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8일, 뮤지컬 ‘프리실라’(연출 사이먼 필립스)의 미디어콜이 끝난 후, 그룹 2AM 조권이 자신의 SNS에 악플러(악성 댓글을 남긴 누리꾼)를 향해 남긴 글이다.
미디어콜 후 일부 네티즌은 찰나의 순간이 담긴 사진만을 보고 쉽게 판단해 악성 댓글을 달았다. 단지 조권의 총천연색 화려한 옷을 입은 겉모습과 과감한 퍼포먼스 장면만 보고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 것.
뮤지컬 ‘프리실라’는 호주의 동명 영화를 무대화한 작품으로, 저마다 다른 성격과 사연을 가진 세 명의 드래그 퀸(drag queen·여장을 즐기는 남성 동성애자 혹은 여장남자)이 쇼를 위해 버스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면서 겪는 일련의 모험과 여정을 경쾌하게 담고 있다. 80~90년대 히트팝 뮤직을 배경으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지난 달 28일, ‘프리실라’는 막을 내렸다. 조권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깝권’(까불거리는 조권의 준말)의 가벼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퍼포먼스의 말이 아니다. 아이돌 출신 조권은 자신을 완벽하게 지우고 아담이 돼 있었다. 악플을 달던 이들은 조권이 맡은 아담 역이 전하는 메시지를 접한 후 달라졌다. 조권의 호연은 극에 잘 녹아들어 작품의 성료에 한 축을 담당했다는 평을 받았다.
◆ 남자와 남자의 사랑···무대에서는 흥행 보증수표
뮤지컬에서는 동성애자·성전환자·드래그 퀸(여장남자) 등 성소수자가 공연 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다섯 달째 10주년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뮤지컬 ‘헤드윅’을 비롯해, 8주년을 맞은 뮤지컬 ‘쓰릴 미’등은 모두 성소수자가 주인공이다.
2004년 한국에서 초연된 이래 지난 10년 간 재공연, 히트 행진을 이어온 록뮤지컬 ‘헤드윅’은 성전환 수술에 실패한 동베를린 출신 록가수 헤드윅이 남편 이츠학, 밴드 앵그리인치와 함께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놓는 콘서트 형식 뮤지컬이다.
1998년 미국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였으며, 국내에서는 2005년 첫 공연 뒤 지금까지 1400여회 공연을 통해 40여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2007년 3월 호연 이후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공연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쓰릴미’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는 26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공연되는 뮤지컬 ‘쓰릴미’는 1924년 미국 시카고를 충격에 빠뜨린 유괴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심리극이다. 단 두 명의 젊은 남자배우가 등장하는 2인극으로, 게이가 주인공이다.
내용은 어둡지만 슈트가 잘 어울리는 꽃미남 배우들이 출연하면서 객석 대부분을 여성팬들이 장악하고 있다. 올해는 송원근, 에녹, 이재균, 전성우, 신성민, 정동화, 정욱진이 출연해 올해도 여성 관객의 호응을 얻는데 성공했다.
◆ 해외에서는 호평···국내 관객의 평가는?
올해 하반기, 헤드윅과 쓰릴미의 바통을 이어받을 주자가 벌써 대기하고 있다. 뮤지컬 ‘라카지’와 ‘킹키부츠’다.
CJ E&M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브로드웨이에서 큰 성공을 거둔 ‘킹키부츠’는 첫 한국 공연에 나선다. 파산 직전의 신발공장을 물려받은 찰리가 여장남자 롤라를 우연히 만나면서, 여장남자를 위한 부츠인 ‘킹키부츠’를 만들어 회사를 살린다는 성공 스토리를 유쾌하게 담아낸 뮤지컬이다.
디스코와 팝, 발라드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내세워 지난해 토니상에서 베스트 뮤지컬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하는 등 해외에서는 그 작품성을 입증받았다.
2012년 국내 첫 공연에서 정성화와 김다현이 더블캐스팅 돼 큰 인기를 얻은 뮤지컬 ‘라카지’도 오는 12월 재연의 막을 올린다. ‘라카지’는 클럽 라카지오폴을 운영하는 게이 부부의 아들이 극우파 보수 정치인의 딸과 결혼 선언을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발랄하게 그린 작품이다.
1983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올린 ‘라카지’는 토니상 작품상을 3차례나 수상한 바 있으며, 그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았다.
◆ 성(性) 소수자 다룬 뮤지컬···그 흥행 비결은?
공연계는 이러한 흥행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상업적으로 보면 흥행 요소가 집약돼 있다. 여장으로 고운 여자로 변신한 꽃미남들, 극적인 감정선의 변화, 화려한 퍼포먼스와 이질적인 무대, 애절한 뮤지컬 넘버 등 다양한 요소를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여성 관객의 환호를 얻는 이유는 좋아하는 훈남 배우들의 여장에서 오는 판타지 충족과 대리만족 일 것이다. 남성이지만 마초적이지 않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자에 대한 환상을 무대 위 ‘예쁜 남자’를 통해 충족시켜준다.
하지만 단순히 여성에게 어필하는 코드만 가지고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어필 코드의 충족이 목적이었다면, 8년에서 10년까지 장기공연이 어려웠을 것이다. 두어번 정도는 좋아하는 배우를 보러오겠지만, 적게는 6만원 많게는 13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티켓 값을 지불하고 몇 년 동안 극장을 찾을 관객은 많지 않을 거다.
뮤지컬은 대중성과 상업적인 성격을 떼어놓고는 논할 수 없는 문화 장르다. 수요나 공급 모두가 위와 같은 성격을 고려해 결정한다.
우리 관객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눈 가린 과대포장을 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국내 관객들이 다양성을 인정하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지난 90년대 국내 뮤지컬 시장은 화려한 퍼포먼스와 의상으로 무장한 라이선스 뮤지컬이 즐비했고,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그린 멜로물 장르 일색이었다. 이후 시도와 성장을 거듭했고, 2014년 현재, 국내 관객의 입맛은 까다로워졌다.
성소수자를 그린 뮤지컬이 올해 연속으로 막을 올리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국내 관객의 문화적 성숙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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