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반도체' 이어 '문화유산'···이재용, 아버지 이건희 유산 넓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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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이어 '문화유산'···이재용, 아버지 이건희 유산 넓힌다

등록 2026.09.29 16:00

고지혜

  기자

그래픽=이찬희 기자그래픽=이찬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친인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평생 공들인 유산에 다시 힘을 싣고 있다. 뉴욕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반도체 협력을 챙긴 데 이어 곧바로 런던으로 건너가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의 마지막 무대에 선다.

문화 분야에서는 선대가 남긴 자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세계에 알리는 데 직접 나서고, 사업에서는 메모리를 넘어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까지 반도체 사업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일군 문화보국과 반도체라는 두 축을 계승하면서도, 이재용식 전략을 더해 새로운 성장 기반으로 확장하는 모습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3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국외 순회전 갈라 디너와 다음 날 개막식에 참석한다.

이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선대의 문화유산 보존 철학을 소개하고, 영국과 유럽의 글로벌 기업 경영진을 비롯해 문화예술계와 정·관계 주요 인사들을 맞이할 전망이다. 삼성 총수 일가와 주요 경영진도 함께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런던 전시는 이건희 선대회장이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세계에 알리는 국외 순회전의 마지막 무대다. 국보 10건과 보물 13건을 포함해 총 100건의 작품이 전시된다.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출발해 시카고를 거친 순회전이 런던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다.

선대 문화유산 직접 챙긴 이재용···영국서 '문화보국' 세계화


빠듯한 사업 일정을 소화하는 가운데 이재용 회장이 직접 런던까지 찾는 데에는 선대의 문화유산을 각별히 챙기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평생에 걸쳐 구축한 문화적 자산을 국내에 머무는 유산이 아닌 세계와 공유하는 공공 자산으로 확장하는 데 직접 나서는 셈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생전 문화유산을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적 자산으로 바라봤다. 당시 취미나 자산가치 차원에서 미술품을 수집하는 기업가들은 적지 않았지만, 이 선대회장은 문화유산의 보존 자체를 기업가의 사회적 책무로 인식했다.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을 개관하면서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을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철학에서 비롯됐다. 국보급 문화재와 국내외 주요 미술품을 꾸준히 모으고, 리움과 호암미술관을 중심으로 보존·연구·전시 기반을 갖추면서 삼성가의 문화공헌을 '문화보국'으로 넓혔다.

이재용 회장은 선대의 뜻을 사회환원과 세계화로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을 비롯한 유족들은 2021년 이 선대회장이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했다. 개인이 소장하던 문화유산을 국민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 문화자산으로 돌려놓겠다는 취지다.

해외 순회전은 이 같은 문화공헌을 세계 무대로 확장하는 동시에 삼성의 글로벌 대외 접점을 넓히는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앞서 워싱턴DC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행사에서는 테드 크루즈 미국 상원의원이 삼성의 텍사스 반도체 투자를 직접 언급하며 한미 기술·반도체 협력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했다.

문화유산을 매개로 현지 정·관계와 산업계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이번 런던 행사 역시 삼성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대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활동이 사회공헌을 넘어 삼성의 글로벌 위상과 대외 협력 기반을 넓히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건희가 키운 반도체···이재용은 AI용 반도체로 판 넓힌다


사업에서도 이재용 회장은 선대의 유산을 잇는 동시에 새로운 성장 전략을 더하고 있다. 특히 삼성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에서는 과감한 선제 투자와 기술 확보라는 이건희식 경영 기조를 계승하면서, 사업 영역을 메모리에서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까지 확대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회장은 런던으로 향하기 직전까지 미국에서 반도체 사업을 직접 챙겼다.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갈라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만나 양사의 협력 관계를 재확인했다. 황 CEO의 밴 플리트상 수상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삼성과 엔비디아가 모두 AI에 '올인'하고 있다는 취지로 협력 의지도 강조했다.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공을 들이는 데는 선대가 직접 씨를 뿌리고 키운 삼성의 상징적인 사업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1974년 그룹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사재를 들여 경영난에 빠진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했다. 당시 국내 전자산업의 기반조차 취약했지만, 반도체가 삼성뿐 아니라 한국 산업의 미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후 삼성은 선제적인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을 통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키웠다. 불황에도 투자를 늦추지 않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이건희식 경영은 삼성 반도체가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기반이 됐다.

이재용 회장은 이 같은 투자 기조를 이어가면서 여기에 자신만의 전략을 더하고 있다. 이건희 선대회장 시절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의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끌어올려 시장을 선점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재용 체제에서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하나로 묶는 '원스톱 솔루션'을 새로운 승부수로 내세우고 있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 수요가 커지는 가운데,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과 패키징까지 아우르는 사업 역량을 확보해 고객사의 복합적인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메모리 경쟁력을 바탕으로 파운드리와 패키징 사업을 연계해 반도체 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AI 반도체 시장에서 사업 기회를 넓히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수익성도 개선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이 300조원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와 메모리 업황 개선이 실적 회복의 배경으로 꼽히는 가운데,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을 아우르는 사업 구조가 향후 성장 전략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선대의 경영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달라진 산업 환경에 맞춰 사업의 무게중심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 분야에서는 선대가 남긴 문화유산을 국민과 세계에 개방하고, 반도체에서는 메모리 중심의 사업 구조를 AI 시대에 맞춰 확장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과 이건희 선대회장은 성격은 꽤 다르지만 사업을 보는 눈은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잘되는 사업만 붙들고 있기보다 다음 판을 먼저 준비한다는 점이 그렇다. 이 회장도 메모리에 머무르지 않고 파운드리와 패키징까지 함께 가져가면서 반도체 사업의 판을 더 키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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