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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산보다 위대한 것이 사람이죠”

[인터뷰] 황정민 “산보다 위대한 것이 사람이죠”

등록 2015.12.15 06:00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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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황정민 영화 ‘히말라야’ 인터뷰. 사진=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배우 황정민 영화 ‘히말라야’ 인터뷰. 사진=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배우 황정민은 세련된 마스크를 지녔다. 젠틀(Gentle)한 신사부터 가슴 설레는 남자까지 그 안에 다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토록 세련되고 댄디(Dandy)한 외모를 지닌 황정민이지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배역을 누구보다 잘 짓는다. 그 비결은 눈에 있다.

황정민은 희로애락을 품은 천상 배우의 눈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미 넘치는 선(善)부터 천하의 악(惡)까지 실감나는 연기가 가능하다. 배우에게 눈이란 정말 중요하다. 눈은 감정이 가장 많이 담기는 인간의 도구이다. 또한 상대역과 눈빛으로 감정을 나누며 교감하기에 얼마나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느냐가 관건이다.

‘히말라야’ 포스터에서 황정민은 히말라야 라는 거대 자연의 위대함, 생사의 공포, 리더로서의 책임감, 죄책감 등 오만가지 감정을 품은 눈빛으로 관객을 바라본다. 참 묘하다. 포스터 속 황정민의 눈을 봤을 뿐인데 영화 속 주제가 읽힌다. 그래서 영화가, 황정민이 더욱 궁금했다.

2015년은 황정민에게 남다른 성과를 가져다준 한 해였다. 지난 1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과 8월 ‘베테랑’(감독 류승완)을 통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한 황정민은 12월 ‘히말라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렇지만 자만이라는 단어는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천만을 예감하느냐는 질문에 황정민은 “그런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고생한 만큼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속내를 꺼내며 커피를 홀짝였다.

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에서 황정민은 히말라야 산 증인이자 원정대 등반대장 엄홍길로 분했다. 영화는 히말라야 등반 도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 원정대의 가슴 뜨거운 도전을 그린 작품이다.

“‘히말라야’를 촬영하기 전에 산악 대장들을 만나 ‘왜 산에 올라가냐’라고 물었어요. 궁금했고, 알아야 했죠. 그런데 ‘좋아서 갔다’라는 쉬운 답이 나오더라고요. 갸우뚱하다가 바로 이해가되었어요. 저도 똑같거든요. 사람들은 ‘배우를 왜 하느냐’라고 물어요. 그런데 그 물음에는 딱히 답이 없어요. 좋아서 하는 것이지 뭔가 있어서 하는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빗대어 생각하고 이해했어요.”

배우 황정민 영화 ‘히말라야’ 인터뷰. 사진=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배우 황정민 영화 ‘히말라야’ 인터뷰. 사진=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히말라야’는 배우, 스태프들 모두에게 도전이었다. 네팔 히말라야에서의 로케이션, 강원도 고성, 세트장 등을 오가며 이어진 촬영은 눈보라와의 사투 속에서 힘겹게 진행되었다. 시사회를 비롯한 미디어데이에서 ‘히말라야’ 출연배우들은 입을 모아 고생담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노라니 입이 쩍 벌어졌다. 황정민은 고생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면서도 고생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고생담을 빼놓고 ‘히말라야’ 촬영은 설명할 수 없음에 틀림없다.

“산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여자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해발 4천미터 산에 올라가며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고생했죠. 특히 몽블랑에서는 산 중턱까지 짐을 가지고 올라가야 했어요. 그 때는 배우고 스태프고 없죠. 여자들이 무거운 장비를 가지고 가는 걸 어떻게 보나요. 배우들도 다 손에 하나씩 짊어지고 올라가는거죠. 또 배우들 일부는 고산증세에 시달려 고생을 했어요. 촬영을 해야하니 내려갈 수는 없고, 내려가면 남들이 두 배 노력해야 했으니까요. 그런 애틋한 감정을 나누며 똘똘 뭉치다보니 실제 원정대처럼 에너지가 생겼어요.”

고된 촬영이지만 황정민을 비롯한 ‘히말라야’ 팀은 목숨을 걸고 촬영에 임했다. 작품을 위한 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에서 비춰진 생생한 풍경은 단순히 특수효과(CG)와 후반작업을 통해서만 완성될 것 같지 않았다. 황정민은 몽블랑에서의 촬영 도중 아찔한 순간을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히말라야에 갔는데 날씨가 좋더라고요. 정말 장관이었어요. 눈보라가 치지 않아 걱정했는데 웬걸요, 몽블랑에서는 날씨가 정말 좋지 않았어요. 눈보라가 몰아쳤죠. 날씨의 도움을 받았어요. 안전요원들이 다 도망갈 정도였죠. ‘죽을 수도 있다’라고 경고하더라고요. 그래서 프로듀서가 사고가 나면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각서까지 썼어요. 그렇지만 국내 산악 팀이 촬영에 함께하며 탐침을 찍어가며 허락한 곳에서 촬영했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60명이서 다같이 3미터 간격으로 허리에 줄을 묶어서 올라갔어요. 촬영을 마치고 ‘와, 살았다’ 라고 소리쳤죠.(하하)”

 황정민 “산보다 위대한 것이 사람이죠” 기사의 사진


황정민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사뭇 느끼기도 했다. 팀의 큰 형이자 선배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촬영에 임했지만 한편 외로움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히말라야’를 통해 새삼 자신의 위치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어느날 촬영장에 나가니 제가 선배이자 형이 되어있더라고요. 인사를 하는 것보다 인사를 받는 일이 많아졌죠. 제가 장난을 쳐도 후배들이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어요. 그런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위치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죠. ‘히말라야’ 작업을 통해 좀 더 강하게 느꼈어요. 팀으로 움직이며 촬영하고, 고생하며 목표한 분량을 달성하고 유대감을 느끼면서 팀이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겼던 것 같아요. 더 돈독해졌죠. 제가 선배이자 형으로서 힘들다고 쉬거나 할 수 없었죠. 오히려 나서서 제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후배들도 따라오고 더 용기를 낼 수 있겠다 싶었어요.”

황정민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이는 엄홍길 대장이 느꼈을 감정과도 맞닿아있다. 그는 ‘히말라야’를 통해 엄 대장을 이해했다고 했다.

“대장은 선두에 서야하죠. ‘괜찮으니 따라와’라고 말할 수 있는 책임감이 막중하지 않았을까요. 리더로서의 책임감과 비슷하죠.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여있는 인간은 나약한 존재에요. 자연 앞에서의 외로움도 존재합니다. 힘에 부쳐도 짧은 시간 내에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죠. 후회한 들 어찌할 바가 없겠죠. 외로울 때요? 그저 홀로 극복하는 것이지요. 엄홍길 대장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배우 황정민 영화 ‘히말라야’ 인터뷰. 사진=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배우 황정민 영화 ‘히말라야’ 인터뷰. 사진=최신혜 기자 shchoi@newsway.co.kr


‘히말라야’는 영화 ‘대호’(감독 박훈정)와의 경쟁이 불가피하다. ‘히말라야’에 황정민이 있다면 ‘대호’에 최민식이 있다. 황정민은 최민식과의 경쟁에 대해 물으니 “경쟁이 어떻게 되냐”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주먹을 겨루는 것이 아닌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상생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최민식 선배님과 제가 어떻게 경쟁이 되겠어요. 최민식 옹(翁) 이잖아요. 대단한 선배님이죠. ‘암살’이 ‘베테랑’과 쌍끌이로 흥행했잖아요. 이제 한국영화 시장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관객의 수요가 많아졌죠. 그래서 ‘대호’의 개봉을 누구보다 반기고 있어요. 우리 영화만 보고 다른 영화는 안볼거라는 것은 옛날 이야기에요. ‘대호’도 잘 되어야 합니다. 함께 잘 되면 좋겠죠. (웃음)”

황정민에게 ‘히말라야’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정의해달라고 주문했다. 답변을 이어가는 눈빛에서 황정민이라는 사람을, 또 그가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읽혔다. 황정민이 ‘히말라야’에 올랐는지 그의 마지막 답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산보다 위대한 것은 사람이에요. 사람이 있으니 산도 있는 것 같아요. 정상이라고 생각해 돌아보면 더 높은 산이 있어요. 반면 가장 높은 산이구나 싶어서 올랐더니 고작 언덕배기죠. 어쩔 수 없어요. 욕심 부리면 죽습니다. 제가 올라갈 수 있는 산에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뿐이지요. 어떻게 산 정상만 보고 가나요. 올라가는 길에 있는 나무도 보고 걸터앉아 쉬기도 하겠죠. ‘히말라야’를 선택한 것은 팀이 좋아서에요. 힘들었지만 서로 격려하면서 촬영을 하다보니 그 자체로 재미있었죠. ‘히말라야’ 역시 마찬가지에요. 정상만을 보고 오르지 않죠. 그 아래 놓인 주검을 보고 가는거에요.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을 공격하려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보러 가려고 합니다.”

이이슬 기자 ssmoly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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