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 생산기반 확충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미국 손자회사 솔리다임의 나스닥 상장이 투자 재원 확보 방안으로 떠올랐다. AI 메모리 시장의 성장에 대응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만큼 사업별로 자금 조달 경로를 다변화할 필요성도 커졌다는 분석이다.
솔리다임이 외부 자본을 조달하면 낸드플래시 사업의 투자 부담을 분산하고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등 핵심 사업에 자금을 집중할 여지가 생긴다. 대규모 투자 경쟁에서 자금 조달 수단을 넓히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상장으로 창출한 가치가 기존 주주에게도 돌아가도록 하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투자 확대 속 외부 자금 조달 카드 부상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최근 솔리다임의 기업공개(IPO)가 SK하이닉스의 중장기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솔리다임이 상장을 통해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면 SK하이닉스가 자체 재원을 핵심 사업에 집중할 수 있고, 투자 효율도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앞서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솔리다임의 상장 주관사로 선정됐다고 보도했다. 공모 규모는 100억~150억달러, 상장 후 기업가치는 최대 10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SK하이닉스는 상장과 관련해 최종 결정된 사항은 없다는 입장이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약 90억달러에 인수한 뒤 출범한 미국 법인이다.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eSSD)를 주력으로 한다.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고성능·고용량 저장장치 수요가 증가하면서 생산능력 확대와 연구개발(R&D)에 필요한 자금도 늘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솔리다임 상장은 낸드 사업의 성장 자금을 확보하는 동시에 SK하이닉스의 투자 부담을 분산하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SK하이닉스가 추진하는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도 재원 다변화 필요성을 키우는 배경이다. 회사는 지난 7일 이사회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2기 팹(Y2)과 청주 팹(M17) 건설에 각각 35조2000억원, 19조1000억원 등 총 54조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의결했다. 용인 Y2는 HBM을 비롯한 차세대 D램 생산 거점으로, 청주 M17은 낸드플래시 생산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투자금은 단계적으로 집행해 2031년까지 투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는 지난 6월 제시한 중장기 투자 구상의 후속 조치로, 당시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약 600조원, 청주 생산기지에 약 100조원, 서남권 클러스터에 약 400조원을 투자하는 등 총 1100조원 규모의 투자 구상을 밝혔다. 54조3000억원은 이사회 의결을 거친 구체적인 투자안인 반면, 1100조원은 지역별 생산기지 확충을 아우르는 중장기 구상이다.
AI 메모리 시장의 성장에 대응해 생산능력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면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야 한다. 솔리다임이 상장을 통해 외부 자금을 조달하면 낸드 사업의 투자 부담을 분산하고, SK하이닉스는 HBM 등 핵심 사업에 재원을 집중할 수 있다. 대규모 투자 경쟁 속에서 사업별 자금 조달 경로를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지며 솔리다임 IPO도 검토 가능한 선택지로 거론된다.
지분 희석이 곧 주주가치 훼손은 아니지만···
관건은 상장으로 확보한 자금이 실제 사업 경쟁력 강화와 기존 주주의 실익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솔리다임이 신규 주식을 발행해 외부 투자자를 유치하면 SK하이닉스의 지분율은 낮아질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솔리다임의 이익 가운데 SK하이닉스에 귀속되는 몫도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솔리다임의 순이익 기여분이 SK하이닉스 전체 순이익의 10%라고 가정할 때, 외부 투자자에게 솔리다임 지분 10%를 배정하면 SK하이닉스의 주당순이익(EPS)이 약 1%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외부 투자자 지분이 20~30%로 확대되면 감소 폭은 약 2~3%로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솔리다임의 이익 기여도와 외부 투자자 지분율을 바탕으로 지분 희석에 따른 영향을 추산한 것으로, 실제 손익 효과는 상장 방식과 지분 희석 규모, 상장 이후 사업 성과 및 조달 자금의 활용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EPS 감소와 주주가치 훼손을 같은 의미로 볼 수는 없다. 지분율이 낮아지더라도 외부 자금으로 솔리다임의 생산능력과 사업 경쟁력이 개선되고 수익성이 높아지면 희석에 따른 부담을 상쇄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조달 자금이 기대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솔리다임의 성장이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기존 주주가 체감하는 실익은 제한될 수 있다.
결국 상장 규모나 기업가치 자체보다 조달 자금을 어디에 쓰고, 그 결과 사업의 수익성이 얼마나 개선되는지가 중요하다. SK하이닉스가 핵심 사업에 자금을 집중하는 효과와 솔리다임의 성장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지배구조와 가치 배분 문제도 변수다. 현재 반도체 사업의 지배구조는 SK㈜→SK스퀘어→SK하이닉스→미국 중간법인 AI컴퍼니→솔리다임으로 이어진다. 솔리다임이 별도로 상장하면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가치가 SK하이닉스의 주가에 얼마나 반영될지가 쟁점이다. 솔리다임의 성장으로 창출된 가치가 SK하이닉스 주주에게 충분히 돌아가지 않고 외부 투자자나 다른 계열사에도 배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중복상장이 기존 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지적해 왔다. SK㈜와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들이 2030년까지 미국 AI컴퍼니에 총 11억1000만달러를 투입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솔리다임 상장 이후 자금과 사업 가치가 어떤 경로로 배분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복상장 논란 속 주주 보호 방안도 과제
금융당국의 판단도 상장 추진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솔리다임 상장과 관련해 중복상장에 저촉된다는 판단을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이 공유하고 있다는 취지로 밝혔다. 국내 기존 주주 보호를 위한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에 대해서는 금융위의 유권해석을 기다리고 있으며, SK하이닉스에 우려 사항을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솔리다임은 미국 법인인 만큼 국내 규제만으로 상장 절차와 주주 보호 문제를 모두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다. 상장 추진 여부와 방식에 따라 국내 주주 보호를 위한 규제 적용 범위와 실효성을 둘러싼 논의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솔리다임 상장에 반대하며 정부와 금융당국에 상장을 막을 것을 요구했다. 중복상장으로 인해 SK하이닉스 주주들이 누려야 할 가치가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월 1일 입장문을 통해 모든 투자를 자체 자금으로 조달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하면서, 기존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상장 조건이 확정되면 재무·사업적 영향과 주주 보호 방안을 이사회에서 함께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솔리다임 상장이 SK하이닉스의 투자 여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기능하려면 조달 자금의 활용 계획과 기대 수익, 지분 희석에 따른 영향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상장 이후 사업 성장의 성과가 SK하이닉스의 기업가치와 기존 주주의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소각 등 주주환원 정책도 검토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상장 구조와 재무 여건을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
결국 솔리다임 상장의 관건은 대규모 AI 반도체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면서도 상장으로 창출한 가치가 기존 주주에게 합리적으로 돌아가도록 설계할 수 있느냐다. 외부 자본 조달의 실익을 입증하고 주주가치 보호 방안까지 마련해야 상장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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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신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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