최근에는 지역별 질환 특성을 반영한 개발 전략을 확대하고 있다. 단순히 환자 수가 많은 시장을 공략하기보다 질환 특성과 임상 수행 역량을 고려해 적응증을 세분화하는 방식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 관계자는 "글로벌 진출은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많이 개발하는 분야에서 정면 승부를 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며 "한국 기업이 강점을 가진 질환과 데이터를 활용해 차별화된 가치를 만드는 전략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한국 역시 국내 의료기관의 임상 경쟁력과 축적된 환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시아에 특화된 질환 파이프라인을 집중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글로벌 빅파마와 정면 승부를 하기보다 차별화된 영역을 선점하면 기술이전과 공동개발 기회도 확대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中, 신약개발 핵심으로···PoC 확보 후 확장
중국은 단순히 환자가 많은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신약개발의 핵심 임상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풍부한 환자군과 빠른 환자 모집, CRO(임상시험수탁기관)와 CDMO(위탁개발생산) 등 연구개발 인프라를 기반으로 초기 임상과 개념검증(PoC)을 수행하는 거점으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CRO 관계자는 "중국의 경쟁력은 환자 수보다도 초기 임상을 빠르게 수행하고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연구개발 생태계"라며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에서 PoC를 확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한국 역시 이러한 변화를 단순한 경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내 기업이 후보물질 발굴과 초기 연구개발에 강점을 갖고 있다면 중국의 임상 인프라를 활용해 PoC를 확보하고,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 개발을 확대하는 전략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 단계별로 강점을 가진 국가와 협력하는 방식이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새로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AI? 바이오텍에겐 선택 아닌 '필수'
AI 역시 더 이상 신약개발을 돕는 보조기술이 아니라 연구개발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에는 후보물질 탐색 과정에서 일부 활용되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표적 발굴부터 후보물질 설계, 임상 성공 가능성 예측까지 연구개발 전 과정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앞선 중국 기업 관계자는 중국 바이오 생태계의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로 AI 활용 확대를 꼽았다. 그는 "바이오기업이 모든 기술을 직접 보유할 필요는 없다"며 "벤처기업일수록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단계부터 AI와 함께 개발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글로벌 제약사들도 AI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인실리코 메디슨은 일라이 릴리와 사노피, 다케다 등 글로벌 제약사와 잇달아 신약개발 계약을 체결했으며, AI를 활용한 후보물질 발굴 기간을 단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SK바이오팜이 인실리코 메디슨과 공동연구를 추진하는 등 AI를 외부 혁신기술 확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바이오기업들도 AI를 연구개발에서 보조기술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개발 전략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부터 후보물질 발굴, 연구 등 모든 단계에서 AI를 함께 활용하는 접근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전략'
국내외 관계자들은 "이제 신약개발의 경쟁력은 기술력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고 입을 모았다. 동일한 후보물질이라도 적응증 선정과 임상 전략, 규제 대응, 사업개발(BD) 전략에 따라 개발 속도와 사업화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FDA 중심의 개발 전략과 아시아 질환 공략, AI 활용, 중국 임상 인프라 활용 역시 모두 연구개발 초기 단계에서 개발 전략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공통된 방향으로 이어진다.
업계에서는 국내 바이오기업들도 연구개발 초기부터 글로벌 허가 전략과 임상 개발, AI 활용, 사업개발 등을 함께 고려하는 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기술 경쟁뿐 아니라 개발 전략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해지는 만큼, 기술을 빠르게 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의미다.
뉴스웨이 현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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