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발언은 ‘사회적 경제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말이고 뒤의 발언은 ‘혁신사업 전도사’로 나선 이재웅 쏘카 대표의 말이다. 최 회장은 대를 이어 부를 창출한 전통적 재벌 기업인이고 이 대표는 청년 벤처 사업가의 시조 격인 인물이다.
최 회장은 사업에 대한 핵심성과지표에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50% 반영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세웠다. 반면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를 운영하는 이 대표는 혁신으로 인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전통산업 종사자들의 연착륙을 돕는 건 정부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생각해보면 뭔가 바뀌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지만 통념적으로 봤을 때 기성 부유층과 젊은 사업가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최 회장과 이 대표가 ‘부의 창출과 사회적 책임 추구’를 바라보는 주장은 상반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부유층, 소위 말하는 재벌들은 그들이 대대로 누려온 부를 그대로 지키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금수저를 물고 있는 이들은 ‘내 돈만 벌면 그만이지 남의 삶은 왜 신경 쓰느냐’ 내지는 ‘남이야 굶어죽던 말던 내 알 바가 아니다’라는 이기적 생각을 주로 한다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관념이다. 실제 그 동안의 재벌들은 그랬다.
반대로 젊은 사업가들은 “나의 이익으로 사회 전체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뜻을 강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대표는 재벌의 관념에서, 최 회장은 젊은 사업가의 시각에서 부에 대한 책임을 바라본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들이 바라보는 고정관념 기준으로 본 것이다.
이 대목에서 곱씹어봐야 할 이론이 있다. 중국의 옛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의 ‘선부론(善富論)’이다. 선부론은 ‘쥐를 잘 잡는 고양이라면 희던 검던 상관없다’는 ‘흑묘백묘론’과 함께 오늘의 중국 경제를 만든 1980년대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의 기반이 된 이론이다.
덩샤오핑은 지난 1985년 “부자가 될 기회와 능력이 있다면 먼저 부자가 돼 그 이익으로 낙오자들을 도우라”고 말했다. 단순히 문장만 놓고 보면 매우 좋은 말이다. 먼저 부자가 된 사람이 어려운 이들에게 자신의 부를 나눠주는 사회가 덩샤오핑이 꿈꾸던 이상적 미래였다.
물론 선부론은 허울 좋은 이론에 그쳤다. 부자가 된 이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이익에 홀려 내 돈만 벌기에 급급했고 부자들의 승승장구 뒤편에는 빈곤층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부유층은 자신의 이익에만 골몰해 빈곤층을 무시했고 결국 중국은 심각한 빈부격차로 홍역을 앓았다.
선부론을 그대로 따라가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덩샤오핑이 본래 강조했던 ‘가난한 이들을 돌봐야 하는 부자의 책임’, 다시 말해 사회 안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이들의 책임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최 회장은 이기적일 것이라고 여겨지던 기존 재벌의 통념을 스스로 깨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이 대표는 오히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젊고 깨어있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던 혁신기업가들의 순수한 이미지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주고 있다.
이 땅의 모든 기업은 결코 오너 또는 CEO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좁게는 주주와 근로자들이 기업의 구성원으로 함께 있고 그 기업을 이용해 각종 서비스 수혜를 받는 사회 구성원들도 넓은 의미에서 기업과 함께 가는 구성원이라 할 수 있다.
기업이 발전하려면 주주도 챙겨야 하고 근로자들의 복지도 챙겨야 하지만 기업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회 구성원들이 더 쉽고 편리하고 안정적으로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기업의 할 일이다.
물론 정부가 나서서 경제 성장의 그림자에 있는 이들을 살뜰이 보살펴야 하는 것도 백번 맞는 말이며 엄연한 정부의 임무다. 다만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나눠 어두운 이들에게 빛이 돼주겠다고 스스로 나선다면 우리 사회가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밝아지지 않을까.
기업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동시에 생각하는 착한 부자가 더 많이 나온다면 우리 사회는 더 건전해지고 경제 사정 또한 나아질 것이다. 그러니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생각보다 ‘우리 더불어 잘 살자’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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