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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이 요리와 통하는 이유는

[김성회 온고지신 리더십]국정이 요리와 통하는 이유는

등록 2019.11.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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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이 요리와 통하는 이유는 기사의 사진

요리는 권력이다. 세상을 요리하다, 꿈을 요리하다, 마음을 요리하다란 말이 있듯 ‘요리’는 사물이면 사물, 사람이면 사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요리와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노자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생선요리에 비유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인 국가2인자 재상의 재(宰)가 요리사란 뜻에서 비롯된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재상 재宰는 집 면(宀)과 매울 신(辛)이 합쳐진 글자다. 집 면(宀)은 지붕뿐만 아니라 양벽면을 길게 늘어뜨려 그려내고 있어 깊숙하고 은밀한 내부모양을 뜻한다. 이를 미루어 부엌의 상징이라고 해석한다.

신(辛)은 죄인이나 노예의 얼굴에 먹물을 넣던 작은 꼬챙이, 칼등 날카로운 도구, 또는 그런 도구로 먹물을 새겨 넣은 노예의 상징이다. 요컨대 왕의 노예로서 으뜸 노예, 또는 날카로운 도구로 먹을 것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재상 재는 관가의 요리를 한다, 고기 저민다, 삶는다는 뜻을 함께 갖게 됐다.

재상은 집안에서 살림을 맡아 음식을 장만해 제사를 지내고, 참석한 사람들을 접대하며 공평하게 분배하는 사람이었다. 왕의 지근거리에서 그를 보필하는 사람들인데 사회가 분화되면서 사회 최고 기득권. 여기에서 주관하다, 주재하다라는 뜻이 파생된 것이다. 영어에서 재상은 prime minister 인데 minister가 종, 남자 상전의 개인 수발을 드는 하인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왕의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엔 왕의 마음을 요리하고, 요즘엔 국민의 마음을 요리하고. 동서양 모두 2인자의 어원이 서로 통하는 게 흥미롭다.

재(宰), 세상을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맛있거나 멋있거나 둘은 다 갖추면 좋고, 적어도 하나는 만족시켜야 한다. 맛은 조화에서 나오고, 멋은 공정함에서 나온다.

먼저 맛으로 권력을 잡은 인물부터 살펴보자. ‘인중 밑(즉 입)에 아부하는 것 이상의 아부는 없다’는 말이 있다. 고대사회에서 낮은 신분으로 권력에 접근할 때 가장 유효한 수단이 바로 ‘입맛’으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중국사 최초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이윤이란 인물이 그 입지전의 주인공이다. 이윤은 중국 은나라 때 태어나자마자 뽕나무밭에 버려졌다. 그를 왕실요리사가 키웠는데 그 덕에 ‘궁중요리’를 제대로 배워 걸 임금의 궁중 전속 요리사가 됐다. 그는 걸왕에게 포악무도한 정치를 멈출 것을 여러 차례 간언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는 탕을 만나고 싶었지만 마땅한 경로가 없었다.

결국 탕에게 시집가기로 예정된 유신씨 딸의 혼수용 노예를 자청하여 탕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뛰어난 요리솜씨를 마음껏 발휘해 탕의 주목을 받고나선 어느 날은 간을 짜게 하고, 싱겁게 하는 등 들쑥날쑥 하게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탕왕이 그를 직접 부르자, 마침내 알현할 기회를 얻은 그는 특유의 다섯 가지 맛을 조화시켜야 한다는 오미조화론의 국정론을 펼친다. 요리 레시피와 국가전략은 통한다는 논리다.

“한 왕조를 다스리는 것은 요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금을 너무 많거나 너무 적게 넣으면 요리를 망치게 됩니다. 양념은 적당해야 합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너무 서둘러서도 너무 느려서도 안 됩니다.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조화배치 할 때만이 정연하게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탕은 이 같은 치국 레시피에 깊이 감명을 받았고 결국 그를 왕의 남자, 재상으로 삼았다. 이같은 ‘요리 로비’의 부당성은 두고두고 후세에 입방아에 올랐다.

‘맹자’는 이를 전면부정하며 탕왕이 예를 갖춰 정식 초빙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어쨌든 자신의 4살된 자식을 삶아 요리로 진상해 왕의 마음을 산 제나라의 간신요리사 역아, 맛있는 생선구이 요리로 환심을 얻어놓고는 생선 속에 칼을 숨겨 복수를 하려 한 오나라 최고의 왕실 요리사 전제 등등 각각 그 목적은 달랐지만 모두 입맛을 맞추는 요리 하나로 권력에 접근한 왕의 남자들이었다.
흔히 권력은 직급보다 실력자와의 물리적 거리가 반증해준다고 한다. 물리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는 비례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실력자의 입맛을 ‘한 손에 잡고 있는’ 요리사는 권력측근중의 측근일 수 밖에 없었다.

이윤이 주방에서 칼을 잡고 요리를 해 미식으로 재상이 된 경우라면 한나라의 재상 진평은 칼을 잡고 음식을 나누는 배식에 성공해 왕의남자가 된 경우다. 흔히 ‘전쟁에서 진 장수는 용서하지만, 배식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공정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진평이 청년시절에 우연히 마을에서 토지 신에게 지내는 제사에 오른 고기를 나눠주는 일을 맡게 되었다.

무조건 똑같이도 아니고,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되 뒷소리 없는 공정한 분배를 하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그를 칭찬했다. 이 말을 들은 진평은 한숨을 내쉬면서 “아, 나를 천하의 재상으로 삼더라도 고기 나누듯 공평할 것인데!”라고 한탄했다.  자신이 마을 제사에서 고기나 나누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다. 자신에게 천하의 일을 맡겨도 얼마든지 잘 처리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과연 그는 제사상 고기뿐 아니라 일의 분배도 잘해 뛰어난 재상이 되었다. 그와 함께 공동재상이었던 주발은 왕에게 보고하는 때가 되면 자잘한 숫자를 대지 못해 늘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진평은 당당하게 왕에게 말했다.

“그런 세세한 일은 실무담당자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무릇 재상이란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며 음양을 다스려 사시(四時)를 순조롭게 하고, 아래로는 만물이 제때에 성장하도록 살피며,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압하고 어루만지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가까이 따르게 하며, 경대부(卿大夫)로 하여금 그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주발이 “그런 답을 나에게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하니 “자네는 아직 재상의 일도 파악하지 못했단 말인가”라고 되 물었다고 한다. 이 말에 부끄러움을 느낀 주발은 공동재상의 자리를 내놓는다. 진평은 제사에서 고기를 공평하게 나누듯이 나라 일도 그렇게 잘 나누어 처리하는 자리가 바로 재상의 일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오늘 날 민주사회에서 재상은 ‘왕의 남자’가 아니라, 국민의 공복이다. 한쪽의 편향된 의견이 아닌 고루 다양된 의견을 조화시키고, 공정성을 지켜 분배하는 것, 글자 재(宰)에 담긴 엄정한 의미다. 그것이 바로 일인지하 만인지상 재상의 임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뒤 최장수 총리가 된 이낙연 총리의 ‘국민께 더 낮게, 더 가깝게 다가가며, 더 멀리 미래를 바라보겠다’는 소감을 접하며 재상 재, 총리 재(宰)의 의미를 톺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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