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대면 진료를 받더라도 정작 처방받은 약을 손에 쥐려면 한참이 걸린다. 문을 연 약국을 찾아 거리를 헤매거나, 전화를 돌린 약국마다 "그 약은 재고가 없다"는 답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일. 비대면진료가 시행되는 시대에도 환자들이 여전히 맞닥뜨리는 현실이다. 치료의 마지막 단추인 의약품 전달이 여전히 비대면 배송이라는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서다.
정부가 지난 8월 모든 비대면진료 환자를 대상으로 약 배송을 전면 확대하는 논의를 띄우자 이 마지막 문턱을 없애자는 찬반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하지만 찬반을 떠나 법과 현실의 간극부터 냉정하게 짚어야 한다. 오는 12월 24일 시행을 앞둔 개정 의료법은 대면진료 원칙을 못 박으면서, 약국 외 인도를 섬·벽지 거주자와 장기요양 수급자, 등록장애인, 제1·2급 감염병 환자, 희귀질환자 등 5개 취약군으로 묶어두었다. 이마저도 관할 지역 약국에서만 취급하도록 빗장을 걸었다. 정부가 공언한 '전면 확대'가 현실화되려면 잉크도 마르지 않은 개정 의료법의 뼈대를 흔들어야 할 뿐 아니라, 약사법 제50조가 규정한 '약국 내 판매' 원칙까지 손질해야 하는 입법적 난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이 첨예한 전선에서 산업계와 직역 단체는 각자의 숫자를 무기 삼아 맞붙고 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비대면진료 이용자 2066명을 조사한 결과 23.4%가 "약을 결국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플랫폼 업계는 이를 배송 규제가 낳은 '의료 공백'의 증거로 든다. 반면 대한약사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들이대며 반박한다. 비대면진료 건강보험 환자의 약국 조제율이 92.1%에 달하는데, 20%가 넘는 환자가 약을 못 받는다는 주장은 여론을 호도하는 과장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두 숫자는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다. 수령 실패 경험을 묻는 설문과 특정 시점의 건강보험 조제율은 대상과 집계 기준을 맞춰 살펴야 한다. 설문 응답만으로 수령 실패가 모두 배송 제한 탓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조제율이 높다는 이유로 약을 받기까지 겪은 지연과 불편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서로 다른 지표를 맞세워 상대의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환자의 사정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고, 제도가 개선될 방향을 가늠하기도 난망해진다.
배송 확대의 효과를 따지려면 약을 제때 받지 못한 이유부터 나눠 봐야 한다. 환자가 약국까지 이동하기 어렵다는 것과 처방받은 제품을 약국에서 구하지 못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정부는 올해 2월 대체조제 사후통보 지원시스템을 도입해 기존 전화·팩스 외에 전산 통보를 허용했다. 이런 제도 개선이 현장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는지, 환자가 처방약을 보유한 약국을 정확히 찾을 수 있는지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배송이 해결할 수 있는 불편과 별도의 제도 개선이 필요한 문제를 구분해야 정책 효과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검증을 주도할 일차적 책임은 확대를 추진하는 정부에 있다. 업계와 관련 단체에서 필요한 자료를 모아 기존 제한적 배송 사례부터 살펴야 한다. 처방 후 수령까지 걸린 시간, 수령 실패 사유, 오배송과 보관조건 위반, 복약지도 이행 여부 등이 평가 대상이다. 제한된 환자군에서 얻은 결과를 전체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고 환자를 구제할 것인지도 확대 논의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약 배송의 타당성은 막연한 편리함의 기대만으로도, 위험성에 대한 경고만으로도 판단할 수 없다. 향후 비대면 배송 전면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이 개선되면 확대하고 어떤 위험이 확인되면 보완할 것인지, 평가 기준과 결과를 공개해야 할 것이다. 정책의 성공 여부는 '약이 문 앞에 도착했는지'가 아닌, '환자가 필요한 약을 제때 확보하고 복약지도를 거쳐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게 됐는지'로 가려야 한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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