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마블의 세계관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안에는 국내 마니아들조차 생소한 캐릭터들이 즐비하다. 올해 개봉한 ‘어벤져스2’의 경우 세계관을 공유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함께 했단 점에서 흥미요소가 됐다. 물론 각각의 캐릭터 인기도 한 몫 했다. 여기에 기존 히어로의 관습인 ‘혼자’에서 ‘다수’란 집단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마블은 히어로물의 새로운 전형성을 끌어 들였다. 사실 이런 형태는 ‘어벤져스’ 이전 존재했다. 팀 히어로의 시작인 ‘판타스틱4’다. 2005년 국내 개봉한 ‘판타스틱4’의 리부트다.
우선 이번 영화는 젊어졌다. 주인공 ‘미스터 판타스틱’ 리드 리처드, ‘인비저블’ 수잔 스톰, ‘휴먼 토치’ 자니 스톰, ‘더 씽’ 벤 그림 등이 20대 정도로 나온다. 리부트에 알맞은 설정이다. ‘판타스틱4’ 자체가 일반인에서 우연한 사고로 초능력을 얻은 뒤 정서적 혼란을 겪은 캐릭터들이기에 성숙되지 않은 외형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히어로 영화다. 겁먹은 어린 아이들의 자신의 자아 찾기를 위해 ‘지구 구하기’를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단 점은 너무 위험하다. 60억 인류의 생명을 단 4명의 자아실현 도구로 활용하다니.
정서적 혼란의 캐릭터 설정에 앞서 사실 ‘판타스틱4’의 영화화도 그렇다. 이미 2005년 1편과 2007년 ‘판타스틱4-실버서퍼의 위협’으로 국내 흥행 시장에서 꽤 재미를 본 시리즈다. 하지만 원작으로 경우 무려 50여 년 동안 지속돼 올 정도로 방대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특히 ‘판타스틱4’는 매회 스토리 라인이 바뀌는 홈드라마의 형식을 갖는다. 주인공 4명의 얘기는 초반 10여 분에 불과한 러닝타임이면 차고 넘친다. 스토리 라인 자체가 에피소드 형식의 흐름 라인으로 탄생된 아이템이다. 이번 리부트 ‘판타스틱4’는 4명의 주인공이 겪는 혼란과 이들을 초능력자로 만들어 버린 ‘퀀텀 게이트’ 개발 과정, 그리고 멍청하고 이기적인 정부 관료와의 납득 불가능한 위험한 동거 과정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멍청하다 못해 한심한 그들이 우연한 기회에 초능력을 얻고, 그 힘을 통해 뒤바뀐 자신과 주변 환경의 변화에 폭주하고 변화하며 또 내적 성장을 이뤄내는 인물들의 갈등 과정을 그린 ‘크로니클’의 색다름을 재단했던 조쉬 프랭크 감독이 이번 영화의 연출을 맡았다는 게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히어로 영화의 태생적인 어둠을 담당하는 빌런 ‘닥터 둠’의 백지장 같은 유아기적 매력도 이번 ‘판타스틱4’의 판타스틱함을 더할 전망이다. 마블 영화의 인기는 사실 히어로의 인지도 보단 각각의 작품 속 존재하는, 그 작품의 여러 에피소드에서 등장하는 빌런(악당)의 존재감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도 꽤 매력적인 악당으로 꼽히는 ‘닥터 둠’의 스토리에 대한 지나친 압축과 생략은 이번 ‘판타스틱4’의 최대 패착으로 작용될 전망이다.
‘빅터 본 둠’으로 불리는 ‘닥터 둠’은 바닥까지 삐뚤어진 심성의 소유자다. 수잔 스톰에 대한 집착적인 사랑이 변질돼 초능력을 얻은 뒤 지구 파괴의 악당으로 변신했단 기본 뼈대는 영화적 요소의 재미로 넘어간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악당까지 질풍노도의 청춘으로 만들어 버린 오판이다. 차라리 2005년 ‘판타스틱4’ 속 질투에 눈이 먼 ‘빅터 본 둠’의 모습은 납득이라도 갔다. 사실 빅터가 수잔을 사랑했는지 아니면 리드의 천재성에 질투를 느꼈는지, 그것도 아니면 수잔과 리드의 관계를 시기했는지도 이번 영화에선 불분명확하다. 그저 ‘판타스틱4’를 리부트하고, 그들의 첫 번째 악당으로 ‘닥터 둠’이 등장해야 한다는 점에 강박적 사고력을 갖고 있던 제작자와 감독의 패착이라고 밖엔 느껴지지 않는 대목이다.
불명확한 대상도 문제다. 악당이란 존재에 한 해서는 말이다. 영화 속에선 ‘판타스틱4’ 멤버들과 악당 ‘빅터 본 둠’을 변화시키는 어떤 존재가 등장한다. 차원을 이동하는 ‘퀀텀 게이트’를 개발한 리드 리처드도 차원 이동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빅터도, 이 연구를 총 지휘하는 수와 조니의 아버지 스톰 박사조차 정확하게 그 공간이 무엇인지 그 존재가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는다. 히어로 영화는 명확한 선악구도가 생명이다. 착한 영웅은 필연적으로 나쁜 악당을 무찌르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판타스틱4’에선 이런 개념이 없다.
알 수 없는 차원의 공간에서 또 알 수 없는 존재로 인해 초능력을 얻게 된 이들이다. 하지만 왜 ‘판타스틱4’는 선한 인물로 남았고, 빅터는 ‘닥터 둠’이란 사상 최악의 악당이 됐는지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100분 동안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흘러간다. 하지만 그 페이스는 정작 선수로 뛰고 있는 관객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관객들의 뒤쳐짐은 생각하지도 않고 오롯이 자기 갈길 만 간다. 아니 사실은 자기가 가는 길조차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개봉은 오는 20일.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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